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판치는 부실 공시…"절반은 제재금 한푼도 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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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5
올해 상장사 106곳 제재
마스크 수출 번복 엘아이에스
유상증자 4회 철회한 쎄미시스코
제재금 3000만원 '솜방망이 처벌'
1억 이상 제재는 남양유업뿐
"불성실 공시해도 큰 타격 없어"

오스코텍이 임상 사실을 공시한 것은 8개월 뒤인 8월 13일이다. 주가가 이미 반토막 난 이후다. 이런 잘못이 인정돼 오스코텍은 지난 15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제재금은 투자자들의 피해액보다 한참 적은 1600만원을 부과받았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분석한 결과 연초 이후 106개사(중복 지정 포함 시 109개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 중 제재금을 낸 곳은 55개사에 불과하다. 55개사가 부과받은 제재금도 총 13억8800만원에 그쳤다. 51개사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공시 위반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7년 93건이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수는 2018년 132건으로 급증한 뒤 감소하지 않고 있다. 2019년 148건으로 늘었고, 2020년에도 151건을 기록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 위반이 중견기업과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DB금융투자는 작년 11월 국민연금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지만 지난 8월이 돼서야 이 사실을 공시했다. 제재금으로는 400만원을 부과받았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8위인 오스템임플란트도 회사 분할과 주주총회 소집 결의를 철회한 사유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두산퓨얼셀도 채무보증을 지연 공시해 400만원의 제재금을 냈다.
제재금이 낮기 때문에 공시 의무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사 IR 관계자는 “회사들이 회계감사와 소송 등에는 수억원을 쓰지만 공시는 전문 인력조차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제도를 이해하는 전문가만 채용하면 위반할 일이 없는데,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장사 내에서 IR업무는 점점 기피 업무가 되고 있다. 업무 강도는 높고 법적 책임이 큰 것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공시대리인 제도를 도입했지만 등록한 회사는 한 자릿수로 알려졌다. 공시대리인 제도는 코스닥 신규상장법인(3년 이하)과 중소기업들이 외부 전문가를 공시대리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