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비에 연차수당 미포함…더 달라"했다가 패소…속속 드러나는 '엉터리 근로기준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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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계약직 연차 26일'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과 고용부의 지침이 엇갈리면서 현장 혼란이 극대화 됐지만, 이를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충돌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조항만 들어내는 형식의 조밀하지 못한 법 개정이 이런 상황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에도 1년 계약직 근로자의 연차휴가가 26일이라는 주장을 전제로 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는 지난 8월 19일 용엽업체 A회사가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청구한 약정금 소송에서 입주자대표회의 측의 손을 들어줬다.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2017년 말 B아파트의 경비와 청소를 담당할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계약기간을 2018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로 하되, '연차를 전부 소진하는 것'을 특약으로 걸고 입찰 공고를 냈다. 용역업체인 A회사는 특약 조건을 받아들이는 내용의 견적서를 제출해 낙찰 받고, B아파트 측과 경비·청소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약 연장에 이르지 못해 결국 경비원과 청소원들은 B아파트에서 딱 1년만 일하게 됐다.
그런데 계약기간 도중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근로기준법 60조3항이 삭제됨에 따라, 1년간 80% 이상 출근한 2년차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가 발생하는 것과 별도로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에게도 1개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60조3항은 1년차 근로자가 2년차에 발생하는 15일의 휴가를 당겨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규정 탓에 1년차 근로자에게는 별도의 연차휴가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삭제가 되면서 1년차에 발생하는 11일의 휴가와 2년차에 발생하는 15일의 휴가가 별도로 발생하게 됐다.
A회사는 “용역 계약 체결 당시 근로기준법이 개정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종전 근로기준법에 따라 발생하는 연차(11일)를 소진하는 것에 대해서만 합의를 했다”며 “B아파트는 연차휴가 15일에 대한 연차휴가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주장했다.11일을 소진했지만 15일의 유급휴가가 별도로 발생했으므로, 15일치 연차휴가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주장이다. 지난 14일 바뀐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15일치에 해당하는 추가적인 연차휴가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A회사는 15일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해석하고 용역 대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건 것이다.
법원은 아파트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심 수원지방법원은 “용역대금은 원칙적으로 실비 정산 항목이나 계약금액이 조정 가능한 경우 외에는 금액을 변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용역 계약 체결 당시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에 대한 착오가 있었다”면서도 “A회사는 자신의 위험부담 아래 B아파트 측이 제시한 입찰공고에 따라 입찰에 참여했고, 근로기준법 개정된 것을 알았더라면 근로자 당 15일의 연차휴가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는 용역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계약에 영향을 끼친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A회사는 계약서에서 “인력 결원이나 사정변경으로 도급비 세부 산출내역과 다르게 인건비 미지급 사유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한다”는 규정을 근거로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약서 규정은 인력 증감을 말하는 것이고, 유급연차휴가가 발생한 사정은 도급비를 정산할 사정변경으로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확정해 아파트 측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대법원이 지난 14일에 내놓은 "1년 계약직 근로자에게 15일의 연차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조금 일찍 내놨다면, 이 소송 자체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 당사자는 개정법 내용과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따라 26일이라는 것을 전제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원도 별도로 판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먹구구식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런 혼란을 부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60조를 손보면서 3항만 덜렁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을 뿐, 2년차 15일 휴가가 언제 발생하는지, 11일과 15일 간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개정이 혼란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곽용희 기자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는 지난 8월 19일 용엽업체 A회사가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청구한 약정금 소송에서 입주자대표회의 측의 손을 들어줬다.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2017년 말 B아파트의 경비와 청소를 담당할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계약기간을 2018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로 하되, '연차를 전부 소진하는 것'을 특약으로 걸고 입찰 공고를 냈다. 용역업체인 A회사는 특약 조건을 받아들이는 내용의 견적서를 제출해 낙찰 받고, B아파트 측과 경비·청소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약 연장에 이르지 못해 결국 경비원과 청소원들은 B아파트에서 딱 1년만 일하게 됐다.
그런데 계약기간 도중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근로기준법 60조3항이 삭제됨에 따라, 1년간 80% 이상 출근한 2년차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가 발생하는 것과 별도로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에게도 1개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60조3항은 1년차 근로자가 2년차에 발생하는 15일의 휴가를 당겨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규정 탓에 1년차 근로자에게는 별도의 연차휴가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삭제가 되면서 1년차에 발생하는 11일의 휴가와 2년차에 발생하는 15일의 휴가가 별도로 발생하게 됐다.
A회사는 “용역 계약 체결 당시 근로기준법이 개정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종전 근로기준법에 따라 발생하는 연차(11일)를 소진하는 것에 대해서만 합의를 했다”며 “B아파트는 연차휴가 15일에 대한 연차휴가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주장했다.11일을 소진했지만 15일의 유급휴가가 별도로 발생했으므로, 15일치 연차휴가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주장이다. 지난 14일 바뀐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15일치에 해당하는 추가적인 연차휴가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A회사는 15일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해석하고 용역 대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건 것이다.
법원은 아파트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심 수원지방법원은 “용역대금은 원칙적으로 실비 정산 항목이나 계약금액이 조정 가능한 경우 외에는 금액을 변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용역 계약 체결 당시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에 대한 착오가 있었다”면서도 “A회사는 자신의 위험부담 아래 B아파트 측이 제시한 입찰공고에 따라 입찰에 참여했고, 근로기준법 개정된 것을 알았더라면 근로자 당 15일의 연차휴가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는 용역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계약에 영향을 끼친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A회사는 계약서에서 “인력 결원이나 사정변경으로 도급비 세부 산출내역과 다르게 인건비 미지급 사유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한다”는 규정을 근거로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약서 규정은 인력 증감을 말하는 것이고, 유급연차휴가가 발생한 사정은 도급비를 정산할 사정변경으로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확정해 아파트 측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대법원이 지난 14일에 내놓은 "1년 계약직 근로자에게 15일의 연차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조금 일찍 내놨다면, 이 소송 자체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 당사자는 개정법 내용과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따라 26일이라는 것을 전제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원도 별도로 판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먹구구식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런 혼란을 부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60조를 손보면서 3항만 덜렁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을 뿐, 2년차 15일 휴가가 언제 발생하는지, 11일과 15일 간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개정이 혼란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