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CB) 투자, 개미는 못 버는 '독이 든 성배'일까 [류은혁의 기업분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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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사채(CB)에 대한 A to Z전환사채(CB) 투자는 이론적으론 복잡해 보여도 단순한 편이다. 우선 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를 의미한다. 채권처럼 이자를 받다가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바꿔 이익을 보는 방식이다. 한 주당 전환가액이 정해져 투자금액 만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주식 전환 없이 만기일까지 CB를 보유하게 될 경우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
오는 12월부터 CB 전환가액 상향 의무화
'일석이조' 효과 누리던 기업들 불만…기존 주주 '환영'
가치 희석에 파생 손실 등 고질적인 문제 해결될 수도
CB의 개념은 명료하다. 기업 입장에선 저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챙길 수 있다. 겉에서 봤을 땐 공급(기업)과 수요(투자자) 양측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구조로 보인다. 하지만 중간에 낀 기존 주주들은 CB의 주식 전환에 따른 지분가치 희석을 걱정한다.최근 금융위원회가 기존 주주에게 불리했던 CB 리픽싱(전환가격 조정) 규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에서 전환가액 상향 조정 의무 방안을 내놨다. 오는 12월부터 주가가 오르면 CB의 전환가액도 상향 조정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상향 조정 범위는 최초 전환가액의 70~100%로 제한했다.
CB를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하는 주당 가격을 전환가액이라고 한다. 지금은 전환가액에 대한 규정이 없어 발행사는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주가가 하락하면 가액을 낮춰주고, 이후 다시 주가가 올라도 이를 상향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 전환가액이 낮아질수록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는 희석이 되고, CB투자자들의 수익률은 극대화된다는 의미다.
주주들 '웃고'·기업들 '울상'…매력 잃은 CB투자
사실 리픽싱은 한국와 일본에서만 이용되는 조항이다. CB는 신용등급이 낮지만 부채비율이 높고 성장성이 좋은 신생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자금조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에선 코스닥 상장사들이 주로 활용하는 자금조달 통로다.기업이 CB를 발행하는 이유로는 이자비용 절감, 잠재적 자기자본(Backdoor equity)의 역할 등이 주로 언급된다. 채권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자본금이 증가한다. 기업입장에선 부채가 줄고 자본까지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CB를 발행했다고 곧바로 주식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1~2년의 전환일을 정한 뒤 주식전환이나 조기 상환 청구라는 조항을 넣는다. 만약 CB 투자자가 주식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전환청구권 행사)를 하면 회사는 새로운 주식을 찍어서 줘야한다. 반면 조기에 원금을 갚으라는 요구가 있을 때는 빌렸던 돈을 이자와 함께 돌려줘야 한다.
이번 CB 규정 강화로 인해 코스닥 시장에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B 상향이 의무화되면 CB 투자로 얻는 시세차익이 급격히 줄게 된다. A상장사 CB 10만원어치를 산 투자사는 전환가액이 5000원일 때 20주를 받을 수 있지만 가액이 다시 1만원이 되면 10주만 받는다. 결국 CB 투자자들은 만기 때까지 채권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문제는 원리금 상환 여력이 크지 않은 상장사의 경우다. 투자 매력이 떨어진 CB 발행으로 자금을 끌기 위해선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또 CB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만기 시점에 기업들이 사채를 전액 상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CB를 차환발행 하는 형태로 상환자금을 마련해왔던 구조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신용도가 낮은 CB 발행 상장사의 부실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코스닥업계 한 관계자는 "CB 투자사들이 주식 전환이 아닌, 만기 보유 후 투자금 상환을 요구하며 회사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무분별한 CB 발행, 결국 도산 가능성 키운다
사실 시장에서 CB 리픽싱 관련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랜 논쟁거리였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관련 논의가 급진전됐다.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대폭 내려가다 보니 전환가격을 조정할 수 밖에 없는 상장사들이 대거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리픽싱으로 전환가액은 낮아졌지만 대부분 종목들의 주가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오버행(대규모 매각대기 물량 출회) 부담이 더욱 커졌다. 예를 들어 전환가액이 1만원인 10만원의 CB를 발행할 경우 전환가액이 7000원으로 하락하며 기존 10주로 바꿀 수 있는 주식도 14주로 늘어나게 된다.이 경우 신주가 추가로 발행돼 기존 주주 지분율이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때 7000원이던 주가가 다시 1만원으로 오르면 CB 투자자들은 주식으로 전환해 거액의 차익을 얻지만 가만히 있던 기존 주주들은 주식가치 희석이란 피해를 입게 된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들은 이번 금융위의 CB 상향 조정 의무안을 환영하고 있다.또 현행 리픽싱 조건에서 CB 발행이 많아지면, 주가가 올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회계 기준으로는 리픽싱 조건이 있는 CB의 전환권 대가는 파생상품 부채로 분류하고, 전환권을 공정가치로 평가한다. 주가가 오르면 전환권 가치가 상승하고, 그 차액을 파생상품 손실로 회계처리하기 때문에 현금유출이 없음에도 기업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단 리픽싱 상향 의무가 시행되면 이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은 이번 리픽싱 상향 의무화를 반기고 있다. 일부 사례지만 CB를 확보한 투자자들은 악재성 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리고 리픽싱으로 지분을 대량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주주들의 입장에서는 주가 하락과 동시에 지분까지 희석되는 악재다.
무분별한 CB 발행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조설비 기반의 코스닥 상장사 B사는 지난해 바이오사업을 추진하다는 명목으로 수백억원의 CB를 발행했다. 당시 조달한 자금으로 미국의 한 바이오업체를 사들였지만 본업이 흔들리면서 주가가 전환가액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몇 차례 리픽싱을 거쳤지만 주가는 여전히 전환가액을 밑돌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의 자산이 넉넉치 않다는 점이다. 만약 만기일에 CB 채권자들이 원금 및 이자 상환을 요구할 경우 가지고 있는 자산을 팔아치우거나 또 다른 곳에서 자금을 조달해야하는 상황을 맞다뜨릴 수 있다. 결국 무리한 CB발행은 도산의 위험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금융위의 조치는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 시장을 더욱 건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조치로 메자닌 투자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지만 무분별한 CB 발행 등 그동안 언급된 고질적인 문제도 일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