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난에 흔들리는 美 기후 정책

THE WALL STREET JOURNAL 칼럼
Walter Russell Mead WSJ 칼럼니스트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기후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후 위기가 민주당 환경론자들과 극좌파를 분리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극좌파들은 국방비를 대규모로 줄이고 좌파적 외교정책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또 미국 예산의 우선순위를 국내 지출에 두기를 원한다. 반면 환경론자들은 중도적 외교정책과 함께 강력한 기후정책을 바라고 있다. 이들은 바이든 정부가 강력한 기후정책을 편다면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에도 열렬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바이든 지지자들은 미국 정부가 기후정책을 통해 환경론자들을 만족시키고 진보단체 등에 충분한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바이든이 추진하는 강력한 아시아정책이 민주당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기후정책의 비용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는 믿음이 있다. 이 믿음대로라면 기후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러시아 등 가격 결정력 높아져

하지만 최근 에너지 공급난이 세계를 휩쓸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바이든은 기후정책과 전반적인 국가 전략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문제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유권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바이든 지지율도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높은 에너지 가격 탓에 프랑스에서는 내년 대선에서 극우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의 기후정책은 민주주의 진영의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훼손하고 러시아와 이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친환경 에너지가 확실하게 자리잡기도 전에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결국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앉아서 수조달러를 벌어들이는 꼴이 된다. 이들 국가는 미국이 견제해야 할 세력임에도 말이다.

서방세계의 화석연료 기업들은 규제당국의 명령에 따라 석유와 가스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서방세계를 비롯한 글로벌 소비자들은 그보다 천천히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것이다.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가스프롬 등 권위주의 국가의 국영 석유기업에는 호재다. 천천히 원유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올리거나 생산량을 빠르게 확대해 이익을 늘릴 수도 있다. 어느 쪽을 골라도 이득이다.

화석연료 수요 빠르게 줄진 않아

바이든은 이미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에 유가를 급격히 올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런 굴욕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가장 위대한 성과는 자체 석유 생산을 통해 에너지 시장에서 중동 국가들을 권위주의적 독점자에서 시장 경제의 자본가로 바꾼 것이다. 이 같은 성과를 내팽개친다는 건 미국의 외교정책의 중심이 다시 중동으로 회귀하는 것과 다름없다.

장기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는 고갈돼 화석연료 생산국들의 자산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멀고 위험한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기후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후정책 지지자들은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올겨울 유권자들이 높은 석유 가격과 난방비를 마주하게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외교와 기후 관련 의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Energy Crisis Hobbles Biden’s Green Agenda’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