[2021 노벨 생리의학상] 온도·촉각 수용체 찾은 두 과학자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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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현지시간)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온도 수용체를 발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캘리포니아) 생리학과 교수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신경과학과 교수였다. 두 과학자는 온도와 촉각 등 외부적 자극이 어떻게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뇌에 전달되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밝힌 공로를 인정받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수상이 다소 예상 밖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생리의학상이 ‘정통’ 생물학보다는 의학 관련 연구에 주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이러스학 혹은 백신 의학과 관련한 과학자에게 수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커털린 커리코 독일 바이오엔 수석부사장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노벨위원회는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교수의 손을 들었다. 고온 감지해 통증 유발하는 ‘TRPV1’, 감각 수용체 연구 불 지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을 견인한 논문은 크게 세 가지다. 줄리어스 교수가 199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TRPV1’의 발견,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교수가 2002년 동시에 발견한 ‘TRPM8’의 발견(각각 <사이언스>와 <셀>에 게재), 파타푸티언 교수가 2010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피에조(PIEZO 1, 2)’ 유전자의 발견이다.
우선 줄리어스 교수에게 상을 안겨준 기념비적인 논문인 <네이처> 논문은 현재까지 9141회 인용될 정도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온도와 통각 사이의 관계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가 밝혀낸 온도 감지 수용체 ‘TRPV1’은 온도가 43℃ 이상이 되면 열리는 이온채널로 통증을 유발한다. 줄리어스 교수는 캡사이신을 이용해 TRPV1의 존재를 찾아냈다. 이전부터 캡사이신이 체온을 높이고 통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줄리어스 교수는 열이나 접촉, 통증 등에 반응하는 감각 뉴런의 DNA를 쪼개, 수백만 개의 DNA 단편으로 이뤄진 라이브러리를 제작했다. 연구진은 캡사이신에 반응하지 않는 세포에서 각각의 DNA 단편을 발현시켰다. 이후 각각의 세포에 캡사이신을 뿌려,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포를 걸러냈다. 이렇게 걸러진 세포 내 유전자는 새로운 이온 채널을 암호화하고 있었고, 이를 TRPV1이라고 명명했다.
줄리어스 교수의 연구는 온도·촉각 수용체 연구에 불을 지폈다. 파타푸티언 교수와 줄리어스 교수는 경쟁적으로 후속 연구에 나섰고, 각각 독립적으로 ‘TRPM8’이라는 수용체를 발견했다(2002년 각각 <셀>과 <네이처>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TRPM8은 TRPV1과 정반대로 25℃ 이하의 낮은 온도에 반응하는 이온채널이다. 박하 향이 나는 멘톨이라는 물질에 의해서 활성화된다.
두 수용체를 필두로 온도 조건에 따라 활성화되는 추가 이온채널이 발견됐다. 52℃ 이상에서 활성화되는 TRPV2(1999년 줄리어스 교수가 단독 발견해 <네이처> 게재), 33~39℃에서 활성화되는 TRPV3(파타푸티언 교수를 포함한 3개 그룹이 동시 발견), 17℃ 이하에서 활성화되는 TRPA1(2003년 파타푸티언 교수가 단독 발견해 <셀> 게재) 등이다. 파타푸티언 교수와 9편의 논문을 함께 발표한 황선욱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는 “두 교수는 경쟁자이자 조력자였다”며 “두 그룹이 경쟁적으로 촉각 수용체를 발견함으로써 이 분야의 돌파구를 마련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후속 연구를 낳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압력은 어떻게 다양한 촉각으로 변환되는가
파타푸티언 교수는 관련 연구를 지속하던 중 2010년 온도가 아닌 압력에 의한 촉각 수용체를 발견했다. 이 연구가 바로 2010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다. 연구진은 먼저 마이크로피펫으로 찔렀을 때 전기적인 신호를 발산하는 세포주를 분리했다. 외부 힘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것 역시 TRPV1과 같은 이온채널이라고 가정하고, 세포주 내 이온채널을 코딩하고 있는 유전자 72개를 선별했다. 연구진은 72개 유전자를 하나씩 비활성화시켜(gene silencing) 기계적인 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에는 그리스어로 압력을 뜻하는 ‘피에조(PIEZO)’라는 이름이 붙었다. ‘PIEZO1’이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근처에 유사한 기능을 하는 ‘PIEZO2’가 연이어 발견됐다. PIEZO2는 자신의 신체 위치나 자세, 운동의 방향 등을 감지하는 ‘고유 수용성 감각(proprioception)’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피에조 수용체가 혈압, 호흡, 방광 조절 등 압력과 관련한 여러 생리학적인 과정을 조절한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연구가 발표된 이후) 적혈구가 압력을 감지하고 부피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압력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평균보다 많은 경우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탈수된(dehydrated) 적혈구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또 면역세포에서 이 단백질이 혈액의 철분 양을 조절하는 데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구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압력 감지 수용체가 이렇게 많은 생리학적 과정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하지만 피에조 수용체가 어떤 기전으로 생리학적 과정을 조절하는 것인지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분자 작동 원리가 보편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적혈구에서 탈수 현상이 일어나면 세포막은 좌우로 늘어나는 기계적 자극(전단, stretch)을 받게 된다. 호흡도 폐포가 확장하고 수축함에 따라 주변 조직이나 신경에 전단 자극을 주게 된다. 피에조 수용체가 이런 자극을 받으면 전기적 신호를 보내게 되고, 이어지는 생체 신호에 의해 생리학적 과정이 조절된다는 것이다.
