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테이퍼링 아니라 금리 올려도 괜찮다”는 블랙록의 주장

지난 3일 미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 발표에 이어 4일(현지시간)에도 중요한 이벤트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둘 다 시장 예상을 벗어났고,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① 금리 동결한 영국 중앙은행→금리 급락+달러 급등미 동부시간 오전 8시에 나온 영국 중앙은행(BOE)의 통화정책회의 결과는 환율 금리 등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하기로 한 것입니다. 시장은 지난달 17일 앤드류 베일리 BOE 총재가 "인플레 우려가 심해지면 중앙은행이 나서야 한다"라고 발언한 이후 BOE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9월 3.1%를 기록하는 등 BOE 목표치(2%)를 크게 웃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위원 6대 3으로 기준금리를 15bp 올릴 것으로 예상했었지요. 그런데 BOE가 예상을 뒤집고 7대 2 투표로 금리를 동결한 것입니다. 심지어 베일리 총재도 동결에 찬성한 7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베일리 총재는 "저를 포함해 위원회의 어떤 위원도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시장의 방향은 맞지만 좀 지나쳤던 감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베일리 총재 등 은행 관계자들이 금리 인상 기대감을 높여두고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는 불만이 많다"라면서 "영국은행 결정은 어제 제롬 파월 의장의 비둘기파적인 태도에 영향받은 것 같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시장은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금리 인상 예상을 반영해 최근 올랐던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했습니다. 이에 달러화 가치는 크게 올라 ICE달러인덱스 기준 94를 넘었습니다.
지난 2일 호주중앙은행의 완화적 태도 유지(수익률 곡선 제어 폐지에도 불구하고)→3일 Fed의 비둘기파적 태도(일시적일 것으로 예상하는 인플레이션)→4일 BOE의 예상 이외의 완화 정책 고수가 이어지자 영국(5년물, -19bp)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2년, 5년 등 단기 국채 중심으로 금리가 급락했습니다.

미 국채의 경우 2년물은 6.5bp(1bp=0.01%포인트) 떨어진 연 0.413%까지 내렸고, 5년물은 8.7bp 내려 1.098%를 기록했습니다. 10년물도 6bp 떨어져 1.519%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중 1.516%까지 내렸는데 이는 지난 8월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어제 FOMC의 결론을 정리한다면 '기준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때까지 늦추자'라는 것이었다"라며 "시장에 선반영됐던 기준금리 인상 예상이 되돌려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날 미 재무부가 발표한 국채 공급 축소 소식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늘렸던 발행 규모를 정상화하는 겁니다. 다음 분기 2·3·5년물 경매 규모를 월 20억 달러, 7·20년물 경매 규모를 월 30억 달러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② 미국의 증산 압력 거부한 OPEC+…유가는 급락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각료회의 결과는 오전 10시 30분께 발표됐습니다. OPEC+는 회의 30분 만에 애초 계획대로 12월에도 하루 40만 배럴을 증산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습니다. 미국, 인도, 일본 등 수요국들이 추가 증산을 강력히 압박해왔지만 간단히 거부한 겁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유가는 러시아나 OPEC 국가들이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기를 거부한 결과”라고 비판했었습니다. 백악관은 OPEC+가 추가 증산하지 않으면 쓸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고려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OPEC+ 의장인 사우디의 압둘 아지즈 빈살만 에너지 장관은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의 원인은 원유가 아니라, 천연가스와 석탄의 급격한 상승"이라며 증산 계획을 유지했습니다.
(이날 실적 발표에 나섰던 셰일오일 회사 파이오니아내추럴리소시스의 스콧 셰필드 CEO는 "바이든 대통령의 반 석유 노력이 이제 역효과(backfire)를 내기 시작했다"라며 이를 되돌릴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 매우 빡빡한 시장에 진입하리라 생각한다. OPEC+의 증산 여력은 향후 2년이면 모두 소진될 것이며 추가 공급할 곳은 없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유가가 베럴당 80~100달러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OPEC+의 결정에 잠깐 급등하던 국제 유가는 내림세로 마감했습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2.05달러(2.5%) 하락한 배럴당 78.81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배럴당 80달러 밑에서 마감한 것은 지난 10월 7일 이후 처음입니다. 백악관에서 전략 비축유 방출 얘기가 흘러나오자 차익실현 매물이 나온 탓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OPEC+의 알력 속에 전략 비축유 방출, 이란 핵협상의 잠재적 재개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유가의 변동성을 키울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유가가 강세를 이어갈 것이란 예상(연말 브렌트유 배럴당 90달러)은 바뀌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금리가 급락하고 유가도 내리자, 뉴욕 증시는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금리 하락의 수혜주인 기술주가 많은 나스닥은 0.82% 올랐고 S&P500 지수도 0.42% 상승했습니다. 다우만 0.09% 약보합세로 마감했습니다. 금리 하락에 금융업종이 1.35%나 떨어진 탓입니다.
어제 FOMC 결과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합니다. 블룸버그의 브라이언 차파타 칼럼니스트는 "파월 의장이 어제 '우리는 지금이 금리를 올릴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그게 필요한 일이라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인내할 것이고, 그러나 주저하지는 않겠다'(We Don't think it's time to raise rates now. If we do conclude that it's necessary to do so, then we'll be patient, but we won't hesitate.)라고 말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씨티, ING 등은 매파적으로 해석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오는 12월 FOMC에서 테이퍼링의 속도를 높이고 내년에는 두 세 번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예상입니다.

