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그녀의 당당한 눈빛…부르주아의 위선을 고발하다
입력
수정
지면A23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은 당대에는 논란의 대상이 되거나 스캔들을 일으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의 미술비평가 피에르 카반에 따르면 질서, 익숙함, 안정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스캔들이 일어난다. 인상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걸작 ‘풀밭 위의 점심’은 시대에 저항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일수록 스캔들의 파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1863년 프랑스 살롱 낙선전에 출품된 이 작품은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다. 낙선전은 말 그대로 살롱전에서 탈락한 작품만을 모아 별도의 공간에서 열린 전시를 가리킨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이었다. 살롱전은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유일한 공식 미술전람회로, 입선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구조였다. 1863년 살롱전 심사에서 5000여 점의 출품작 중 약 3분의 2가 무더기로 탈락했다. 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젊은 화가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언론도 개입해 편파적 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신흥 귀족들 탐욕·타락 그려
당대엔 "외설" 혹평 받았지만
오늘날 "위대한 혁명" 찬사
황제의 입장 표명이 요구되자 나폴레옹 3세는 불만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낙선전’ 개최를 파격적으로 허용했다. 살롱전의 낙선자인 마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알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마네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출품해 관객의 주목을 받는다는 성공전략을 세웠다.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풀밭 위의 점심’을 세 점의 출품작에 의도적으로 포함시켰다.그런데 마네의 예측을 뛰어넘어 스캔들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863년 5월 15일 ‘낙선전’이 개최된 첫날, 7000여 명의 관객이 ‘풀밭 위의 점심’이 걸린 전시실로 몰려들었다. 작품 앞에선 관객들이 혼란과 동요, 분노의 감정을 드러냈고 비웃음과 모욕, 규탄, 혹평 등 온갖 형태의 비난이 쏟아졌다.
오죽하면 작품이 전시된 홀을 ‘경악의 방’으로 불렀을까. 이 그림의 어떤 점이 동시대인의 심기를 그토록 건드렸던 걸까. 주제의 파격성과 기법의 현대성이다. 그림에는 도시를 벗어나 교외 숲속으로 소풍을 나온 네 명의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부르주아 계급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두 신사는 편안한 자세로 풀밭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성매매 여성으로 보이는 둘 중 한 명은 나체 상태로 풀밭에 앉아 관객을 빤히 바라보고, 다른 한 명은 속옷 차림으로 강에서 목욕을 즐기는 중이다. 화면 왼쪽 앞 풀밭에는 두 여성이 벗어던진 옷과 뒤집힌 피크닉 바구니에서 쏟아진 과일, 빵, 술병이 널려 있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옷가지와 음식물은 대낮 야외에서 네 남녀의 성행위가 이뤄졌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나체 여성의 도발적인 시선과 음란한 자세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녀의 당당하고 오만한 눈길은 부도덕한 행동에 대한 성적 수치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장을 한 남자와 벌거벗은 여성과의 에로틱한 조합은 마네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전원의 합주’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에서 구도와 주제를 빌려왔다.익숙한 주제를 재해석한 그림에 시민들이 왜 그토록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을까. 16세기 그림들은 신화 속 공간에서 벌어진 가공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마네의 그림 속 공간은 실제로 있는 공원이며 네 인물도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남녀다. 피크닉 장소는 파리 외곽의 대형 공원이고, 두 남성은 마네의 형제와 처남, 두 여성은 유명 모델들이다. 또 두 신사는 당시 유행한 복장을 하고 있다.
즉 신흥 귀족 집단인 부르주아 계층이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음란 행위를 벌이는 장면이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마네가 인물의 현대성과 장소의 사실성을 강조한 의도는 기득권층인 부르주아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고 가치관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 작품은 서양미술을 지배했던 단일 시점의 원근법 법칙도 깨뜨렸다.
배경의 목욕하는 여성은 오른편에 있는 배에 비해 크게 그려졌다. 주제의 선정성과 기법의 혁신성을 결합한 이 작품은 당시 ‘가장 저속하고 외설스러운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부르주아의 탐욕과 위선, 성적 타락과 방종을 고발하는 한편 도시민의 취향과 여가 활동, 소비문화를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르네상스 이래 시각예술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