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격전지 '백마고지'…70년 만에 발견된 음료수병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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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투에 진지 두 배 깊게 팠다"

뺏고 뺏기는 전투…진지 더 깊게 팠다
백마고지는 과거 6·25 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다. 주인이 수십차례 바뀌는 상황에서 적과 아군 모두 고지를 사수하고 포탄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기존 대비 더 깊게 진지를 파고 들어간 것으로 군은 추정했다. 그만큼 당시의 전투가 치열했다는 의미다.국방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와 유품의 특성도 당시 백마고지의 전투상황을 추측할 수 있게 만든다. 현재까지 수습된 26점의 유해가 모두 '부분유해' 형태로 백마고지에 쏟아졌던 다량의 포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1952년 10월 6~15일 열흘간에도 고지의 주인이 계속 바뀔 만큼 혈전이 벌어졌다. 결국 국군 9사단이 규모가 세 배가 넘는 중국군에 맞서 총 12차례의 공격과 방어전투를 수행했고 결국 승리했다. 수 천명의 국군전사자들이 조국을 위해 죽거나 다치는 희생이 따랐다.이 곳에서 발견된 유품은 96%(4927점)가 우리 국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탄약류(4980여점, 전체의 97%)다. 야삽, 철모, 탄피 등 각종 탄약과 전투 장구류가 포함돼 있다. 특이유품으로 음료수병을 활용한 화염병이 있다.
11월 중순, 노령의 참전용사 현장 증언 및 견학
국방부는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들이 대부분 국군전사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신원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정밀감식과 DNA 분석 등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이달 중순에는 9명의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현장증언 청취도 진행할 계획이다. 6·25전쟁 당시 9사단, 2사단, 노무사단 등 대한민국 국군으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90세가 넘은 영웅들은 귀환하지 못한 전우들을 찾아 현장을 찾는다.국방부는 "우리 군은 6‧25전쟁 전투기록과 참전용사들의 증언, 백마고지 현장의 지형적 특성 등을 면밀히 연구하면서 유해발굴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6·25전쟁 전사자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