하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파월 의장이 팬데믹이 완화되면 인플레이션이 안정될 것이며, 임금 상승 지속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평가한 점 등에 비춰볼 때 내년 4분기에 처음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기존 전망을 유지했습니다. 핌코는 2023년 금리 인상 전망을 유지하면서 좀 더 앞당길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결국 Fed의 기준금리 결정은 향후 경제 상황에 달려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금리 인상 조건 중 하나인 고용은 확연히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주간 실업급여 청구 건수(~10월 30일)는 전주보다 1만4000명이나 줄어든 26만9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팬데믹 이후 최저치이며 월가 예상(27만5000명)도 크게 밑돌았습니다. 이렇게 월가 예상을 밑돈 게 벌써 5주째입니다. 5일 아침 노동부는 10월 비농업 신규고용 수치를 발표합니다. 월가는 45만 명 증가를 예상합니다. 하지만 델타 변이 확산세가 꺾어지고 실업급여 청구가 계속 줄어들면서 골드만삭스는 52만5000명 증가를 점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파월 의장의 말대로 내년 하반기에 완전고용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은 모든 건 인플레이션에 달려있습니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강조한 가운데, 공급망 혼란이 완화돼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진다면 시장 예상보다 인상이 늦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금리 인상 시점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인플레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임금입니다. 지속성이 강하고 한 번 발생하면 퍼지기 때문입니다. 이날 미 노동부는 3분기 노동생산성이 -5.0%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월(+2.3%) 수치나 월가 예상(-3.2%)을 크게 밑돌았을 뿐 아니라 1981년 2분기(-5.1%)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하지만 시간당 보상은 2.9% 올라 단위 노동비용은 전분기보다 무려 8.3% 폭등했습니다. 단위 노동비용은 지난 4개 분기 동안 4.8% 올랐었습니다. JP모간은 "구인난이 심각하다 보니 저능률 근로자를 높은 임금에 채용하면서 생산성이 떨어진 것 같다"고 풀이했습니다.

시장에는 "Fed가 테이퍼링을 해도, 기준금리를 올려도 주식은 괜찮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주장입니다. 유동성이 이미 넘칠 정도로 풀려있다는 겁니다. 금리를 마구 올려서 유동성을 뽑아내는 수준이 아니라면, 뉴욕 증시는 편안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테이퍼링 등 통화정책 전환에도 시장은 편안할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긴급 완화 조치를 없애려는 Fed △시스템에 이미 있는 막대한 유동성 △매우 완화적인 금리(특히 실질금리) 등 세 가지 요인을 들었습니다.

리더 CIO는 "테이퍼링 과정이 엄청나게 파괴적일 수 있다는 공포에서 시장이 벗어날 것으로 생각한다"라면서 "세계에는 수익률을 찾는 천문학적인 돈이 널려있고 고품질 주식에 대한 수요는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금리가 약간 더 높은 수준이면 두드러질 것"이라며 "우리는 수익률 곡선의 앞쪽에 있는 단기물 금리가 지금보다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리더 CIO는 "Fed는 경제 활동과 고용 증가 속도가 지난 9월 FOMC 회의 이후로 둔화했다고 지적했지만, 미국 경제는 분명히 지난해 팬데믹 위기가 심각했을 때 실시한 '비상조치'를 벗어날 발판을 마련한 상태"라고 테이퍼링 발표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오랫동안 과도한 완화 정책이 지속했고 이게 경제를 과열시키면 의도하지 않은 시장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Fed에 대한 신뢰가 더욱 약화하고 결국 경제 회복이 저해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요인으로 예상되는 요인들에 의해 높아졌다'라는 Fed의 분석에 대해선 일부만 동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리더 CIO는 "Fed는 공급망 혼란이 물가에 충격을 줬고 시간이 흐르면 반도체와 중고차, 항공료 등이 떨어질 것으로 규정했다. 우리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임금과 주택 가격 인플레이션, 그리고 일부 에너지 가격 혼란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임금과 주택 가격, 일부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는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더욱이 최근 고용 데이터가 예상보다 약간 약하게 나왔지만, 공급망 혼란과 코로나 델타 변이 확산세가 지난 3분기에 고용 성장을 억제했기 때문"이라며 "고용시장은 앞으로 몇 개월 동안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리더 CIO는 결론적으로 "내년 중반께 완화적 통화정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단계에 가까워지면 시장 변동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면서 "하지만 금융시스템 전반에 쌓여있는 유동성이 너무 막대해서 이런 변동성은 파괴적이기보다는 건강한 진화가 될 것 같다"라고 내다봤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