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밥값도 월급도 금조각으로…법정화폐 신뢰도 '바닥'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베네수엘라
금 조각 떼어내서 식사, 숙박비 지급
법정통화 신뢰도 떨어져 발생
사진은 기사와 무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너진 법정통화 신뢰도와 살인적 인플레이션 때문에 법정통화가 아닌 금덩어리가 베네수엘라에서는 실제 통용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 시각) ‘밥값과 이발비를 내기 위해 금 조각을 떼어내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전 세계 다른 곳에서는 1세기 전부터 금을 교환수단으로 쓰지 않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요즘 다시 (금을 이용한 거래가)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투메레모에 사는 호르헤 페냐는 “뭐든 금으로 살 수 있다”고 블룸버그와 인터뷰했다. 금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드문 일이 아닌 현지에서는 매번 무게를 재지도 않고 익숙하게 거래를 하고 있다. 3개의 작은 조각은 0.125g 정도 되고,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5달러쯤 된다. 주민들은 가치가 없는 지폐를 그저 손수건처럼 사용하는 듯, 금 조각을 감싸서 들고 다닌다고 한다.

투마레로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오마르는 숙박비를 금으로 받고, 직원들 월급도 금으로주고 있다. 또한 투숙객 가운데 3분의 2가 금으로 방값을 낸다고 한다. 금이 없으면 달러나 다른 외화도 받고 있다. 오마르는 “(볼리바르를) 법적으로 거부할 수 없어 마지못해 받고,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써버린다”고 밝혔다.

화폐 대신 금이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법정화페인 볼리바르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년째 경제 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한때 연간 물가상승률이 수백만% 치솟았으며 현재도 수천%에 이른다. 수년 전부터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을 아예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를 여전히 사용하는 것은 빈곤층에 불과하다. 블룸버그는 “달러나 다른 통화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만 여전히 볼리바르를 쓴다”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 경제학자인 루이스 비센테 레온은 “사람들은 볼리바르를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부의 저장이나 회계, 교환 수단으로 더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달 초 리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변경)을 단행했다. 이제 100만볼리바르가 1볼리바르로 바뀌었다. 화폐 사용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라는 게 베네수엘라 정부의 설명이지만, 화폐 개혁의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