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K첨단기술 한데 모은 누리호…"우주 도전, 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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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K우주시대' 희망 쏜 누리호한국이 우주개발에 나선 것은 1992년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유럽의 아리안 발사체 V52에 실려 브라질 북부 프랑스령(領) 가이아나 쿠르기지에서 발사되면서부터입니다. 러시아의 전신인 옛 소련이 1957년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궤도에 올린 지 35년이 지나서입니다. 우리별 1호는 영국 세레이대학의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한 48.6㎏의 소형 인공위성입니다. 고도 1300㎞ 궤도에서 영상 촬영 등 임무를 수행했죠. 1993년에는 순수한 우리 기술로 설계 제작한 ‘우리별 2호’가 발사됐고, 이후 20여개의 우리 위성이 우주에 올려졌지만 모두 다른 나라의 발사체에 실려서였습니다.
韓개발진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나로호
러 기술자가 흘린 종이를 주워
밤새 번역해 발사체 기술 습득
국내기업 연구자 500명도 동참
갈 길 멀지만 "꿈은 이뤄진다"
첨단기술의 총합 우주발사체
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분야여서 우리가 독자 개발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1979년 체결된 한·미 미사일지침(MTCR)이 우리 로켓 기술 개발에 족쇄가 됐습니다. 일본에는 액체 로켓기술을 이전해준 미국이 1978년 한국의 비행거리 200㎞ 백곰 미사일 발사 성공에 놀라 미사일 개발 중단을 요구하면서 이 지침이 생겼죠. 당시 비행거리 180㎞, 탄두중량 500㎏으로 제한된 미사일 지침은 몇 차례 완화되다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42년 만에 종료됐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1993년 1단계 과학로켓(KSR-Ⅰ) 등 수차례 소형 발사체 개발을 추진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과학로켓 1호는 화물중량 150㎏, 최고고도 75㎞였고, 이후 고도 258㎞까지 개량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었죠.우주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삼은 한국은 급기야 미국 대신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하게 됐습니다. 2003년 3단계 과학로켓(KSR-Ⅲ)을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쏘아올린 한국은 2008년 첫 한국인 우주인 이소연을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에 태워 우주정거장(ISS)에 보냈고, 이어 본격적인 발사체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한국형발사체(KSLV-Ⅰ) 나로호는 1단을 러시아에서 통째로 들여왔고 2단은 우리가 자체 개발했습니다. 두 차례의 실패 끝에 2013년 100㎏의 소형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죠.지난달 21일 700㎞ 상공에 쏘아올린 누리호는 ‘KSLV-Ⅱ’로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했습니다.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 엔지니어가 흘리고 간 종이를 주워 밤새워 번역하고 그들이 버린 기름까지 몰래 분석하는 등 개발진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입니다. 누리호에 들어간 부품 37만 개 중 압력 센서, 온도 센서처럼 기성품을 쓸 수 있는 것을 빼고는 94.1%를 국산화했죠.우주개발은 과학기술의 최첨단입니다. 자동차에 2만 개의 부품(전기차 7000개), 비행기에 10만 개의 부품이 사용된다면 우주발사체에는 30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갑니다. 특히 3400℃ 불꽃을 쏟아내며 지구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진공 상태에 초저온(대략 -270℃)인 우주공간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밀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연료를 태우는 데 필요한 액체 산소(산화제)를 담는 누리호의 탱크는 높이 10m, 지름 3.5m로 부품 가운데 가장 크지만 두께는 2㎜에 불과합니다. 발사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얇고 가벼우면서도 대기압의 6배 정도인 내부 압력과 비행 중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견딜 정도로 강해야 합니다. 주성분은 알루미늄인데 이를 용접하는 것은 조선업 강국인 한국이 세계 최고 용접 기술을 갖고 있어 가능했습니다. 연료인 등유(추진제)와 초고온 가스가 흐르는 배관은 -200℃까지 견뎌야 하고 단 0.1㎜ 크기의 이물질이라도 혼입되면 오작동할 수 있어 극한의 정밀성을 요구하죠. 전자레인지 정수기 내비게이션 진공청소기 등은 그동안 우주개발과정에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중공업 등 300개 국내 기업의 500여 명 연구자들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것은 첨단 기술 개발과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한 측면도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 한국 우주개발
누리호를 지상 700㎞까지 쏘아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우리의 우주개발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는 내년 5월 실제 위성을 실어 2차 발사에 나서는 등 2027년까지 다섯 차례 추가 발사를 통해 성능을 고도화한 뒤 달 탐사 등 차세대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당장 내년에는 달 탐사선을 미국의 팰컨9 로켓에 실어 달 궤도에 보내고 2030년에는 달 착륙을 시도할 예정입니다. 830㎏짜리 달 탐사선은 약 38만㎞를 날아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죠.태양계 바깥까지 탐사선을 보낸 미국이나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해 얼마 전 선저우 13호를 쏘아올린 중국은 물론 일본도 지구에서 3억㎞ 떨어진 소행성 ‘류구’의 토양 시료를 지구로 가져올 정도로 우주선진국들은 까마득히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블루오리진 스페이스X 등 미국 민간기업들은 자체 제작한 유인(有人) 우주선으로 우주 무중력을 체험하는 여행 상품도 내놓고 있죠. 우리가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무한의 우주공간으로 넓히기 위해 더욱 열심히 우주개발에 나서야겠습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