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을 일으켜 세운 아버지의 한마디 "두렵니?"

김세영, LPGA 투어 통해 에세이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라' 공개
"스포츠와 인생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
대담한 자 앞에선 두려움 사라져"
"실수한 것 같아요. 여기 있는 모든 게 너무 힘들고,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갈까 봐요."

2015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첫 대회를 치른 뒤 김세영(28·사진)은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한국에서 16세의 나이로 여자 아마추어 선수권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한 뒤 밟은 미국 땅이었다. 한국 무대에서 쌓은 내공에 영어 실력도 충분하다고 믿었다.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김세영은 혼란에 빠졌다. 간판을 읽을 수도, 음식을 주문할 수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읽을 책을 찾을 수도 없었다. 김세영은 10일(한국시간) LPGA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라'(Run Toward Your Fears)'에서 "로컬룰을 적은 종이는 쓸모없었고, 오피셜의 지시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루키로 출전한 첫 대회는 미국 플로리다 오칼라에서 열렸다. 긴장과 불안에 휩싸인 그가 좋은 성적을 낼 리 만무했다. 첫 대회 성적은 커트탈락이었다. 전화로 불안감을 털어놓은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아버지는 말했다고 한다. "무섭니?"

김세영은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기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시 "한 주만 더 해 보는 게 좋겠다. 어떻게 되는지 보고 그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김세영은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스포츠와 인생에서 직면할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라고 가르쳐주었다"고 소개했다. 김세영이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9살때다. 그는 태권도 관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5살때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12살에 이미 태권도 3단이었다.

태권도 동작을 통해 몸을 쓰는 법을 익힌 그는 골프에서도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태권도 동작을 골프 스윙 동작으로 잘 옮겨온 것이 비결이었다. 그는 "유연성, 지렛대의 원리, 균형감각, 적절한 순간에 스피드를 내는 법 그리고 공을 때릴 때 자신을 통제하는 것 등 골프와 태권도는 공통점이 많다"며 "내 몸을 알고 올바른 타이밍과 위치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드라이브 샷을 페어웨이로 보내거나 발로 송판을 격파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하나를 익힘으로써, 다른 하나는 이해가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권도에서는 힘을 내기 위해 모든 근육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며, 가능한 한 점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모든 근육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정지된 공의 뒷면에 최대한 많은 힘을 가하는 골프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의 아버지는 김세영에게 어릴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설 기회를 만들어줬다. 승급 심사, 시범 공연에서 늘 사람들 앞에 섰고, 이 경험은 골프대회에서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그의 아버지는 "본능에도 불구하고, 너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상대와 맞서야 한다. 골프 대회에서도 그렇듯, 싸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려움에 져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김세영은 "무술에서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다. 하지만 진짜 적은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세영이 골프에 전념하기로 결정한 것은 10대부터다.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에는 긴장감에 압도되는 그에게 아버지는 "재미로만 골프를 치고 싶어도 괜찮아. 하지만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학교 생활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어. 만약 네가 프로 골프선수가 되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압박감 속에서 플레이하는 법을 배워야 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부모님이 어느쪽이든 나를 지지해주실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고 그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미국 무대에서 두려움에 자신감을 잃은 그에게 아버지가 건넨 "두렵니?"라는 말은 그를 다시 일깨웠다고 한다. 김세영은 일주일 만에 다시 참가한 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 거짓말 같은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LPGA 투어 진출 한 달 만에 얻은 값진 우승이었다. 두달 뒤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에서는 연장 첫번째 홀에서 8번 아이언으로 이글을 잡아내며 두번째 우승을 거뒀다. 김세영은 "물론 내 영어가 하룻밤 사이에 좋아지지는 않았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식당 메뉴를 읽는 것이 여전히 어려웠다"며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결정이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LPGA투어에 정착했다"고 6년 전의 기억을 소개했다.

이번에 LPGA 투어 홈페이지 '드라이브 온'에 소개된 글은 김세영이 인터뷰로 구술한 내용을 LPGA 측이 글로 재구성했다. '드라이브 온'은 2019년부터 시작된 LPGA투어의 캐치 프레이즈이자 캠페인이다. LPGA 투어 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각자의 힘과 잠재력을 포착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 집중 그리고 집념'을 소개한다. 여기에 한국 선수의 에세이가 실린 것은 지난해 고진영(26), 이정은(25), 유소연(31)에 이어 네 번째다.김세영은 LPGA 투어에서 통산 12승의 대기록을 거뒀다. 2015년에는 루이스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고 2020년에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타이틀과 롤렉스 LPGA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다. 치열한 골프의 세계에서 그는 아버지의 말을 늘 되새겼다고 한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라. 왜냐면 대담한 자 앞에서는 항상 두려움이 사라지거든."

김세영은 11일부터 나흘간 미국 플로리다주 벨에어의 펠리컨GC(파70·6353야드)에서 열리는 LPGA 투어 펠리컨 챔피언십(총상금 175만 달러)에 출전한다. 지난 대회 우승자인 김세영은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경기를 즐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대회 공식 인터뷰에서 "디펜딩 챔피언으로 왔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작년에 워낙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 대회도 즐겁게 치고 싶다"며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플로리다 탬파에 살았기 때문에 다시 오게 되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LPGA 투어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 대해서는 "글을 보고 굉장히 감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순간들이 다 생각이 나서 닭살도 많이 돋았다. 내 이야기를 좋은 글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