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글로벌 공급망 복원 세 가지 해법

"개도국 백신지원·WTO 복원 등
다자협력 도출에 한국 역할 커져
핵심부품 수직계열화 전략 필요"

김영한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세계 각국이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긴 터널을 지나 ‘포스트 코로나’ 혹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며 경제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공급 부족에 의한 자동차·전자산업의 생산차질에 이어, 에너지·전력 부족에 따른 중국 생산시스템 마비는 곧 전 세계 중간재 공급망의 추가 붕괴로 이어질 조짐이다.

생산기술 혁신과 설비 확대로 과잉 공급을 우려한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이런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법은 있는 것인가? 우리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 중 하나인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그 원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첫 번째 원인은, 코로나19가 몰고 온 물리적 공급망의 붕괴가 복원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대부분 개도국의 백신 공급량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록다운이 반복되면서 공급망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세계 물류체계에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점도 공급망 붕괴에 기름을 붓고 있다.

둘째, 수요 측면에서 2년여에 걸쳐 억제돼온 다양한 소비욕구들이 포스트 코로나 정책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글로벌 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셋째,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세계화 전략이 전 세계를 풍미하면서, 대다수 기업들은 적극적인 글로벌 아웃소싱과 함께 글로벌 밸류체인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 곧 기업 경쟁력 확보 전략이라 믿고 질주해왔다.

만약 지정학적 불안요인 없이 국제 거래비용이 계속 감소한다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게 합리적 전략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갈등 및 패권경쟁이 지역안보 불안으로까지 확산되고, 미국과 중국이 앞장서서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마비시킨 결과, 코로나 사태 전부터 공급망의 붕괴 위험은 커지고 있었다. 미국 다국적기업들엔 본국으로 복귀하는 리쇼어링 전략이 강요돼왔다. 지정학적 위험부담이 커져 국제거래 비용이 높아질 경우 합리적인 기업전략은 생산 및 공급망의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여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붕괴된 글로벌 공급망의 복원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모든 문제의 극복은 결국, 그 문제의 요인을 정밀하게 제거하는 해법을 찾을 때만 가능하다. 첫째, 코로나 사태가 의료적 차원에서 극복되기 전까지는 완벽한 공급망 회복은 불가능하다. 최근 영국 미국에서 나타난 코로나 재확산은 전 세계 차원의 백신공급 확대 노력 없이, 선진국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적·배타적인 코로나 극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해법 역시 쉽지 않다. 코로나 이전부터 심화된 미·중 패권경쟁을 포함한 다양한 지정학적 갈등구조에 의해, 붕괴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복원할 경우에만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이 회복될 수 있다. 한편,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자유무역체제 복원은 정치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WTO 복원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세 번째 해법은 목전에 닥친 위기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기업 전략이다.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위한 국제적 여건이 형성되기 전까지 기업은 위험 최소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략적으로 핵심 부품과 디자인 기술을 수직계열화해 코로나 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겨낸 테슬라의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회복되기 전까지는, 맹목적인 아웃소싱 전략이 아니라 핵심 부품 디자인 및 생산 공급망은 전략적으로 수직계열화하는 유연한 공급망 관리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