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대의료원장 "제2 팬데믹에 맞설 '백신 R&D허브' 키울 것"

'정몽구백신혁신센터' 청사진

2028년까지 새 플랫폼 내놓고
신약 후보물질 3개 개발 목표
SK 등 바이오기업과 적극 협력
인프라 부족한 신약벤처 지원도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에서 밀린 데는 국내 대학병원들의 책임도 큽니다. ‘백신주권’을 가지려면 지금이라도 방대한 인적 인프라와 데이터를 갖춘 대학병원을 백신 연구개발(R&D) 허브로 키워야 합니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AZ) 등이 잇따라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을 내놓던 작년 말,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사진)은 바이러스·면역학 전문가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 이렇다 할 대학병원 부설 백신연구소가 없는 것도 한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는 데 한몫했다는 진단이다.내년 9월 문을 여는 국내 첫 민간 백신 R&D센터인 ‘정몽구백신혁신센터’는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김 원장은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번듯한 R&D센터를 갖춘 만큼 또 다른 팬데믹(대유행)이 찾아오면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자체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028년까지 새 백신 플랫폼 상용화”

정몽구백신혁신센터는 지난 8월 고대의료원에 사재 100억원을 기부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이름을 땄다. 서울 정릉동에 자리잡은 고려대메디사이언스(KUM) 파크에 들어선다. 수많은 의료·의학 분야 중 굳이 백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 원장은 “고대의료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란 답을 내놨다.실제 고대의료원은 ‘백신 명가’로 꼽힌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는 세계 3대 전염성 질환으로 꼽히는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 ‘한타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예방백신인 ‘한타박스’를 개발했다. 그의 제자인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들은 2016년 SK케미칼과 함께 세계 첫 세포배양 4가 독감백신을 만들었다.

고대의료원의 다음 목표는 5년 안에 아데노바이러스를 대체할 전달체(벡터)를 발굴하는 것이다. 백신의 기본 원리는 병원체의 항원을 몸 안에 넣어 면역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바이러스는 이때 병원체의 항원 유전자를 감싸서 인체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의 코로나19 백신이 아데노바이러스를 매개체로 사용한다.

김 원장은 “아데노바이러스와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생산비용이 훨씬 적은 바이러스 벡터를 발굴하면 또 다른 팬데믹이 찾아와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대의료원이 100주년을 맞는 2028년까지 새로운 백신 플랫폼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신약 후보물질 3개를 발굴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김 원장은 “화이자와 모더나 코로나19 백신에 쓰인 mRNA 기술을 만성질환 치료제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K와 백신 개발 맞손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바이오기업과 손잡는다는 계획도 짰다. 고려대가 △연구이론 개발 △데이터 분석 △임상시험 등을 맡고, 기업은 △연구자금 제공 △개발 실무 등을 담당하는 식으로 분담한다.

김 원장은 “신약 개발에 필요하다면 의대뿐 아니라 생명과학대와 공대 인력도 적극 활용하는 등 단과대 칸막이를 없앨 계획”이라며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신생 바이오기업들에 정몽구백신혁신센터에 있는 연구시설을 빌려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김 원장의 목표는 이른 시일 내에 고대의료원을 ‘국내 3대 R&D 병원’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는 “단순 치료를 넘어 암·심뇌혈관 질환 등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과 진단법을 연구하는 R&D 중심 병원으로 거듭나 해외 병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겠다”며 “중장기적으로 서울대병원·연세세브란스병원과 환자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공유하고 자유롭게 전원할 수 있는 ‘스카이(SKY)벨트’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