비마약성 진통제의 주요 타깃이 된 TRPV1
두 과학자가 발견한 온도·압력 감지 수용체는 많은 의학적 발전을 가져왔다. 실제 바이오 업계에서는 TRPV1을 타깃으로 하는 진통제 약물을 개발 중이다. 현재 처방되고 있는 많은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다.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 등이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며, TRPV1의 활성을 막는 ‘TRPV1 길항제’가 큰 주목을 받았다.
2010년 전후로 아스트라제네카, 애보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머크(MSD) 등이 뛰어들었지만 독성이나 효능 부족의 문제로 대부분 임상에 실패했다. 현재는 화이자와 암젠, 노바티스 등 소수 기업이 약물을 개발 중이며 제넨텍도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메디프론 등이 TRPV1을 타깃으로 진통제를 개발하고 있다.
피에조 수용체는 아직 약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여러 질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 교수는 “피에조 수용체에 문제가 생길 경우 다양한 생리학적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지금껏 원인을 알지 못했던 질환들에게 돌파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수상이 다소 예상 밖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생리의학상이 ‘정통’ 생물학보다는 의학 관련 연구에 주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이러스학 혹은 백신 의학과 관련한 과학자에게 수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커털린 커리코 독일 바이오엔 수석부사장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노벨위원회는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교수의 손을 들었다. 고온 감지해 통증 유발하는 ‘TRPV1’, 감각 수용체 연구 불 지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을 견인한 논문은 크게 세 가지다. 줄리어스 교수가 199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TRPV1’의 발견,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교수가 2002년 동시에 발견한 ‘TRPM8’의 발견(각각 <사이언스>와 <셀>에 게재), 파타푸티언 교수가 2010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피에조(PIEZO 1, 2)’ 유전자의 발견이다.
우선 줄리어스 교수에게 상을 안겨준 기념비적인 논문인 <네이처> 논문은 현재까지 9141회 인용될 정도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온도와 통각 사이의 관계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가 밝혀낸 온도 감지 수용체 ‘TRPV1’은 온도가 43℃ 이상이 되면 열리는 이온채널로 통증을 유발한다. 줄리어스 교수는 캡사이신을 이용해 TRPV1의 존재를 찾아냈다. 이전부터 캡사이신이 체온을 높이고 통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줄리어스 교수는 열이나 접촉, 통증 등에 반응하는 감각 뉴런의 DNA를 쪼개, 수백만 개의 DNA 단편으로 이뤄진 라이브러리를 제작했다. 연구진은 캡사이신에 반응하지 않는 세포에서 각각의 DNA 단편을 발현시켰다. 이후 각각의 세포에 캡사이신을 뿌려,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포를 걸러냈다. 이렇게 걸러진 세포 내 유전자는 새로운 이온 채널을 암호화하고 있었고, 이를 TRPV1이라고 명명했다.
