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도 영장도 '초보'…공수처, 역량 부족 드러내며 사면초가

'황제 조사'·'부실 구속영장' 좌충우돌…'특수통' 부재
"초등학생에게 기하학 문제 풀라고 다그치는 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9개월 만에 최대 위기에 몰렸다. 허술한 영장을 들고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연결고리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신병을 확보하려다 망신을 당하면서 수사 역량 부족에 대한 비판론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72년간 지속된 검찰의 기소독점에 제동을 걸고 권력형 비리를 파헤칠 새로운 사정기관이 돼 줄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출범 초기부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평가가 나온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의 빈곤한 수사 능력은 인적 구성 측면에서 출범 초반부터 단추를 잘못 채운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2월 판사 출신인 김진욱 당시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검찰 출신인 이건리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중 김 처장을 낙점했다.

검찰 견제를 위해 탄생한 조직인 만큼 당연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식 임명된 김 처장은 조직의 이인자로 또다시 판사 출신인 여운국 당시 변호사를 선택했다. 역시 검찰 출신 후보자가 있었지만, 3년 동안 영장전담 법관을 지낸 형사 전문 변호사라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조직의 수뇌부가 모두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으로 채워지며 불안한 시선을 받던 공수처는 이른바 출범 초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했다.

지난 3월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 무마' 혐의를 받던 당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휴일에 관용차에 태워 처·차장이 직접 비공개 면담했다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김 처장은 "인권친화적 수사기구를 표방하고 있기에 면담 신청을 받아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번 손준성 검사 신병 확보 과정에서 불거진 '방어권 침해' 논란으로 오히려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된 직후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에 대해 "법조인으로서 찬성할 만한, 적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고, 대한변호사협회도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인신 구속 영장을 거듭 청구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날을 세웠다.
수사 일선 검사들의 진용도 고위 공직자 부패 수사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

출범 초기 공수처는 검사 채용을 진행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13명만 임용했고, 수사 경력이 있는 검찰 출신은 4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공수처는 지난 5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수사를 한창 진행하는 상황에서 전체 평검사(11명)의 절반 이상인 6명을 4주 일정의 수사 실무 교육을 보내야 했다.

공수처의 수사 역량 부족은 경험이 모자란 이들로 검사를 채운 뒤 곧바로 수사를 시작한 '개문발차' 식 운영 탓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게다가 고발사주 의혹 사건에서처럼 공수처의 주요 수사 대상이 수사, 그 가운데서도 까다로운 특수수사 전문가들인 검찰 출신 고위직 검사라는 측면에서 역량 부족 노출은 예견된 일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공수처는 끼워 맞추기식·좌충우돌식·정치적 수사를 하며 수사의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수뇌부가 판사 출신인데 경험 있는 검찰 간부 출신이 없어서 실수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이공 소속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를 향한 비판과 관련해 "초등학생에게 기하학 문제를 풀라고 다그친들 가능하겠느냐"라며 "수사를 안 해본 사람에게 최상급 난도 수사를 잘하라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