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도스토옙스키가 우리 곁에 있다면

오늘(11월 11일)은 온갖 기념일이 겹친 날이다. 빼빼로 데이를 비롯해 보행자의 날, 지체장애인의 날, 농업인의 날(가래떡 데이), 레일 데이, 광고의 날, 기계의 날, 해군 창설 기념일,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중국의 광군제(미혼자의 날) 등 11개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 탄생 200주년 기념일이다. 그가 태어난지 두 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소설은 우리에게 여전히 ‘동시대 작품’으로 읽힌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변혁기와 지금 우리 사회의 혼란상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도스토옙스키의 삶은 극한의 밑바닥과 비탈길로 점철됐다. 가난한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빈민병원 복도에서 극빈가정 아이들의 굶주림과 분노를 보며 자랐다. 28세 때 반체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 직전 목숨을 건진 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9년을 보냈다. 거듭된 파산으로 빚더미에 앉았고 갖가지 병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

사형 전 마지막 5분이 주어졌을 때 그는 “후회할 시간도 부족하구나! 난 왜 그리 헛된 시간을 살았을까?”라고 절망했다. 그날 이후 지하생활자와 살인범, 백치, 사회주의자, 호색한 등을 통해 인간 본성의 뿌리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작품과 요즘 세태가 절묘하게 겹쳐진다. 장편《가난한 사람들》의 궁핍한 하급관리 마카르는 연인에게 “나를 파멸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삶의 이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라고 고백한다. 갈 곳 없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불안, 사회적 소외감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과 닮았다.장편《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선 증오심의 원인이 우리 내면의 ‘자신에 대한 분노’라는 걸 일깨워 준다.《죄와 벌》의 전당포 노파 살해범을 통해서는 왜곡된 정의감과 타인을 심판하려는 권력욕의 허상을 보여준다. 이 또한 ‘분노 사회’와 ‘증오 정치’의 반사경이다.

그는 이런 한계를 넘어 진정한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 삶의 최고가치라고 강조했다. 고통을 치유하고 미움을 극복하는 묘약도 공감과 연민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안과 고뇌, 질병과 가난, 갈등과 대립의 경계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럴 때 그의 문학에서 위로와 격려의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