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과 唱의 만남…슈베르트 짧은 삶 담았죠"
입력
수정
지면A30
바리톤 이응광·소리꾼 박수범“슈베르트의 음악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생애를 아는 사람은 드물죠. 일생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데에는 판소리 사설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슈베르트 일대기 펼쳐낸 음악극
클래식·국악 크로스오버 공연
판소리·독창으로 명곡 재해석
"국악과 성악 섞이는 일 드물어
우리 공연이 협업 신호탄 되길"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바리톤 이응광(40)은 판소리와 가곡을 엮어 슈베르트의 삶을 풀어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의 원년 멤버 박수범(25)과 함께 오는 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음악극 ‘슈베르트, 그의 그림자’를 선보인다. 예술의전당이 IBK챔버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축제의 폐막작이다. 이응광은 “슈베르트의 삶을 찬양하는 공연은 아니다”며 “평생 짝사랑에 집착하고, 매독에 걸려 고생하는 등 그의 어두운 면도 담담히 풀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가곡과 판소리를 엮어 슈베르트의 31년 짧은 삶을 풀어낸다.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그의 삶을 조망하는 게 특징. 이응광이 봄 파트에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여름에는 ‘숭어’로 이어지다가 가을에는 ‘마왕’, 겨울엔 ‘거리의 악사’ 등 슈베르트의 대표 가곡을 열창한다. 박수범은 아니리(판소리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설)로 슈베르트의 일생을 읊는 식이다. 가곡 사이에는 ‘사철가’를 부르기도 한다. 박수범은 “클래식 전공자가 아니어서 슈베르트의 일생을 몰랐지만 공연을 준비하며 비극적인 생애를 알게 됐다”며 “판소리로 그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르는 다르지만 두 사람은 유연하게 음악을 조합했다고 했다. 각자 익혀온 소리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적인 무대를 꾸미려 한 것. 피날레에서 박수범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상여소리’를 부르면 이내 이응광이 박수범의 창에 맞춰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국악과 성악에는 오묘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어요. 연습 초반에는 의견이 갈렸죠. 발성도 다르고 조성도 차이가 나니까요. 그래도 수범씨가 정확하게 어색한 부분을 짚어줘서 음악이 완성됐습니다.”(이응광)소리는 달랐지만 두 사람에게 공통점은 있었다. 연기에 능한 가수라는 점이다. 이응광은 유럽에서 인정받은 오페라 가수다. 2008~2015년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가수로 활약했다. 박수범은 어릴 적부터 촉망받는 소리꾼이었다. 2012년 남원 춘향국악제 고등부 최우수상을 탔고, 2016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했다. 2019년에는 국립정동극장의 대표 뮤지컬 ‘적벽’에서 도창 역을 맡기도 했다. 연기력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공연 콘셉트로 ‘도플갱어(분신)’를 내세웠다.
“저와 응광씨가 똑같은 옷을 입고 슈베르트의 분신을 연기합니다. 응광씨는 슈베르트의 뮤즈였던 성악가 미하엘 포글로도 변신하죠. 슈베르트의 삶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박수범)
이들이 실험적인 무대를 꾸민 이유는 뭘까. 성악과 국악은 다른 장르와 쉽게 섞이지 않는다. 연주자들은 자기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스승과 제자로 맺어진 위계질서도 철저하다. 둘의 마음을 이끈 건 신선한 음악을 향한 갈망이었다.“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청중이 원하는 공연을 하는 게 음악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정적인 직장(바젤극장)에서 나와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죠.”(이응광)
“안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면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고전과 고전을 엮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죠. 주변에서 우려하기도 했지만 우리 공연이 협업의 신호탄이 될 수 있겠죠.”(박수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