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관광’ 고민하는 여행업계
입력
수정
코로나19로 중단됐던 관광산업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전과는 달라진 여행 트렌드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지속 가능한 연료, 그린 호텔 등을 시작으로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한경ESG] 이슈 브리핑코로나19 이후 관광업계가 주목하는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다. 팬데믹 이전 전 세계 주요 관광지는 환경과 지역사회에 부담을 주는 ‘과잉 관광’으로 고통받았다. 대표적 예가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도시 베네치아에 매년 24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것이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문제뿐 아니라 지역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관광시설로 바뀌면서 지역사회가 파괴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펼쳐진 지역 간 이동 및 외국인 입국 제한 등의 정책은 여행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교통량, 대기오염 등이 모두 감소한 탓이다. 주요 관광지를 보유한 국가들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광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자 비율이 높아지며 여행 제한도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관광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항공연료부터 대체 시작
유럽여행위원회(ETC)는 지난 9월에 발표한 핸드북에서 코로나19 이후 관광 트렌드는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ETC가 정의한 지속 가능한 관광이란 관광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 영향에는 경제적 유출, 환경파괴, 인구 과밀화 등을 의미한다. 반대로 일자리 창출, 문화유산 보존, 야생동물 보호 등이 잘 이루어지는 관광은 긍정적 영향이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은 이동 수단의 탄소배출량 감소다. NGO 서스테이너블 트래블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 중 약 8%를 차지하며 그중 절반 이상은 항공을 비롯한 교통수단에 의한 것이다. 항공기는 고도와 무게에 따라 배출하는 탄소량이 증가한다. 특히 중단거리 비행이 많은 유럽의 경우 열차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를 오가는 항공편을 축소·폐쇄하며 이에 대응하고 있다.
국제 항공편을 운영하는 항공업계는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AF)를 사용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4월 목적지와 관계없이 EU 역내 국가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에 SAF 혼합 사용 의무화 방침을 발표하며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올해 SAF 연료 340만 갤런을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델타항공 역시 SAF 연료 사용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 맵, 스카이스캐너 등의 서비스에서는 자체 산출 방식을 기반으로 동일 경로에서 탄소배출량이 평균보다 적은 항공권을 고객에게 추천하기도 한다. 에코·그린 호텔 활성화까지호텔을 비롯한 숙박업체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얏트, IHG호텔앤리조트, 메리어트, 포시즌스 등 전 세계 유명 호텔들은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Sustainable Hospitality Alliance’에 가입했다. 이니셔티브는 인권, 청년 고용, 기후 행동, 물 관리 등을 주요 4개 목표로 삼고 적극적 대응을 약속한다. 탄소배출량 저감을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고 생분해성 용기를 사용하거나 소형 어메니티 대신 대형 어메니티를 활용한다. 지속 가능한 호텔 브랜드 확보를 위한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여행을 제안하는 플랫폼도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부킹닷컴, 스카이스캐너, 트립어드바이저, 구글 등은 지속 가능한 여행 연합체 ‘트래벌리스트(Travalyst)’에 합류했다. 트래벌리스트는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항공 이용부터 숙소, 여행지 관광까지 여행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과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있다. 각 플랫폼은 그린 투어리즘, EU 에코라벨 등 공인 기관으로부터 인증받은 숙소에 별도로 인증마크를 제시하는 등 친환경 정보 제공에도 적극적이다.
구글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숙소에 나뭇잎 마크로 표시하며 부킹닷컴은 숙소가 시행하는 지속 가능 관련 이니셔티브를 여행객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 마리안 히벨스 부킹닷컴 지속가능성 부문 디렉터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전등으로 교체하는 것 같은 작은 노력도 전 세계 여행객과 숙소 운영자들이 함께한다면 긍정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관광도시를 목표로 적극 나서는 국가도 있다. 필리핀 관광부는 자원 소비를 최소화하며 저탄소배출을 위한 지속 가능한 관광 전략의 일환으로 국가 녹색 인증 제도인 ‘아나하우 필리핀 지속 가능 관광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나하우 인증 제도는 폐기물, 에너지 소비 등을 적극 관리하거나 현지인을 고용하는 등 환경·사회적 노력을 하는 숙소에 높은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다. 세계자연기금과 함께 운영하는 ‘지속 가능한 다이너 프로그램’으로 환경친화적 식사 옵션을 제공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등 관광상품 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필 플로렌스(Feel Florence)’라는 앱을 출시했다. 시민의 일상적 삶을 보장하고 특정 관광지에 몰리는 여행객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관광지의 실시간 밀집도 제공,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유도하는 여행 코스 추천, 녹지공간 소개 등을 통해 새로운 관광 방식을 소개한다.
한편 유로미터 인터내셔널은 관광 목적지, 관광 기업 등이 지속 가능한 관광 모델을 형성할 수 있도록 각 국가별 지속 가능한 관광지수를 발표했다. 환경적 지속 가능성, 사회적 지속 가능성,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비롯한 7개 분야에서 전 세계 99개국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한 결과 스웨덴이 전체 1위에 올랐다. 2위는 핀란드, 3위는 오스트리아가 뒤를 이었고, 한국은 78위였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