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부족한 수소 中企 "日 은퇴자 모셔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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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리포트
수소산업 붐에 인력 확보 전쟁
경쟁사에 직원 뺏긴 중견기업
부랴부랴 연봉 10% 올려
연료전지 기술자는 연봉 1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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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산업이 활성화하면서 수소경제 가치사슬(밸류체인)에 속한 중소·벤처기업들의 인력 확보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 분야 석·박사나 유력 연구소 출신 인력은 대기업도 채용하고 있어 점점 고급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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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주로 인력 유출 방어
20일 산업계에 따르면 수소 자동차 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중견기업 B사는 올초 직원 연봉을 9~10%가량 일괄 인상했다. 다른 경쟁업체에서 연봉을 높여 경력 직원을 데려가는 일이 증가하자 경영진에서 기본급을 일괄 인상한 것이다. 이 업체 대표는 “올 들어 대기업에서 수소차 관련 수주가 크게 늘어 20여 명의 직원을 새로 채용했다”며 “예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뽑았지만 직원들의 이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일부 중견기업은 직원들에게 우리사주 등을 제시하며 인력 유출을 막고 있다. 수소자동차에 사용되는 탱크(수소튜브)를 제조하는 일진하이솔루스는 올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기 앞서 우리사주를 모든 직원에게 살 수 있게 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최대 1억원까지 이자비용을 부담해줬기 때문에 인당 3000주 이상 매입했다”며 “주가 상승으로 직원들 사기도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상장 전 직원들이 공모가(3만4300원)에 매입했기 때문에 두 배 이상 평가이익이 난 셈이다.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엔지니어들의 몸값은 최근 크게 올랐다. 일선 중소·중견기업의 수소 연료전지 관련 과장·차장급 엔지니어 연봉이 9000만~1억원에 달한다. 대기업에서 수십여 년 활동한 뒤 은퇴한 수소 기술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서 임원급으로 채용돼 1억~1억5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제시받고 있다.
기업들은 수소 기술이 계속 고도화되는데 이에 걸맞은 경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크게 부족한 점이 불만이다. 일반 중소기업에서는 수소에너지 기술의 기초가 되는 화학·기계 등 전공자를 뽑아 실무 교육을 거쳐 수소 엔지니어로 키우는 게 일반적이다.
수소충전소 구축사업을 하는 발맥스기술의 김일환 대표는 “수소 운송을 위해 영하 253도 극저온 상태로 냉각된 액화수소를 생산해야 하는데 액화천연가스(LNG)의 초저온 냉각 기술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며 “경력자 채용 시 각종 가스 업무를 했던 직원을 채용해 재교육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2030년 수소 390만t 사용”
부족한 개발 역량을 보충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대학·연구기관 등과 협업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수소 생산설비 및 수소 저장합금 기업인 원일티엔아이는 지난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으로부터 하루에 645㎏을 생산할 수 있는 고순도 수소생산기술도 이전받았다.이 업체는 내년까지 이 연구원에서 100억원 규모 기술이전이 예약돼 있다. 그 덕분에 수소차 충전소에서 도시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순도 99.9% 이상 수소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했다. 이정빈 원일티엔아이 대표는 “기술이전을 통해 원천 기술을 확보하면 외부 투자를 받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수소산업 붐’은 현재 정부 및 대기업이 이끌고 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내놓는 등 수소경제에 대비해왔다. 지난 7일 정부가 연간 22만t 수준인 국내 수소 사용량을 2030년까지 390만t으로 늘리겠다는 ‘수소 선도국가 비전’도 발표했다. 국내 정유사 및 자동차 기업들은 수소 생산량을 늘리고 열차·선박 및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 수소를 연료로 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홍성안 GIST(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유럽연합(EU)이 2035년까지 모든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를 선포하는 등 기업 입장에선 친환경 제품에 대한 개발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며 “수소 인프라 관련 기업의 채용 경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나 최근 너무 많은 기업이 수소산업에 뛰어들며 과열 조짐도 보여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동현/김진원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