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회사채 '완판행진' 끝났다…기업들 내년 자금조달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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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저금리·유동성 장세기업공개(IPO)와 회사채 발행 실패 사례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계획에 ‘노란불’이 켜졌다. 코로나19 충격에 이은 저금리와 유동성 장세가 저물고 있다는 판단에서 주식과 채권을 내놓기만 하면 사들이던 기관투자가의 태도가 급변하고 있어서다. 앞으로 자금 조달비용의 추가적인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단위 몸값 시몬느 등 상장철회
케이카 등 공모가 낮춰도 관심 無
자금 조달비용 추가 상승 불가피
○1년 만에 두 배 뛴 금리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944%로 최근 두 달 만에 0.507%포인트 뛰었다. 0.9%대였던 1년 전보다는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순식간에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8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회사채 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4일 민간 채권평가사들이 시가평가한 AA-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3년 만기)는 연 2.538%로 6개월 만에 1%포인트가량 상승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선언한 가운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여러 차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금리를 강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한은이 이달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현재 시장금리에 반영된 상태”라고 설명했다.급변한 분위기에 기업들은 채권 발행 시기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진 데다 투자자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지난 9월 말 풀무원식품을 시작으로 한 달여간 더블유게임즈 디티알오토모티브 우리종합금융 HK이노엔 등 5개 기업이 기관 수요예측에서 회사채 완판에 실패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관들은 금리가 크게 뛰는 시기에는 회사채 투자를 꺼리게 된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수익률 관리를 위해 투자 결정을 할 때 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주식 발행 초호황도 끝나나
주요국의 긴축 움직임은 초호황기를 누렸던 주식 발행시장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약화되면서 증시 주변 자금 이탈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형성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67조1203억원으로 지난달 6일(70조841억원) 후 계속 70조원을 밑돌고 있다.주식시장 분위기 변화에 민감한 기업이 많은 IPO시장은 이 같은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분위기다. 일반청약 경쟁률이 100 대 1에 못 미친 기업이 9월부터 두 달 동안에만 일곱 곳(스팩·리츠 제외)에 달했다. 직전 8개월간 100 대 1 미만 기업은 다섯 곳이었다. 케이카, 프롬바이오, 아이패밀리SC 등은 기관 수요예측 이후 공모가격을 낮췄음에도 일반투자자의 관심을 붙잡지 못했다. 투자심리가 이전만 못하자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조(兆) 단위 몸값으로 평가받는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과 SM상선, 넷마블네오를 포함해 6개 기업이 최근 한 달간 상장 계획을 접었다.○내년 조달계획 ‘고심’
‘황금기’로 불리던 자금조달 환경의 급변에 기업들은 내년 자금조달 계획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 분위기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약 52조4300억원어치다.주식 발행시장에선 증시 분위기에 따라 대어급 공모주 중 상장 시기를 미루는 곳이 또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쓱닷컴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마켓컬리 CJ올리브영 등이 내년 증시 입성을 노리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100개 이상 기업의 IPO가 예정돼 있다.올 들어 급증했던 유상증자 역시 내년엔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가 상승에 힘입어 평소에 비해 적은 수량의 주식으로도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했지만, 주가가 내리막을 타면 이전보다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주요 조달 수단 중 하나인 전환사채(CB) 등 주식 관련 사채 발행여건이 나빠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 발행 직후인 지난해 1~2월 증시가 폭락했을 때 조기 상환을 요구하는 투자자가 급증한 선례가 있어서다. 올 들어 10월 말까지 국내 기업이 발행한 주식 관련 사채 규모는 총 9조1960억원으로 작년 전체(8조2967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