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연애편지에 은행잎을 붙이는 까닭

은행나무 부부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 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 반칠환 :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 등 출간. 서라벌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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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에는 암수가 따로 있지요. 암나무는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를 받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도 수십 년 자란 암나무에만 열립니다. 어린 묘목으로는 암수를 구별하기 어렵죠.은행나무를 공손수(公孫樹)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에 할아버지가 심은 뒤 손자 때에야 열매를 보니까요.

괴테를 매혹시킨 은행잎의 비밀

한자로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를 의미합니다. 열매가 살구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전 세계에 1종 1속만 있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어서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립니다.

유럽 사람들은 18세기 초까지 은행나무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은행나무의 후손을 한 독일인 의사가 일본 근무 후 귀국할 때 갖고 간 뒤 유럽에 퍼졌지요.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은행나무에 흠뻑 매료됐습니다. 그는 정원에 심어둔 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생육 과정을 일일이 기록했지요. 그중에서도 부채 모양의 잎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나무가 어릴 땐 부채꼴의 절개선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명해져 두 개의 잎처럼 보이는 데 주목했지요.

그는 1815년 가을, 연인에게 쓴 편지에 ‘은행나무 잎’이라는 시를 쓰고 은행잎 두 장을 함께 붙여 보냈습니다. 시 첫머리를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어/ 그 뜻을 아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오’라고 시작한 그는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그런 다음 자신의 속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며 또 둘인 것을.’

둘로 갈라진 은행잎에서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의 합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그의 표정이 눈에 선하지요? 암수가 다른 은행나무의 수태 과정을 ‘둘로 나누어진 한 몸’의 의미와 접목한 감성이 남다릅니다.

반칠환 시인은 이보다 더한 사랑 이야기를 시로 승화시켰습니다. 괴테가 은행잎에 주목했다면, 그는 은행알과 뿌리에 초점을 맞췄지요. 그래서 ‘십 리를 사이에 둔’ 은행나무 부부가 ‘삼백 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고 첫 연을 시작합니다.

둘을 이어준 것이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과 그 속에 쌓인 수천 통의 ‘노란 엽서’라니, 동심과 연심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인의 상상력이 시공의 경계를 초월하는군요.

2연 끝의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라는 묘사는 곧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발칙한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땅속뿌리에서 일어나는 ‘내통’의 비밀스런 역사는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는 마지막 구절의 능청 덕분에 더욱 찰진 맛을 선사하지요.

숲해설가가 된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

이 같은 시인의 감수성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요. 그는 유년 시절을 인적 드문 숲속 외딴집에서 보냈습니다. 봄에는 진달래꽃을 따 먹고, 가을에는 코스모스로 바람개비를 돌렸으며, 자욱한 살구꽃 분홍 구름에 마음이 설레곤 했지요. 사람의 말을 배우기 전에 꽃의 언어를 먼저 배웠으니, 많은 시인과 예술가처럼 그의 영감의 원천은 숲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40대에 ‘옛 은사를 찾는’ 마음으로 숲해설가 양성기관을 찾았고, 마침내 숲해설가가 됐습니다. 시인이 들려주는 숲 해설 앞에서 사람들은 아이처럼 귀를 쫑긋거립니다.

그는 “숲 해설을 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어린 시절 숲 체험을 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감수성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앞의 세대는 들꽃 한 송이만 봐도 절로 감탄사를 터뜨리는데 뒤의 세대에겐 그저 붉은 건 꽃이요, 푸른 건 잎일 뿐이라는 얘기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꽃과 나무를 노래한 시를 낭송해도 그들에게는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릴 선체험이 없기 때문에 감동이 덜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어릴 때의 선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시도 “유년 시절 숲이 불러준 것을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겸손해하지요. 그가 맛깔스런 풍자와 해학으로 현대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어린이와 같은 동화적 상상력으로 우리를 어루만지는 것 역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내친김에 그의 짧은 시 한 편을 덧붙입니다. 제목은 ‘웃음의 힘’입니다.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