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노동위기] ② 이상기후에 위협받는 노동자 건강권

온열질환으로 5년간 26명 사망…"보호대책도 현장에선 미이행"
위험하면 작업 중단해야지만 소득감소 우려…"임금 보전책 필요"
지난 7월27일 인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50대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쓰러졌다. A씨는 점심을 먹고 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연락이 끊겼고, 동료가 뒤늦게 발견해 신고했으나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져 있었다.

당시 인천에는 7일째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폭염, 혹한 등 악천후가 현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건설업계처럼 실외에서 이같은 악조건에 직접 노출된 상태로 근무하는 업종에서 특히 우려가 크다.

위험한 조건에서의 작업중지 권고 등 대책은 이미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실외 근무 노동자들에게 특히 치명적인 기후조건은 폭염이다. 머리에는 한껏 열을 받은 안전모를 쓰고, 먼지 흡입을 막는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로 불볕더위에 달궈진 철근이나 콘크리트 주변에서 일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체감온도는 40도에 달한다고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과거 48년(1973∼2020년) 평균과 비교해 최근 10년(2011∼2020년)의 폭염과 열대야 발생일이 3∼4일가량 증가했다.

폭염일수가 31.0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2018년에는 국무총리가 폭염이 심할 경우 공공 발주 공사현장의 작업을 중지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여름철 폭염이 '때가 되면' 찾아오는 계절 현상을 넘어 현장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후재난 수준까지 심각해졌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 집계만 보더라도 2016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폭염으로 열사병 등 온열질환 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156명이었다.

이 가운데 16.6%(26명)가 목숨을 잃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온열질환과 관련해 74건이 산재로 승인받았는데, 모두 건설현장 등 실외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였다.

정부도 폭염에 따른 산업재해를 막고자 올여름에는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 오후 2~5시 전국 건설현장에서 작업을 중지하도록 지도한다는 긴급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노동자에게 물과 그늘, 휴식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열사병 예방수칙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노동자 보호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 7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발표한 건설현장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폭염기에 시원한 물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15.9%였다.

휴식시간에 '아무 데서나 쉰다'는 답변은 66.5%, 냉난방 시설 등을 갖춘 온전한 휴게실에서 쉬는 적이 '없다'는 답변은 52.5%에 달했다.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1시간 주기로 10~15분 이상 휴식하게 하느냐는 물음에는 22.8%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재량껏 쉰다'가 57%, '쉬지 않고 봄·가을처럼 일한다'도 20.2%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설업체는 공사기간을 줄이려고 작업 중단을 지시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노동자들의 건강은 한층 더 위험에 노출된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이미 아열대 기후가 됐고 데이터도 있으니 설계 단계부터 이를 고려해 공사기간을 산정하도록 해야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며 "관계부처가 설계에 대한 고민이 없는데, 공공 발주공사에서 시작하면 다수인 민간 현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과 같은 악천후 상황에서 일하는 것 자체도 위험하지만, 이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면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줄어 소득이 감소한다는 점도 딜레마다.

폭염 외에도 강추위, 폭설, 미세먼지 등 공사 중단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요소는 많다. 노동계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 폭염·한파 등 악천후로 작업을 중지하면 유급으로 휴식하도록 하는 '악천후 유급휴가제' 등의 제도를 만들어 임금을 보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