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채굴 원료를 찾습니다’…원재료 시장도 ESG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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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원재료 시장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얼만큼 채굴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채굴했느냐'를 주요 지표로 삼아 '착한 원료' 구하기에 잇달아 뛰어들고 있다. 업종별로는 배터리, 자동차, 타이어 업체들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한경ESG] ESG NOW기업이 원자재를 채굴하는 과정에서부터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를 하지 않는 ‘착한 원료’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공급망의 최종 단계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이 전면에 나서면서 원재료 시장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에는 비용과 생산 효율성이 구매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면, 최근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가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채굴 방식, 주요 기준으로 떠올라
업종별로는 자동차와 배터리, 타이어업체가 가장 적극적이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7월 “친환경 방식으로 니켈을 대량 채굴하는 회사가 있으면 장기 계약하겠다”라고 말하면서 ‘착한 배터리’ 공급에 불을 지폈다. 전기차 최다 판매 회사인 테슬라가 원료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방식을 요구하면서 ‘착한 원료’를 구하기 위한 배터리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얼마큼 채굴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채굴했느냐’가 주요 지표로 떠오른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2019년부터 ‘책임 있는 광물 조달 및 공급망 관리 연합(RMI)’에 가입해 원재료의 원산지 추적과 생산업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 원료인 코발트의 60%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산하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이 하루 1달러를 받고 12시간 일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국제적 지탄 대상이 됐다. 광산이 붕괴되면서 수십 명의 광부가 매장되는 사건도 수차례 발생했다. 채굴 과정에서 대기오염이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RMI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배터리업체가 함께 모인 단체다.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도 채굴 표준을 지킨 원료로 생산한 ‘착한 배터리’만 이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SK온은 스위스 클린코어와 코발트 3만 톤 구매 계약을 맺으면서 매년 독립기관으로부터 생산과정에 대한 외부 감사를 받기로 했다. 채굴 노하우가 공개되는 데 대한 위험보다 올바른 방식으로 원자재를 수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8월 호주의 원자재업체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즈(AM)와 니켈·코발트 공급계약을 맺었는데, 채굴 과정에서 나오는 광미(광물 찌꺼기)를 건조해 보관하는 제련 공장을 갖추기로 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삼성SDI는 BMW, 폭스바겐 등과 함께 광부에게 인권·환경 교육을 실시했다.
전력도 신재생에너지 이용해야배터리 3사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 이용하는 RE100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원료 공급지와 얼마나 가까운지, 인재를 모으기 좋은지를 기준으로 생산 시설 입지를 결정했다면 지금은 친환경에너지 수급이 가능한지가 핵심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EU가 친환경 배터리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배터리 규제안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EU는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량, 윤리적 원자재 수급, 재활용 원자재 사용 비율 등을 규정해 ‘지속 가능한 배터리’만 쓰겠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1차 협력사 30여 곳의 RE100 전환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인 RE100의 적용 대상을 협력사로 확대한 것이다. 이는 배터리 생산공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70%가 소재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전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협력사의 사용 전력까지 신경 써서 ‘탄소중립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취지다. 삼성SDI도 협력사의 RE100 전환을 위한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친환경, 식물성 원재료를 이용한 소재 비중을 늘리고 있다. 기존에 쓰던 가죽과 페인트, 원단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볼보는 2025년 신차를 제조할 때 바이오 소재 비율을 2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벤틀리는 식품 부산물로 발생한 지속 가능한 가죽을 이용하고 있다. 주행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전기차를 제조할 때도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지속 가능한 천연고무 생산 및 유통을 위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GPSNR 기준에 맞춰 고무를 공급받고 있다. 천연고무의 85%는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된다. 한국타이어는 고무 생산자를 교육시켜 품질을 향상하고 재배자의 삶의 질을 높일 계획이다. BMW는 타이어업체 피렐리와 협력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재배한 천연고무로 제조한 타이어를 쓴다.<요소> ‘착한 원료’ 찾는 국내외 기업
LG에너지솔루션 -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즈와 니켈 공급 계약 시 광미 제련 공장 구축키로
삼성SDI - BMW, 폭스바겐 등과 함께 광부에게 인권 및 환경 교육 실시
SK온 - 스위스 클린코어와 코발트 구매 계약 시 외부 감사를 받을 예정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 GPSNR 기준에 맞춰 고무 공급받아
BMW - 타이어업체 피렐리와 협력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재배한 천연고무 사용
볼보 - 2025년 신차 제조에서 바이오 소재 비율 25%까지 올릴 예정
벤틀리 - 식품 부산물로 발생한 지속 가능한 가죽 이용
[돋보기] 한발 앞서 ‘착한 원료’로 눈돌린 식품·패션업계 식품, 패션 등 소비자들이 자주 접하는 산업군에서는 지속 가능한 ‘착한 원료’를 일찌감치 도입해 상품을 제조하거나 포장재로 이용하고 있다.
최근 패션업계가 주목하는 회사는 미국 친환경 운동화 제조업체 올버즈다. 올버즈는 뉴욕 증시 상장을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서류를 제출했는데, 서류에서 ‘22억 달러(약 2조5650억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2015년에 설립한 올버즈는 울, 유칼립투스 등 천연·식물성 소재로 운동화를 제조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유명 인사와 실리콘밸리 근무자들이 애용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속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패션이 환경보호는 물론, 투자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CJ제일제당 등 식품업계에서는 식물성 고기, 식물성 우유 등 ‘대체 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소는 방귀를 통해 하루 150~500g의 메탄을 방출한다. 약 250g으로 계산할 때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6.25kg을 내보내는 셈이다. 승용차가 하루 35km 주행했을 때 방출하는 이산화탄소(3.5kg)의 2배에 가깝다. 식품업계가 식물성 고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실험실에서 재배하거나 식물성 원료를 활용해 사육되는 소를 줄일 수 있어서다. 귀리, 현미 등으로 만든 식물성 우유를 통해 젖소의 양도 줄일 수 있다. 식물성 고기 시장을 주도하는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미트의 기업가치는 뉴욕 증시에서 각각 약 4조원과 8조원에 달한다. 맥도날드도 11월 초 미국 8개 매장에서 비욘드미트 고기를 이용한 대체육 버거를 출시한다.
김형규 한국경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