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나무의 우리금융지주 인수전 참여가 불러온 혁신의 물결

막강한 자금력 앞세운 스타트업들, 전략적 M&A 주도
한국 산업 전체가 '존속적 혁신'보다 '파괴적 혁신' 시도해야

음병찬
지난달 20일 저녁, 필자의 카카오톡 대화방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다양한 연령대·직업·배경의 지인들이 있는 대화방이 분주해진 이유는 바로 "예금보험공사가 진행한 우리금융지주 지분 매각 입찰에 가상자산(암호화폐·코인)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가 참여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두나무는 ‘금융과 기술을 결합, 누구나 더 쉽게, 효과적으로 투자하는 금융 환경을 만들겠다’는 모토 하에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주식 애플리케이션 ‘증권플러스’ 등을 운영하고 있다.올해 암호화폐 거래가 폭증하면서 업비트는 국내외 업계 내 입지를 굳혔고, 전세계 대형 거래소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런 성장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두나무의 영업이익이 네이버와 카카오 영업이익 총합을 능가했고, 전문가들은 향후 두나무가 미국 증시에 상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 앞세운 스타트업들, 전략적 M&A 주도

2012년 주식시세 확인 서비스 ‘증권플러스’로 출발한 두나무가 이렇게 성장하여 국내 5대 금융지주회사 중 하나인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업계 지인들에게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대기업의 '인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토종 스타트업들이 전략적 인수합병(M&A)의 주체가 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투자 유치로 확보한 막강한 자금력으로 다른 스타트업·대기업 자회사 또는 사업부문을 인수하는 M&A를 진행하고 있다.최근의 국내 사례만 보더라도, 제 3호 인터넷 전문은행 토스뱅크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의 ‘타다’ 인수,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가 2조원을 투자한 야놀자의 ‘인터파크’ 인수, 국내 1호 프롭테크 스타트업 직방의 ‘삼성SDS 홈 사물인터넷(IoT) 부문’ 인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진하는 규제 완화, 그리고 혁신을 위한 노력의 확산

전통적으로 금융 산업은 ‘실물 경제를 지원하는 인프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시스템의 안정, 소비자의 보호 등을 위해 각종 규제를 정립해 왔다. 그러나 네이버·카카오 등과 같은 빅테크(Big Tech)기업 뿐 아니라 혁신적인 ‘테크핀(Tech-Fin)’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규제 당국도 금융산업의 경쟁과 혁신이 금융서비스의 수준을 한차원 높일 수 있고, 이것이 결국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한다는 철학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도입된 인터넷 전문은행 인가, 금융규제 샌드박스, 마이데이터 사업자 허가 등 굵직한 규제 완화책들이 금융 시장의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인터넷 전문은행 인가 이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출범한지 4년만에 자산을 40조 규모까지 늘리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고, 지난 10월 출범한 토스뱅크도 1000만명이 넘는 월간 활성이용자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앞으로 인터넷 전문은행들은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멀티플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 공격적인 M&A와 사업 확대를 꾀할 것이다. 2년 전부터 시작된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블록체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출현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벤처캐피탈(VC)들은 여기에 약 6000억원의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사업자에 대한 최종 허가를 발표한 마이데이터 사업의 경우 아직은 그 효과를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고객에 대한 엄청난 집중, 데이터 기반 사업의 경험과 기술적 역량을 쌓아 온 빅테크와 테크핀 기업들에게 약진의 기회를 부여하면서 기존 금융사들의 구조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업자가 주의해야 할 ‘존속적 혁신’의 함정

이런 시장의 변화를 맞이하여 기존 대형 금융사들도 사업 구조의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 등 신기술 도입과 확산, 이를 위한 인력 확보 및 투자 등에 자원을 집중하는 동시에 금융 뿐 아니라 비금융까지도 아우르는 생활 밀착형 플랫폼으로 변모하면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빠지지 말아야 할 하나의 ‘함정’이 있다. 과연 우리 조직이 하고 있는 혁신이 과연 ‘존속적 혁신’의 영역인지, 아니면 진정한 ‘파괴적 혁신’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난 클레이튼 크리스텐센 교수는 혁신을 ‘존속적 혁신 (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으로 구분했다. 존속적 혁신은 주요 시장에서 활동하는 주류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에 맞춰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하는 것으로, 크리스텐센 교수는 “특정 산업 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기술 진보는 존속적인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기존 기업들이 간과했던 고객층을 겨냥, 적절하고 편리한 기능을 낮은 가격에 제공하여 발판을 확보하고, 이 장점을 유지한 채 기존 기업의 주류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까지 제공하면서 시장의 상층부로 올라가, 결국 주류 소비자들이 신규 진입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규모로 사용하기 시작할 때" 일어나게 된다.

'토스'가 바로 이 파괴적 혁신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토스의 가장 초기 서비스였던 ‘간편 송금 서비스’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고스트 프로토콜’이라는 프로젝트로 3개월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떤 불편함을 겪는지 관찰하여 필요할 만한 앱을 기획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후 100여개의 아이디어가 탄생했는데, 그 여섯 번째 시도가 바로 토스였다고 한다.

