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CEO 무례하다"…삼성 막힌 속 뚫어준 TSMC [박신영의 일렉트로맨]

대만 TSMC 창립자, 팻 겔싱어 인텔 CEO 강하게 비판
겔싱어,"美 정부 반도체 기업 보조금 해외기업에 줘선 안돼"

대규모 미국 투자 진행중인 삼성과 TSMC는 내심 불편
美 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에 대한 명확한 언급 아직 없어
장중머우 대만 TSMC 창립자
"겔싱어는 무례한 자"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를 창립한 장중머우 전 TSMC 회장이 지난 10월 26일 대만에서 열린 테크포럼에 참석해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저격하고 나섰다.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업계에서 각 기업의 기술력을 언급하는 일은 종종 있어왔지만, 개인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만큼 정중머우 전 회장의 발언 수위가 세다는 뜻이다. 장중머우 전 회장이 이처럼 겔싱어 CEO를 비판하고 나선 배경엔 최근 파운드리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 문제가 있다. 미국이 대규모 지원금 살포를 추진하면서 돈을 둘러싼 파운드리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어서다. 겔싱어 CEO는 노골적으로 정부 지원금을 해외 기업에 줘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경쟁 기업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에 5년간 520억 달러(약 61조 6300억원) 지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년간 520억 달러(약 61조 63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제정된 ‘미국 반도체법(CHIPS for America Act)’의 후속 조치로, 반도체 제조 시설 등에 52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지난 6월 처리했다. CHIPS 법은 현재 하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CHIPS 법의 목적은 명확하다. 이미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의 첨단산업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CHIPS 법이 상원을 통과한 후 “우리는 21세기에 승리하기 위해 경쟁 중이며 이번 법안 통과로 출발 총성을 울린 셈”이라고 말했다.공급망 불안 해소도 이유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개발과 설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대만과 한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대에 집중돼 있다. 이들 국가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생산과 중단을 반복하다보니 미국의 완제품 업체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반도체 쇼티지(수급부족)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양을 늘려야 하는 숙제를 안은 셈이다.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춘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정학적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의 이유이기도 하다.

보조금 두고 미국 기업들, 삼성·TSMC 견제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두고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업체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미국 인텔과 마이크론이 대표적이다. 상원에서 처리된 법안에는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미국 내 반도체 기업들은 되도록 자국 기업에 지원금이 더 많이 돌아오도록 여론몰이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팻 겔싱어 인텔 CEO
겔싱어 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10월 다큐멘터리 뉴스 '악시오스 온 HBO'(Axios on HBO)에 출연해 "우리의 생산비가 아시아보다 30∼40% 비싸서는 안 된다"며 "이 차이를 줄여 미국에 더 크고 빠른 반도체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겔싱어는 CHIPS 법안이 미국이 디지털 미래를 주도하는 데 중요한 문제이며 520억달러 지원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번째 반도체 지원법도 필요하며, 이른바 '문샷'(moonshot·달 탐사선을 제작하는 식의 통 큰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반도체 지원법도 필요할 것"이라며 "이름이 무엇이든지 간에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해외 기업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정부 지원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 향후 10년간 기존 생산시설 확장과 신규 공장 건설 등에 1500억달러(약 176조4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자사 주력 반도체를 미국이 아닌 대만·일본·싱가포르에서 생산하고 있다. 메흐로트라 CEO는 특히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아시아 국가보다 35∼45% 정도 비용이 더 들어간다면서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포함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내심 불편한 삼성·TSMC

이같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도발에 삼성전자와 TSMC에선 내심 불편한 기류가 감지된다. 장중머우 전 TSMC 회장은 테크포럼에서 "겔싱어는 지금도 TSMC에 실례를 저지르고 있다"며 "오늘 강연은 그 답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언급을 하고있진 않지만 인텔의 견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TSMC와 삼성전자 모두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상태여서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4년간 110조 원 이상을 쏟아붓기로 했다. 삼성전자 또한 올해 미국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 투자를 발표하고 현재 텍사스주 테일러시 등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다.

보조금 수령 여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52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지는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결정할 것”이라며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원할지는 행정부의 내부 정책 논의가 끝난 뒤 결정할 것이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러몬도 장관은 해외 기업에 대한 지원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는 “동맹국(한국)에 있는 삼성도 미국에 본사를 두지는 않았지만 이 산업의 리더”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시장 확대…숨통 트일까

다만 파운드리 기업들로선 미국 정부의 보조금도 중요하지만 이보단 파운드리 시장의 성장에 더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행히 시장에선 당분간은 파운드리 시장이 계속해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연간 파운드리 시장 매출 규모가 1176억9000만달러(약 137조6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반도체 수급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파운드리 가격이 올라 관련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최근 파운드리 수요가 크게 늘면서 파운드리 제조 단가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파운드리 업체들이 쇼티지에 대응해 새로 늘리기로 한 생산라인들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