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추진 30년만에 건립

1980년대부터 계획 간헐적 제기
1990년대부터 본격 추진
재일동포 사회 내 견해 차 등으로 늦어져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의 가상도 / 사진 = 주후쿠오카총영사관 제공
일본 나가사키에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다.

20일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건립위원회와 주 후쿠오카대한민국총영사관 등에 따르면 내달 6일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위령비 제막식이 개최된다.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돼 약 7만4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수천명~1만명은 조선인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제에 의해 공업 지역인 나가사키로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 노동자 등 우리 동포가 미군의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었다.

다른 원폭 투하 지역인 히로시마시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현지 평화기념공원에 건립됐다.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 5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리고 있지만 위령비가 없는 나가사키에서는 어떠한 행사도 없다.

이에 나가사키 위령비 건립 계획은 198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제기되다 1990년대부터 본격 추진됐다. 그러나 건립 방식을 둘러싼 재일동포 사회 내 견해차와 평화공원 재정비 사업으로 인한 부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추진이 중지되어 왔다.이후 2011~2012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후쿠오카총영사관이 나가사키시에 평화공원 내 건립 장소 제공을 요청하면서 건립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2013년에는 민단 나가사키본부와 후쿠오카총영사관, 한국후쿠오카청년회의소 등으로 구성된 건립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러나 나가사키시 측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인 강제 징용 관련 비문 내용과 위령비 디자인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또한, 아울러 2015년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당시 강제노동 관련 한일 외교 갈등이 불거지면서 나가사키시가 중앙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허가가 늦어졌다.위령비 건립위 등은 시 당국과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전개해 올해 3월 부지 제공 승인이 났고, 지난달에는 비문 문구 등에 대한 세부 협의도 끝났다. 비문에서 당국이 반대한 '강제 징용'이라는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넣는 것으로 의견을 절충했다.

후쿠오카총영사관 측은 "재일동포와 한국 정부의 오랜 염원이었던 이번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통해 태평양전쟁 당시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 영령을 재일동포뿐 아니라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자유롭게 추도할 수 있게 됐다"며 "전쟁과 피폭의 역사를 후세에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징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