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시대’ 주유소의 미래 찾는 정유 빅4

정유업의 거점 역할을 해온 주유소가 탄소중립 시대에 발맞춰 변모하고 있다. 친환경 자동차 확산 흐름에 따라 국내 정유업체들은 전기·수소차 충전이 가능한 복합에너지 충전소로 전환하고 태양광, 공유 모빌리티, 물류 서비스 등 신사업과 결합하는 전략을 편다
[한경ESG] ESG NOW
드론 물류배송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미래형 주유소 조감도. GS칼텍스 제공
전동 킥보드를 타고 출발해 인근 ‘미래형’ 주유소에 들른다. 전동 킥보드를 주유소에 주차한 뒤 가방에 넣어온 물건을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주유소 드론 물류 서비스’를 이용한다. 주유소에서 충전 중이던 드론이 비행하는 모습을 보며 주유소에 입점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한다. 커피를 들고 주유소에 주차된 수소 공유 차량으로 환승해 회사에 도착한다.5~10년 안에 만나게 될 일상의 모습이다. 정유업의 거점 역할을 해온 주유소가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변모하면서 일상생활을 바꿔놓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유소는 교통 요지에 있을뿐더러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췄다는 강점이 있다.

전기·수소차 충전소 인프라 확대

국내 정유업체 ‘빅4’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및 친환경 자동차 확산 흐름에 따라 기존 주유소를 전기·수소차 충전이 가능한 복합 에너지 충전소로 전환하고 태양광, 공유 모빌리티, 물류 서비스 등 신사업과 결합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10월 28일 기준 국내 빅4 정유사는 전국에 155개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 중이다. GS칼텍스 73개, SK이노베이션 37개, 에쓰오일 25개, 현대오일뱅크 20개 등이다. 수소차 충전소는 현대오일뱅크가 6개를 보유해 국내 빅4 중 가장 많다. 전기차·수소차 인프라 구축 작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23년까지 전기차 충전기 200대, 2030년까지 수소차 충전소 180개를 확보할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2025년까지 버스·트럭 수소 충전소도 35개 이상 구축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제조공정 중 부가적으로 생산되는 부생수소 3만 톤을 SK E&S에 공급하고, SK E&S는 이를 고순도 수소로 정제한 뒤 주유소와 화물트럭 휴게소 등에서 차량용으로 공급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GS칼텍스는 휘발유, 경유, 전기, 수소 모두 공급 가능한 3305m2 규모의 ‘융복합 에너지 스테이션’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와 손잡고 2024년까지 연 1만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도 짓는다. 액화수소 1만 톤은 수소차 8만 대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주유소에서 태양광발전주유소를 신사업의 거점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 중 최초로 태양광발전사업에 나섰다. 주유소 20개 등의 부지를 활용해 2.3MW 규모의 태양광발전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주유소를 거점으로 드론 물류 배송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이케아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주유소를 중간 거점으로 활용하는 ‘가구 픽업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케아는 소비자가 선택한 거주지 근처의 GS칼텍스 주유소로 가구를 배송하고, 소비자는 주유소를 방문해 상품을 받는 방식이다. 여기에 공유 모빌리티 사업, 드론·전동 킥보드 급속충전 사업도 결합할 예정이다.
팝아트 디자인으로 장식된 에쓰오일 ‘전당앞 주유소’. 에쓰오일 제공
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 내 편의 서비스 시설을 아우르는 브랜드 블루픽을 내세워 수제 맥주, 핫도그 등을 제공한다. 자동차 시장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자 이들을 겨냥해 기존 주유소를 복합 서비스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설명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7월 팝아트 디자인을 적용한 ‘전당앞주유소’를 선보였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포르쉐 전기차 전용 급속충전 시설 등을 갖췄다.
ESG 경영 강화 나서는 정유 ‘빅4’주유소의 ‘무한 변신’ 외에도 국내 정유업체들은 ESG 경영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 9월 삼성물산과 친환경 수소 및 바이오 연료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와 협력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산한 경쟁력 있는 블루 암모니아를 국내에 공급하고 해외 청정 암모니아 생산원의 확보, 도입 및 수소 추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올 초에는 차세대 연료전지 벤처기업인 에프씨아이(FCI) 지분 20%를 확보하며 수소 산업 진입을 위한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2050년 탄소배출 넷제로(net zero) 달성을 목표로 탄소 경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수소의 생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수소 산업 전반의 사업 진출을 계획하고,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대한항공과 손잡고 탄소중립 항공유 도입에 나선다. 탄소중립 항공유란 원유 추출, 정제 등 항공유 생산부터 사용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을 산정한 뒤 해당량만큼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해 실질적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든 항공유다. SK에너지는 세계적 금융기관 맥쿼리그룹과 협력하고 지난 7월 조림 및 산림 황폐화 방지 프로젝트 등에서 발행된 탄소배출권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자사 주유소에서 탄소중립 휘발유 제품을 판매하는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도 진행한다.SK에너지 관계자는 “SK주유소 이용 고객의 온실가스 저감 활동 참여와 착한 소비 확산을 유도할 것”이라며 “2050년 이전에 SK에너지가 판매하는 제품의 모든 밸류체인에서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