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소 '신재생 실험'…"태양광서 전력 뽑아 곧장 충전"

문 연 지 8개월…'양재솔라스테이션' 가보니

충전소 지붕, 태양광 패널 '빼곡'
한전 안 거치고 직접 생산·판매
6곳 모두 빈 자리 없이 대기줄
내년 동·서북권 등에 추가 확충

정부 '규제 샌드박스' 승인
LG엔솔·SK에너지 등도 관심
서울시 "전기차 대중화 가속"

서울 양재동 ‘양재솔라스테이션’에서 태양광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차 충전이 이뤄지고 있다. 김영우 기자

‘충전 28분 경과. 전기 충전량은 22.71㎾h이고 충전율은 71%입니다.’

전기차 충전 안내판 숫자가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을 때 주유 시스템이 작동하듯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31일 낮 서울 양재동 ‘양재솔라스테이션’에선 전기차 여섯 대가 줄지어 전기를 충전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언뜻 보면 일반 전기차충전소와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뿌리부터 다르다”며 충전소 지붕 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붕 위엔 태양광 패널이 수두룩했다. “이곳에서 공급하는 전기는 한국전력에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곧장 전기차로 보냅니다.”

전기 만들어 충전한다

양재솔라스테이션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연계형 전기차 충전소다. 서울시와 서울에너지공사가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충전기를 융복합하는 사업을 하겠다며 2018년부터 추진한 ‘서울형 집중충전소 설치 사업’의 일환이다. 양재동에 있던 유휴부지에 20.7㎾ 규모의 태양광발전시설, 148㎾h짜리 ESS, 300㎾ 급속 충전기 6기를 세웠다.

충전을 위해 대기 중이던 김진형 씨(48)는 “이곳은 전기차 이용자 사이에서 ‘유명 맛집’보다 순번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고 했다. 지난 2월 말 개소하고 8개월여가 지난 가운데 하루 평균 40대가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 일반 주유소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보다 충전 환경이 좋은데다 무료 충전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이날도 충전 자리 여섯 곳이 꽉 찬 가운데 대기 차량 두 대가 줄을 섰다. 테슬라, 기아 최신 전기차 EV6 등 차량도 다양했다.

충전 과정은 일반 전기차 충전소와 달랐다. 이곳은 낮 시간 동안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이용 차량이 있을 때 곧장 전기차에 충전하는 식으로 운영 중이다. 이용 차량이 없을 때는 태양광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추후 공급한다. 이곳에서 만드는 하루 평균 태양광 전력은 여름에는 75㎾h, 겨울에는 42㎾h다. 일반 주유소에서 전기차에 공급하는 전기는 100% 한전을 통해 들여온 것이지만, 이곳에서 공급하는 전력의 약 25%는 자체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전이 공급하는 일반 전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태양광발전 전력으로 전기차를 충전하는 선제적 시도를 한 것”이라며 “전기차 보급 확산 때 우려되는 전력난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내년 태양광 충전소 네 곳으로 확대

서울시는 내년에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차 충전소를 총 네 곳으로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기존 양재, 양천에 있던 솔라스테이션 규모를 확대하는 동시에 동북권, 서북권에도 솔라스테이션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런 계획은 지난 9월 서울에너지공사, 제주전기차서비스, LG에너지솔루션 컨소시엄이 신청한 ‘신재생에너지발전연계 전기차 충전 서비스’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으면서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소규모 태양광 설비로 생산한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한전 송배전망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기차에 충전하는 식의 판매가 가능하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기존에는 전기사업법상 신재생에너지설비로 생산한 전력이 한전을 통하지 않고 전기차에 직접 충전(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향후 민간 충전사업자도 신재생에너지 연계 전기차충전소 설치 및 운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LG에너지솔루션, SK에너지도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대중화 시대 성큼

태양광뿐 아니라 수소를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연계 에너지 시장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장기적으로 시 전역에 있는 거점 주유소에 태양광 및 수소 발전설비를 준공해 ‘소규모 지역 발전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태양광과 수소를 이용해 얻은 신재생에너지를 전기차나 수소차 연료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용도로도 쓰는 것이 목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국 최하위권인 서울시 전력자립도(전력소비량 대비 전력생산량)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서울 전력자립도는 2019년 기준 3.92%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대전(1.78%) 다음으로 낮다.

전기차 대중화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전기차 27만 대를 보급해 전기차 시대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말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전기차는 2만9300여 대다.

특히 서울시는 전기차 충전소를 대폭 늘려 ‘생활 주변 도보 5분 거리 전기차 충전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2025년까지 전기차 충전기 20만 기를 보급하기로 했다. 전기차 50만 대를 충전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큰 틀에서 규제 샌드박스는 승인됐지만 전기차 충전요금, 태양광 전력 충전 및 판매 용도 등 산업부가 제시하는 조건이 까다롭다는 전언이다.

충전 속도 등 충전 인프라 고도화 과제도 있다. 이 밖에 무료 운영 중인 양재솔라스테이션이 유료화 이후에도 이용자가 많을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서울시는 11월 중 양재솔라스테이션 전기 충전료를 유료화할 계획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