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호책 빠진 스토킹처벌법

현장에서

스토킹처벌법, 처벌 수위 낮아
'세모녀 살인사건' 막는데 한계

최예린 지식사회부 기자
스토킹처벌법이 22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1999년 처음 발의된 이후 2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지난 3월 마침내 국회를 통과해 이달 21일 시행됐다.

스토킹은 그동안 경범죄로 분류돼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여성계와 법조계는 “스토킹을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처벌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새로운 법을 마냥 환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스토킹에서 살인까지 이어진 서울 은평구 공인중개사 살인사건,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등을 막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법안 시행으로 스토킹 신고와 체포는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1일 법 시행 이후 첫 주 동안 전국에서 관련 신고가 451건 접수됐다. 하루 평균 113건으로, 법 시행 이전까지 하루 평균 24건이 접수된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지난 23일 경기 안성에서는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가해자를 구속한 첫 사례도 나왔다.

그럼에도 상당수 전문가는 처벌 수위가 높지 않아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추가 범죄를 막아야 할 때 가해자가 피해자의 반경 100m 이내에 접근할 수 없도록 1개월간 긴급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반할 경우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이성적 감정이 개입한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가해자는 과태료를 내더라도 피해자에게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주변인에 대한 보호책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지난 4일 은평구 사건에서는 스토킹 피해자의 어머니가, 7월 제주도 사건에서는 아들이 살해됐다.

정부가 스토킹처벌법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스토킹피해자보호법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시행 시점은 해를 넘길 전망이다. ‘제2의 은평구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