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땅 매입 놓고…트럼프와 몇차례 '밀당'

100년의 기억, 신격호 회고록

신격호 롯데 창업주 인연들
'와세다대 선배' 이병철 회장
박정희 대통령 회고하며
"국산 필터 아리랑 담배 권해"

조치훈 프로 숙식비 매달 지원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99년의 삶을 살면서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트럼프 도널드 전 미국 대통령과는 허드슨 강변에서 만났다. 1990년 잠실롯데월드 같은 테마파크를 뉴욕에 짓기 위해서였다.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소유주와 접촉했는데 알고 보니 부동산 재벌 트럼프 회장이었다. 두 사람은 몇 차례 만나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였으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회고록에서 신 명예회장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와세다고교 응용화학과 출신인 ‘청년 신격호’는 그와 와세다대 동문으로 지냈다. 1962년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재일 기업인으로 만났다. 당시 이 회장은 “정부가 공업화로 경제 개발을 추진한다 카는데 문제는 자금이요. 재일 상공인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문화재 수집에 관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일본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를 신 회장이 수집하면 어떻겠소?”라는 호암의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신 명예회장은 “외람되지만 나는 남이 만든 과거의 문화재보다는 내가 미래에 남길 문화재를 창조하는 일에 더 몰두하고 싶었다. 그 마지막에 있는 것이 바로 롯데월드타워”라고 회고록에 남겼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의 만남은 1981년 롯데호텔 회의실 장면으로 그려졌다. 당시 88 올림픽유치민간위원장으로 추대된 정 회장은 “아무래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할 경우 망신당할 사람으로 나를 뽑은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고 한다. 신 명예회장은 그를 “현대그룹의 국내외 조직망까지 총동원해 가며 뚝심 있게 스포츠 외교전을 펼쳤다”고 평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은 1962년 4월 장충동의 어느 건물에서 이뤄졌다. 이웃동네 후배였던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선자였다. 신 명예회장은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던 박 대통령이 선글라스를 벗더니 국산 필터를 개발해 만들었다며 아리랑 담배를 권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만 6세(1962년)이던 조치훈 9단과의 만남도 흥미롭다. 매달 숙식비를 후원해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훗날 신 명예회장은 “조치훈 프로가 선물로 준 나무 바둑판은 나(신격호)의 가보가 됐다”고 할 정도로 그와의 만남을 즐거워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