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경쟁위의장 "혁신이 경제발전 핵심…플랫폼 해체보다 적절한 사전규제 필요"
입력
수정
“혁신을 지속하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핵심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최하는 ‘제11회 서울 국제경쟁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프레데릭 제니(80·사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쟁위원회 의장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일정한 상황에서 잠재적 경쟁자 간의 협력이 백신 개발을 촉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며 이처럼 말했다.기존의 경쟁당국은 단기적으로 가격에 미치는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혁신의 경제적 효용은 잘 고려하지 않아왔다는 게 제니 의장의 지적이다. 거대 플랫폼을 해체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사전규제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제니 의장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경쟁정책작업반 의장(1997)과 프랑스 대법원 판사(2004), 영국 공정거래청 비상임위원(2007) 등을 역임한 세계 경쟁정책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그는 “우버가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도 택시와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가격보다는 파괴적 혁신에 의해 경쟁이 촉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시장 지배력이 새로운 경쟁자의 유입 없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재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니 의장은 각국 경쟁당국이 온라인 플랫폼 등 디지털 분야를 규제할 때 복합적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대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는 “거대 플랫폼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후생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플랫폼의 지배력 남용으로 고객 개인정보가 침해돼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측면도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거대 플랫폼의 시장독점에 대해 강력한 규제 법안을 잇따라 내고 있는 점에 대해선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집중은 커다란 문제”라며 “미국의 경우 반독점법이 소비자 후생 보호로 좁게 정의돼 있어서 엄격한 규제책 신설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U는 소비자 후생 보호 뿐만 아니라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사후 규제의 준사법 절차가 너무 느리고 번거로워 역동적인 디지털 기업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맹점”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경쟁당국이 사전규제를 활용해 경쟁법 집행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서 찾았다.
경쟁법이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유럽 진행위원회도 지배적 기업을 상대로 법 진행을 할 때 미국의 디지털 기업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하지만 각국이 자국의 경쟁법을 기업의 국적에 따라 차별적으로 집행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제니 의장은 “경쟁법의 전략적인 집행에 따른 정치적 마찰은 1990년대에 비해서 훨씬 적게 일어나고 있다”며 “경제의 세계화로 각국 경쟁당국의 결정이 과거에 비해서 초국가적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해 각 경쟁당국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플랫폼 독점 종식 법률’ 등 빅테크의 경제적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 분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제니 의장은 “거대 플랫폼 해체는 문제가 많다”며 “플랫폼을 해체할 경우 사용자들의 상호교류의 질적인 측면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랫폼 해체보다는) 적절한 사전규제를 통해 플랫폼과 입점업체의 공정한 관계를 구축하고, 소비자를 플랫폼 지배력 남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한국의 플랫폼 규제에 대해선 “한국의 경쟁법 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법이 소비자 후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거대 플랫폼의 경쟁자 역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인지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다. 제니 의장은 “국가마다 경쟁법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규제의 역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들이 플랫폼에 동일한 규제를 시행할 필요가 없다”며 “한국 빅테크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지, 아니면 미국과 EU에 비해서 시장환경이 더 균형적인지 여부를 우선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시장의 특징과 네트워크 효과, 범위의 경제는 경쟁 당국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방식의 변화와 디지털 분야에 맞는 경쟁법 집행을 요구한다”며 “이를 위한 첫 단계로 시장 획정과 지배력 측정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한국 공정위의 노력은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최하는 ‘제11회 서울 국제경쟁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프레데릭 제니(80·사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쟁위원회 의장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일정한 상황에서 잠재적 경쟁자 간의 협력이 백신 개발을 촉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며 이처럼 말했다.기존의 경쟁당국은 단기적으로 가격에 미치는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혁신의 경제적 효용은 잘 고려하지 않아왔다는 게 제니 의장의 지적이다. 거대 플랫폼을 해체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사전규제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제니 의장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경쟁정책작업반 의장(1997)과 프랑스 대법원 판사(2004), 영국 공정거래청 비상임위원(2007) 등을 역임한 세계 경쟁정책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그는 “우버가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도 택시와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가격보다는 파괴적 혁신에 의해 경쟁이 촉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시장 지배력이 새로운 경쟁자의 유입 없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재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니 의장은 각국 경쟁당국이 온라인 플랫폼 등 디지털 분야를 규제할 때 복합적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대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는 “거대 플랫폼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후생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플랫폼의 지배력 남용으로 고객 개인정보가 침해돼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측면도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거대 플랫폼의 시장독점에 대해 강력한 규제 법안을 잇따라 내고 있는 점에 대해선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집중은 커다란 문제”라며 “미국의 경우 반독점법이 소비자 후생 보호로 좁게 정의돼 있어서 엄격한 규제책 신설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U는 소비자 후생 보호 뿐만 아니라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사후 규제의 준사법 절차가 너무 느리고 번거로워 역동적인 디지털 기업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맹점”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경쟁당국이 사전규제를 활용해 경쟁법 집행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서 찾았다.
경쟁법이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유럽 진행위원회도 지배적 기업을 상대로 법 진행을 할 때 미국의 디지털 기업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하지만 각국이 자국의 경쟁법을 기업의 국적에 따라 차별적으로 집행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제니 의장은 “경쟁법의 전략적인 집행에 따른 정치적 마찰은 1990년대에 비해서 훨씬 적게 일어나고 있다”며 “경제의 세계화로 각국 경쟁당국의 결정이 과거에 비해서 초국가적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해 각 경쟁당국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플랫폼 독점 종식 법률’ 등 빅테크의 경제적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 분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제니 의장은 “거대 플랫폼 해체는 문제가 많다”며 “플랫폼을 해체할 경우 사용자들의 상호교류의 질적인 측면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랫폼 해체보다는) 적절한 사전규제를 통해 플랫폼과 입점업체의 공정한 관계를 구축하고, 소비자를 플랫폼 지배력 남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한국의 플랫폼 규제에 대해선 “한국의 경쟁법 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법이 소비자 후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거대 플랫폼의 경쟁자 역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인지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다. 제니 의장은 “국가마다 경쟁법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규제의 역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들이 플랫폼에 동일한 규제를 시행할 필요가 없다”며 “한국 빅테크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지, 아니면 미국과 EU에 비해서 시장환경이 더 균형적인지 여부를 우선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시장의 특징과 네트워크 효과, 범위의 경제는 경쟁 당국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방식의 변화와 디지털 분야에 맞는 경쟁법 집행을 요구한다”며 “이를 위한 첫 단계로 시장 획정과 지배력 측정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한국 공정위의 노력은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