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소득 180만원' 일용직, 손해배상금은 286만원 나온다는데

월 근로일수는 18일? 22일?
가정주부·학생 보상 기준되는 '일용직 월 근로일수' 논란

고용부 통계 22일 vs 건설업 일용직 18일
법원 마다 엇갈려

주5일제, 대체공휴일 도입…10월 근로일은 '19일'
대법원 재판연구관 "현실 근로일수에 맞춰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동능력을 상실한 무직자의 손해배상액을 구하는 소송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월 가동일수(근로일수)’가 18일인지 22일인지를 놓고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놔 혼란이 일고 있다.

가동일수는 경제활동을 하지않는 가정주부, 미성년자, 구직자 등의 배상액 결정에도 적용되는 기준이다. 그동안 법원은 가동일수를 22일로 간주해왔지만, 최근 근로시간 단축 등을 반영해 18일로 봐야한다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고용부 통계는 22일" vs "실제 건설업 종사자는 18일도 못해"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8월 하급심 판결에서 '도시 지역 보통 일용직 인부(일용직 근로자)'의 월 가동일수를 18일로 보는 판결과 22일로 보는 판결이 엇갈렸다. 지금껏 22일로 보는 판결이 주류였지만 최근 들어 근로시간 단축 등 바뀐 세태를 반영해 18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속속 등장 중이다.

22일을 고수하는 측은 고용노동부가 발행한 '직업대분류별 통계자료'를 근거로 든다. 대구고등법원은 의료사고로 왼쪽 신장 기능을 상실한 무직의 A가 병원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서 "단순노무종사자 월 평균 근로일수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22일"이라고 지적해 18일을 주장하는 병원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대구고법도 지난 6월에도 오토바이 사고로 얼굴을 크게 다친 무직 남성이 보험사에 청구한 소송서 "사회적 환경이 바뀌었어도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일용근로자의 근로일수를 18일로 변화시킬 만큼은 아니다"라고 꼬집은 바 있다. 반대로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8월 차량사고로 머리에 장애를 입은 43세 여성 B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서 "건설업 종사자의 근로일수는 2014년 18.3일, 2015년 18.1일, 2016년 17.8일로 지속적 하락세"라며 월 가동일수가 22일이라는 B의 주장을 기각했다. 배상액은 당연히 줄었다.

서울중앙지법도 지난 2월 의료과실로 장애를 입은 환자가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을 취소하고 가동일수를 18일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경제가 선진화 되면서 근로자들도 임금에 매달리기 보단 생활의 여유를 즐기려는 추세"라며 "주5일제 도입, 대체공휴일이 신설로 법정근로일수가 줄었다"고 꼬집었다.

주5일제, 대체공휴일 도입...지난달 근로일은 '19일'

실제로 법원이 가동일수를 22일로 정한 것은 90년대 후반이며, 이후 근로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22일은 과도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2003년엔 토요일 오전 근무가 없어지면서 주5일제가 자리잡았고, 2013년엔 대체·임시 공휴일 제도가 도입됐다. 당장 지난달 근로일수는 대체휴일을 빼면 19일이고, 지난 9월도 추석연휴를 빼면 20일이다. 여기에 연 15일씩 주어지는 유급 연차휴가를 반영하면 근로일수는 더 줄어든다.

송진성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지난5월 학술지 ‘사법’에 발표한 ‘일실이익 산정’ 논문서 "한국사회는 시간당 임금은 상승하고 노동시간은 줄고 있는 추세로 가고 있다"며 "임금 변화는 반영하면서 가동일수도 22일을 고수할 경우, 무직인 피해자가 실제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사람 보다 높은 배상을 받는 문제점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건설협회 임금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 일용직 노임이 13만원이며 22일을 기준으로 월 소득을 잡으면 286만원이다. 고용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른 2019년 단순 노무 종사자의 실제 월 임금 총액 180만원을 웃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과다 배상은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일용직 근로자의 소득액 기준은 일용직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높아진 국민 소득수준을 반영해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대법원이 시급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