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누구, 9수 끝 사시 합격…'적폐청산 선봉장'서 제1야당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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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서 항명으로 좌천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960년 서울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文정부서 영전…조국사태로 갈등
'反文의 구심점'으로 정계 입문
어린 시절부터 ‘원칙주의자’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학교 단체기합 때면 눈물을 쏟으면서도 요령 피우지 않고 끝까지 벌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시장경제를 중시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는데, 이 책은 1979년 대학 입학 때 부친이 준 입학선물이었다.학창 시절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경제학은 뜬구름 잡는 학문’이라며 법 공부를 권유한 부친의 말에 따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5·18 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 외가가 있던 강원 강릉으로 석 달간 피신한 일도 있다.
그가 사법시험에 응시한 것은 처음부터 판·검사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원래 경제법 등을 공부해 강단에 서려 했다. 1981년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한 해 100명에서 300명으로 늘었는데 ‘사시 합격도 못하고 강단에 서면 모양이 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시에 도전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사시는 9수까지 이어졌다. 사시 합격 후 늦깎이 검사로 평범한 이력을 거치다 노무현 정부에서 굵직한 특수사건에 투입되며 ‘칼잡이’로서 명성을 쌓았다. 원칙주의자인 그는 정권 실세, 대기업 총수, 전·현직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국민적 주목을 받은 건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년 10월 국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 나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윗선의 수사 방해가 있었다고 폭로하면서다. 당시 윤 후보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후 정권에 밉보여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지만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적폐청산 수사의 공로로 선배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정치인 윤석열’을 만든 변곡점은 ‘조국 사태’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로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조 장관이 물러난 뒤에도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을 연이어 수사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검찰총장 재임 막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으면서 ‘반문(반문재인)의 구심점’으로 떠올랐고 보수 진영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지난 3월 검찰에서 물러난 윤 후보는 6월 말 정계 진출을 선언하고, 7월 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정계 진출 4개월 만에 야당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보수 정당의 대선후보가 됐지만 윤 후보는 정치 편향성이 크지 않은 편이다. 최근 한 예능방송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 전 대통령을 기리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불렀다고 했다.
윤 후보는 검찰 시절부터 정계 입문 후까지 ‘자기 사람은 꼭 챙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52세에 열두 살 연하의 김건희 씨와 결혼했으며 ‘애처가’로 소문이 나 있다. 슬하에 자녀는 없고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