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VIEW] 디지털 바이오마커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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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승재 한미약품 최고의학책임자(CMO)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을 깨어 있고, 걷고 움직일까. 이제는 이런 고민을 할 새 없이 나의 모든 생활 패턴이 기록되는 시대가 됐다. 잠을 잘 때 빼곤 도통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과,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몸에 붙어 다니는 스마트워치 덕분이다. 디지털 치료제가 전통적인 치료의 개념을 바꾸듯 디지털 바이오마커의 등장이 신약 개발 환경을 바꾸고 있다.
우울증, 수면장애와 같은 인지-행동치료에서 시작한 디지털 치료제가 그 의미와 영역을 계속 변화시키며 또 넓히고 있다. 초기에만 해도 기존에 대면으로 하던 인지-행동치료를 모바일 및 디지털 환경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려는 방식의 전환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의 장기화로 비대면 생활 시대가 열리면서 디지털 치료제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바이오마커 없는 신약 개발은 이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디지털 치료제에 적합한 디지털 바이오마커의 중요성이 필연적으로 커지고 있다.
순수 디지털 바이오마커부터 하이브리드 마커까지
지난해 7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발간한 ‘글로벌 디지털 바이오마커 시장 현황 및 전망’ 보고서는 글로벌 디지털 바이오마커 시장이 2018년 5억2000만 달러(약 6000억 원)에서 2025년 56억4000만 달러(6조8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연평균 성장률은 40.39%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관련업계 이해관계자들 간 협업과 시너지 증가를 시장 확대의 원인으로 꼽았다.전통적인 바이오마커는 질병의 진행 상황이나 치료에 대한 반응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리표지자(surrogate marker)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리표지자가 디지털 도구를 통하여 수집된 경우 이를 디지털 바이오마커라고 한다. 이는 스마트워치 같은 웰니스 기기를 이용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인 라이프 로그(수면, 식사, 운동시간 등)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하위의 개념이다.
질병이나 치료에 대한 반응과 같이 목적을 두고 기록을 수집 및 통계처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유효성이나 안전성 같은 판단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혈압 자체는 전통적인 바이오마커이지만 이 혈압을 측정하는 방식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며, 소수의 특정 환자나 연구·진단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측정되고 기록이 된다면 혈압도 디지털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이러한 디지털 바이오마커는 크게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에 따라 웨어러블 기기, 바이오센서, 모바일 앱, 장치 및 플랫폼, 그리고 데스트톱 PC 기반 소프트웨어로 나뉜다. 또 이러한 다양한 기기를 통해 취합되는 디지털 정보를 관리, 통제하는 데이터 통합 시스템이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피트니스 밴드나 스마트 시계와 같이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손목이나 가슴에 착용해 일관된 물리적 접촉에 따른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해외업체로는 액티그래프, 얼라이브코어, 애플, 가민, 핏빗 등이 있으며, 국내업체로는 삼성전자, 미주(MEZOO)가 대표적이다.
비침습적인 웨어러블 기기와 달리 바이오센서는 침습적인 임플란트 기기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콘택트렌즈를 이용해 눈물에서 혈당을 측정한다면 웨어러블 기기로 판단할 수 있으나, 지금의 연속혈당측정기처럼 피부에 침을 삽입하여 측정을 한다면 바이오센서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모바일 앱 역시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위에 언급한 연속혈당측정기를 관리하는 모바일 앱부터 기본적인 체중 및 수면 기록을 기록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쓰고 또 관리하고 있다. 비접촉이라는 모바일의 특성상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간접적·심리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현재 대부분의 디지털 치료제는 이러한 모바일 앱을 이용해 인지·행동 치료를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전환해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비대면 진행이 대면 진행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는 자료를 많은 회사에서 만들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많이 개발하고 사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디지털 바이오마커만으로는 한계점을 느끼는 일부 디지털 치료제 개발회사에서는 전통적인 바이오마커와 함께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디지털 치료제-아날로그 바이오마커의 측정 및 통합을 위한 장치 및 플랫폼 사업도 진행 중에 있으며, 일부 제한적이기는 하나 모바일이 아닌 데스트톱 PC 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도 있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 및 바이오센서, 앱 등을 통해 기록되고 저장된 정보를 통합하여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데이터 통합 시스템 개발도 발리딕, 휴먼API, 애플, 퀄컴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다. 적용 사례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신생벤처) 비욘드 보컬은 목소리를 분석해 사람의 감정, 특히 우울의 정도를 측정해 목소리를 이용한 우울증 추적관찰 기술을 개발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보컬리스헬스라는 업체는 목소리를 분석해 코로나19의 감염 여부와 회복 정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디지털 바이오마커로 활용해 진단과 원격 모니터링에 응용한 것이다.생리학적 바이오마커와 행동 바이오마커
또 어떠한 데이터를 측정하느냐에 따라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생리학적 혹은 행동 마커로 구분할 수 있다.
생리학적 바이오마커는 데이터의 질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질병이 진행되는 동안 한두 번 측정하는 데 그쳤던 검사를 웨어러블 기기 등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됐다. 혈당, 혈압, 맥박과 같은 신체 계측뿐 아니라 향후 기술 개발에 따라 유전자의 변화 정도나 세포 노화 정도 등도 측정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행동 마커 또한 기존 대비 높은 수준으로 측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스트레스 수준, 불안 수준, 수면시간 및 체력 등을 상시 측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간 수치적으로 나타내기 어려웠던 정신건강이나 체력을 수치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대상자가 의식하지 않는 중에 측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 측정 방법에 비해 더 정확할 수 있다.
현재는 이러한 행동 마커에 좀 더 집중해 환자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나 지속적으로 외부로 내보내고 있는 심리적인 징후(sign)를 기기를 이용하여 잡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생리적 마커와 행동 마커는 근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행동 마커는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그것을 인공지능(AI) 혹은 머신러닝과 같은 방식을 통해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전체에서 보았을 때 어떠한 패턴일지, 마치 나의 행동을 바탕으로 나의 혈액형이 ABO형 중 무엇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편, 생리적 마커는 나의 혈액형을 바탕으로 어떠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접근 방식이다.
이러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의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어떻게 조화롭게 개발할지가 향후 많은 회사의 고민 거리 및 화두가 될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소개>
백승재
연세대 의과대를 졸업했으며 이비인후과 전공의 두경부 전임의를 수료했다. 현재 한미약품 최고의학책임자(CMO)를 맡고 있으며 디지털 치료제와 관련한 국내외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