토스는 론칭 이후 1년 동안 액티브 엑스와 공인인증서 관련 규제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한류 열풍 덕택에 외국인의 간편 결제 수요 등이 맞물리면서 일부 규제가 풀리고, 이후 본격적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조그맣게 생긴 틈을 계속해서 넓히고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토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니즈와 행동을 추적해가면서 은행, 보험, 카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결국 올해 10월 제 3 인터넷 전문은행 서비스를 론칭하게 되었다.

반면 이미 거대한 규모의 고객과 그에 맞는 조직을 갖추고 있는 주류 기업은, 새로운 소비자가 있는 소규모 신생 시장에서 강력한 포지션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자본과 인력을 자유롭게 배분하기 어렵다. ‘새로운 소비자’를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시도가,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 이를 운영하는 조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로 변질되기 쉽고, 그 진행 과정 또한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혀 적시에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러다 보면 결국 ‘파괴적 혁신’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존속적 기술’에 대한 투자가, 모두의 마음과 이해관계를 다치지 않는 대안이 된다. 필자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절대 주류 기업 조직이 혁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거나, 자원과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고객, 기존 사업과 서비스, 기존 투자자에 대한 열심과 헌신이 역설적으로 그렇게도 원하는 진정한 혁신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유의미한 ‘파괴적 혁신’을 하려면, 적합한 비용 구조와 자원을 가진 독립적인 조직을 별도로 두고, 여기서 새로운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학습,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 사업자의 ‘파괴적 혁신’ 노력: 다이어그램 벤처스 사례

다이어그램 벤처스는 캐나다 7위 금융그룹인 PCC(Power Corporation of Canada)가 설립한 ‘벤처 런치패드’ 또는 ‘하이브리드 벤처 펀드’라고 할 수 있다. PCC는 생명보험, 연금보험, 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 사업을 전개하는 지주회사로 2020년 기준 총자산 약 1,200조원, 매출액 약 70조원 규모의 대형 금융그룹이다. 대표적인 자회사는 캐나다 2위의 생명보험사인 캐나다 라이프(Canada Life)가 있다.

2016년 PCC는 “(주력 사업인) 보험, 금융서비스, 그리고 헬스케어를 파괴적으로 혁신할 스타트업을 만들어낸다”는 목표로, 그룹의 투자 전문 자회사인 사가드 홀딩스(Sagard Holdings)를 유한책임투자자(LP)로 하는 벤처 캐피탈 다이어그램 벤처스를 설립하였다.

다이어그램 벤처스는 기존 VC처럼 외부 창업팀이 접근해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다이어그램 벤처스의 파트너들, PCC 및 금융계, 그리고 스타트업의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수집하고, 까다롭게 검토하여 걸러내는 과정을 정기적으로 거친다.

이 과정을 통해 선별된 아이디어에 대해서 소규모의 내부 팀과 리소스를 동원해 시드 라운드(Seed Round)를 거칠 정도의 프로토타이핑과 외부 검증을 하고, 이후 이 새로운 사업과 맞는 ‘창업자’를 찾는다.

이 창업자와 합을 맞추고 창업자가 사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동안,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각종 네트워크, 파트너십, 자원, 경험있는 인력 등을 함께 준비하고, 그 이후 본격적 펀딩과 확장의 과정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캐나다 뿐 아니라 북미 전역에서 진행함으로써, 보다 넓은 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보다 넓은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기존 사업의 외부에서 혁신을 위한 '시드'를 만들어내고, 이를 진두지휘할 창업자를 찾아내어 경험과 자원을 투여함으로써 스타트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이후 스타트업이 성장했을 때 기업공개(IPO) 뿐 아니라 기존 사업의 M&A를 통한 ‘우군화’ 등 다양한 엑시트(Exit) 전략을 취하는 이 모델로, 다이어그램 벤처스는 지난 5년간 14개의 포트폴리오 회사를 만들어냈으며 이 중 2개는 엑시트에 성공했고, 1개는 IPO를 하며 PCC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다시 한 번 한국의 산업 전체가 ‘파괴적 혁신’을 시도할 시기

돌이켜보면 한국의 70년, 80년대는 세계 시장을 향해 도전한 ‘파괴적 혁신’의 시기였다. 이 시기의 눈으로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기업들이 효율성에 근거한 ‘존속적 혁신’의 덫에 붙들려 있는 것은 아닌지 끝없이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뿐 아니라 제조, 금융 등 기존 주력 산업에도 재무적 자원과 인적 자원이 아직까지는 풍부하다. 더 늦기 전에, 성장 시장의 이코노믹스에 대한 이해와 글로벌하게 열린 시각을 바탕으로, 기존 산업의 주류 사업자들이 ‘스스로를 파괴적으로 혁신’하면서 새로운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사회 전반에 혁신의 기운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음병찬 아르밀라 AI 공동창업자·스탯(STAT) 사업전략고문 약력△서울대학교 졸업
△액센추어·IBM·부즈앤컴퍼니·모니터그룹 전략 컨설턴트
△카카오 AI 전략 및 비즈니스 개발 총괄
△엘리먼트AI 한국 지사장
△아르밀라 AI 공동창업자·스탯(STAT) 사업전략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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