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ANALYSIS] 감염병 시대의 또 다른 위협, 슈퍼박테리아

글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센터장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히 무섭다. 치사율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드물게 과도한 면역반응이 나타나는 경우 병원에서는 면역억제제인 ‘덱사메타손’을 사용한다. 과다하게 인체 세포가 반응하고 있는 것을 억누름으로써 증상을 완화하려는 전략이다.

이 시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바이러스 이외의 다른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다.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은 외부 미생물에게 절호의 기회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항생제를 처방할 수밖에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환자의 87%가 항생제를 처방받지만 그중 세균의 2차 감염이 발생한 사례는 6.9%에 그쳤다.

어떻게 슈퍼박테리아가 되는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페니실린은 인류의 수명을 최소 20년 이상 연장시켰다. 페니실린이 개발된 이후 굴지의 제약회사들은 더 강하고 효능이 뛰어난 항생제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인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이다. 항생제는 기본적으로 합성 화합물이다. 이 화합물은 박테리아가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과정(DNA→RNA→단백질)을 막거나, 우리의 피부에 해당하는 박테리아의 세포막과 세포벽에 구멍을 낸다.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박테리아는 외부에서 구멍을 내면 외부와 내부의 압력 차이로 인해 풍선처럼 터지게 된다.

항생제의 공격에 맥을 못추던 박테리아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일부 변형시켜, 항생제를 직접 분해하거나 항생제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밖으로 배출해버리기 시작했다. 혹은 항생제가 결합할 수 없도록 자신의 몸을 바꿔나갔다. 이렇게 항생제에 저항성을 가지는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갈림길에 선 우리, 새로운 항생제는 왜 나오지 않는가슈퍼박테리아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만약 슈퍼박테리아의 광범위한 감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페니실린 이전의 시대를 상상하면 인류 수명이 30~50년 줄어들게 된다.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한순간의 실수로 생긴 상처 때문에 패혈증으로 죽게 될 수도 있다.

2014년 영국 정부는 항생제 내성 대책위원회 연구보고서를 통해 항생제 내성 확산이 지구온난화보다 시급한 위험요인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는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암에 의한 사망자보다 많은 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십년간 거대 제약사들이 내성 박테리아 타깃의 항생제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지만 이렇다 할 항생제를 개발하지 못했다.슈퍼박테리아를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항생제를 개발해낸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내성 박테리아가 발생한다. 이들을 죽이기 위해 여러 항생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 더 강력한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난다. 큰 자본을 투자해 개발한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수지가 안 맞는 일에 기업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 필요해… 국내는 약가 문제도 숙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유명한 이 대사는 우리가 직면한 슈퍼박테리아 문제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항생제를 마음껏 개발하고 처방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을 손놓고 바라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각국 정부는 항생제 개발을 기업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항생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 감염병연구재단(DNDi)에서 2006년에 설립한 ‘GARDP’는 2025년까지 5개의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CARB-X’는 게이츠재단이나 영국의 웰컴트러스트,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독일 연방 교육연구부(BMBF) 등에서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항생제 타깃과 항생제 개발 아이디어에 대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항생제를 최초로 개발한 영국에서는 2014년 어떤 방법이라도 슈퍼박테리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면 170억 원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항생제의 낮은 약가다. 현재 한 알에 1000원 이하의 항생제 가격으로는 새로운 항생제의 씨를 심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미국은 100달러 항생제를 허가했다. 미국과 유럽에는 1만~10만 원 하는 항생제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국내에는 의료수가 문제로 고가의 항생제가 들어올 수 없다. 슈퍼박테리아로 죽어가고 있지만 환자 가족이 획기적인 신약 항생제를 구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전향적으로 항생제 가격을 정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국내 연구개발(R&D) 환경을 감안할 때 부처의 지속적인 지원 아래 대학을 중심으로 후보약물 선발이 이뤄졌고, 특허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동물모델 개발, 독성평가와 약동력학(PK/PD)에 대한 결과 없이 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이 공백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과제가 필요하다. 국가 지원으로 독성과 약동력학을 평가하는 인프라가 절실하다.

새로운 기전의 항생제 개발 필요

연구 분야에서는 새로운 무기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기존 항생제와는 전혀 다른 기전의 약물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항균제발견센터는 2015년 ‘테익소박틴(teixobactin)’이라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했다. 일반 배지에서는 자라지 않는 미생물로부터 항균물질을 얻어냈다. 기존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특정 단백질을 공격하지만 이 물질은 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는 세포벽을 공격해 내성 가능성을 낮췄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대체요법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 시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슈퍼박테리아는 예기치 못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지금이라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수년 내에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저자 소개>

류충민
경상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한 뒤 미국 오번대에서 병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생명공학 연구원에서 20년 이상 미생물과 감염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감염병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과학 학술지인 <식물과학 프론티어(Frontiers in Plant Science)>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