줄리어스 교수의 연구는 온도·촉각 수용체 연구에 불을 지폈다. 파타푸티언 교수와 줄리어스 교수는 경쟁적으로 후속 연구에 나섰고, 각각 독립적으로 ‘TRPM8’이라는 수용체를 발견했다(2002년 각각 <셀>과 <네이처>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TRPM8은 TRPV1과 정반대로 25℃ 이하의 낮은 온도에 반응하는 이온채널이다. 박하 향이 나는 멘톨이라는 물질에 의해서 활성화된다.
두 수용체를 필두로 온도 조건에 따라 활성화되는 추가 이온채널이 발견됐다. 52℃ 이상에서 활성화되는 TRPV2(1999년 줄리어스 교수가 단독 발견해 <네이처> 게재), 33~39℃에서 활성화되는 TRPV3(파타푸티언 교수를 포함한 3개 그룹이 동시 발견), 17℃ 이하에서 활성화되는 TRPA1(2003년 파타푸티언 교수가 단독 발견해 <셀> 게재) 등이다. 파타푸티언 교수와 9편의 논문을 함께 발표한 황선욱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는 “두 교수는 경쟁자이자 조력자였다”며 “두 그룹이 경쟁적으로 촉각 수용체를 발견함으로써 이 분야의 돌파구를 마련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후속 연구를 낳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압력은 어떻게 다양한 촉각으로 변환되는가
파타푸티언 교수는 관련 연구를 지속하던 중 2010년 온도가 아닌 압력에 의한 촉각 수용체를 발견했다. 이 연구가 바로 2010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다. 연구진은 먼저 마이크로피펫으로 찔렀을 때 전기적인 신호를 발산하는 세포주를 분리했다. 외부 힘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것 역시 TRPV1과 같은 이온채널이라고 가정하고, 세포주 내 이온채널을 코딩하고 있는 유전자 72개를 선별했다. 연구진은 72개 유전자를 하나씩 비활성화시켜(gene silencing) 기계적인 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에는 그리스어로 압력을 뜻하는 ‘피에조(PIEZO)’라는 이름이 붙었다. ‘PIEZO1’이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근처에 유사한 기능을 하는 ‘PIEZO2’가 연이어 발견됐다. PIEZO2는 자신의 신체 위치나 자세, 운동의 방향 등을 감지하는 ‘고유 수용성 감각(proprioception)’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피에조 수용체가 혈압, 호흡, 방광 조절 등 압력과 관련한 여러 생리학적인 과정을 조절한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연구가 발표된 이후) 적혈구가 압력을 감지하고 부피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압력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평균보다 많은 경우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탈수된(dehydrated) 적혈구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또 면역세포에서 이 단백질이 혈액의 철분 양을 조절하는 데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구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압력 감지 수용체가 이렇게 많은 생리학적 과정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하지만 피에조 수용체가 어떤 기전으로 생리학적 과정을 조절하는 것인지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분자 작동 원리가 보편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적혈구에서 탈수 현상이 일어나면 세포막은 좌우로 늘어나는 기계적 자극(전단, stretch)을 받게 된다. 호흡도 폐포가 확장하고 수축함에 따라 주변 조직이나 신경에 전단 자극을 주게 된다. 피에조 수용체가 이런 자극을 받으면 전기적 신호를 보내게 되고, 이어지는 생체 신호에 의해 생리학적 과정이 조절된다는 것이다.
비마약성 진통제의 주요 타깃이 된 TRPV1
두 과학자가 발견한 온도·압력 감지 수용체는 많은 의학적 발전을 가져왔다. 실제 바이오 업계에서는 TRPV1을 타깃으로 하는 진통제 약물을 개발 중이다. 현재 처방되고 있는 많은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다.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 등이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며, TRPV1의 활성을 막는 ‘TRPV1 길항제’가 큰 주목을 받았다.
2010년 전후로 아스트라제네카, 애보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머크(MSD) 등이 뛰어들었지만 독성이나 효능 부족의 문제로 대부분 임상에 실패했다. 현재는 화이자와 암젠, 노바티스 등 소수 기업이 약물을 개발 중이며 제넨텍도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메디프론 등이 TRPV1을 타깃으로 진통제를 개발하고 있다.
피에조 수용체는 아직 약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여러 질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 교수는 “피에조 수용체에 문제가 생길 경우 다양한 생리학적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지금껏 원인을 알지 못했던 질환들에게 돌파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