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뿌리내린 강인한 생명력…편견에 맞선 그녀의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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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3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조지아 오키프 '페데르날이 있는 사슴 해골'
"짐승의 뼈는 사막의 아름다운 꽃"
고독하지만 독립적인 삶을 살아온
오키프의 자의식이 스며든 초상화
남성 중심의 예술 권력에 도전
'성차별의 미술史'를 바꾼 거장으로

오키프는 예술적 창조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시절에 성차별의 미술사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현대 사진의 거장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와 결혼한 뒤에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원래 성을 사용할 만큼 강하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았다.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편견의 시대에 맞선 오키프에게 “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힘, 해방, 자유다”는 찬사를 바쳤다.

고스트랜치 인근 마을 아비키우에의 낡은 집을 수리해 작업실을 마련하고 여름에는 고스트랜치, 겨울엔 아비키우에서 은둔하며 창작에만 몰두했다. 이 작품은 뉴멕시코의 자연 풍경이 영감의 원천이자 유리천장을 깨는 용기의 근원이었다고 말해준다. 그만큼 주제의식이 독창적이고, 표현 기법도 실험적이다. 먼저 대담하게도 동물의 두개골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화면 중앙에 우아하게 구부러진 뿔을 단 사슴의 두개골이 죽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오키프는 사막의 자연물을 수집해 작품 소재로 즐겨 사용했는데, 특히 뼈에 깊이 매혹됐다. 그는 뼈를 사막의 아름다운 꽃이자 삶과 죽음의 상징물로 여겼다. 이는 “뼈들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이상하게도 살아 움직이는 동물보다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그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화면 구성 능력도 탁월하다. 두개골을 클로즈업한 독특한 구도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뼈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한편으론 수직의 뼈와 나무, 수평의 산을 대비해 조화와 균형을 이뤄냈다. 카메라 렌즈로 대상을 보는 듯한 접사촬영 기법 효과도 활용했다. 뼈의 눈구멍과 관객의 눈이 마주하고, 뼈의 눈구멍을 통해 파란 하늘과 페데르날산이 보이도록 연출했다. 오키프는 스페인어로 ‘부싯돌 언덕’이라는 뜻의, 꼭대기가 평평한 독특한 형태를 한 페데르날산에 깊이 매료돼 많은 작품에 담았다. 그에게 페데르날산은 신성하고 장엄한 존재이자 영적 기도의 대상이었다.
오키프는 1986년 3월 6일, 98세로 샌타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도 추모식도 거행하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은 페데르날산의 정상에 뿌려졌다. 그토록 사랑한 뉴멕시코의 자연 속으로 돌아가 페데르날과 하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