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건의 바이오 산책] ADC의 ‘약물(D)’은 변화 중

글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부사장(Science intelligence advisor)
지금껏 항체약물접합체(ADC)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 항체의 변화를 다뤄왔다. 하지만 항체 못지않게 ADC의 효능을 높이고 확장성을 넓히고 있는 것이 ‘D’, 즉 약물(drug) 파트다. 이번 호에서는 ADC의 ‘D’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얼마나 큰 효능의 향상을 가져왔는지를 다뤘다.
밋밋했던 지난 6월의 미국임상종양학회 (ASCO)와 달리 9월의 유럽종양학회(ESMO) 2021에는 제약·바이오 분야의 새 소식을 들고 온 두 스타가 자리를 빛냈다. 먼저 HER2 ADC(Antibody Drug Conjugates) 치료제인 엔허투(Enhertu)가 유방암 2차 치료 패러다임을 전환할 만한 데이터로 평가받았고, KRAS G12C 억제제인 미라티(Mirati)의 아다그라십(Adagrasib)이 대장암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효과를 보였음을 알렸다.ESMO 2021에서 감지된 ‘D’의 변화
ESMO ‘Late-breaking presentation’의 첫 번째 발표는 엔허투였다. 허셉틴 및 화학요법 치료를 받은 2차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엔허투는 ‘캐싸일라 (T-DM1)’와의 ‘임상시험 직접비교(head-tohead)’에서 우수한 데이터 결과를 발표했다.

두 ADC는 같은 항HER2 항체인 트라스투주맙을 공통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직접 비교의 차이는 결국 사용되는 약물인 토포아이소 머레이즈(topoisomerase) 저해제인 ‘데룩스테칸(DXd)’과 튜블린에 바인딩하는 T-DM1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무진행생존기간(PFS·Progressive-Free Survival)은 병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가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생존한 기간을 말한다. 엔허투의 경우 치료 후 현재까지 15.5개월 관찰하는 동안 사망자가 적어 중간값을 구하지 못한 반면 캐싸일라의 PFS 중간값은 6.8개월에 그쳤다.더 중요한 PFS의 2차 포인트인 ‘PFS의 3배수 개선(three-fold improvement in PFS)’은 엔허투 그룹 25.1개월, 캐싸일라 7.2개월이었다. 엔허투의 무진행생존기간 우월성이 계속 입증된 것이다.
전체생존기간(OS·Overal Survival)은 말 그대로 환자가 치료를 시작해 사망하는 순간까지의 기간을 추적한 수치다. 엔허투로 치료받은 환자는 1년 후에도 모두 생존했지만 캐싸일라 투여 환자는 85.9%가 생존했다. 엔허투 환자의 OS가 더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관찰기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객관적 반응률(ORR·Objective Response Rate)은 전체 환자 대비 종양 크기 감소 등의 객관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환자의 비율을 가리킨다. 즉 수치상 병이 나은 사람의 비율이다. 엔허투 투여군(arm)의 ORR은 캐싸일라보다 두 배나 높았다.

엔허투는 42명(16.1%)의 완전 반응률(CR·Complete Response)과 166명 (63.6 %)의 부분반응률 (PR·Partial Response)을 보인 반면, 캐싸일라는 23명(8.7%)의 CR과 67명(25.5%)의 PR을 보였다. 안전성 면에서도 엔허투는 지금까지 관찰된 것 외에 더 나쁜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도 그레이드(grade) 4, 5에 해당하는 부작용은 없었다.유방암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평가받는 이번 발표로 엔허투의 유방암 2차 치료제 선점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로 인해 HER2 ADC 개발업체들의 임상 허들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엔허투가 남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엔허투는 캐싸일라와 동일한 HER2 항체(트라스투주맙)를 사용했으나 캐싸일라와 달리 용량 제한독성(DLT)이 나오지 않았다. ADC는 독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편견에서 마침내 벗어난 것이다.

이는 물론 플랫폼의 진화 덕분이지만 약물(payload), 즉 ADC 중 ‘D’의 변화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기존 튜블린 바인더인 MMAE, DM1이 아닌 새로운 폭탄이 ADC 플랫폼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 변화는 엔허투뿐만 아니라 이뮤노메딕스의 ‘트로델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엔허투와 트로델비는 각각 ‘DXd’와 ‘SN-38’이라는 같은 ‘토포아이소머레이즈 I 저해제’를 약물로 사용한다. 이들의 특징은 기존 ADC들이 효능을 높이기 위해 세포독성 효력이 높은 약물을 사용했던 것에 비해 독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약물을 사용한다. 특히 엔허투는 약물항체비율(DAR)을 7~8개 정도로 높인 형태다.또한 죽은 세포를 통해 세포 밖으로 유출된 약물이 세포막 투과성을 지니게 되면서 주변 세포에도 들어가는 소위 ‘바이스탠더 효과 (by-stander cell-killing)’ 현상도 있다.

올리고뉴클레오티드를 약물로 사용한 AOC
토포 약물(Topo toxin)인 데룩스테칸(DXd)과 SN-38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을까. 두 폭탄의 토포아이소머레이즈 I IC50는 SN-38은 2.78M, DXd는 0.31M으로 DXd가 9배 강력하다.

2020년 7월 아스트라제네카(AZ)가 또다시 다이이치산쿄(DS)의 ‘DS-1062(TROP2 ADC)’에 계약금 10억 달러(약 1조1750억 원)를 포함한 최고 60억 달러(약 7조 원)를 과감하게 베팅했다. TROP2 ADC는 비소세포폐암 대상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이다. DS와 AZ의 TROP2 ADC 경쟁 상대가 바로 SN-38을 톡신으로 사용한 트로델비다.

항암제의 최강자 AZ는 아마도 TROP2 ADC에서 DS-1062가 조금 늦은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라도 혁신신약(first-in-class)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필자의 추측은 AZ가 같은 토포 약물이라도 Dxd가 SN-38보다 더 좋은 폭탄이라고 예측한 것이 아닐까 한다. 추측의 근거는 TROP2 ADC가 세포막 투과성이 상대적으로 좋아서 세포 밖으로 유출된 약물이 바이스탠더 효과로 주변 항암세포를 사멸한 것이다.

트로델비가 약물 제조 이슈로 신약 시판이 1년 반 가까이 미뤄진 전력을 소유하게 된 것은 아마 SN-38이 2%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트로텔비가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로 지난 4월 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가속승인이 아닌 최종승인을 취득했다. 정말 AZ의 판단이나 필자의 예측이 맞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늘의 주제는 ADC 중 D의 새로운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D가 O로 변화한 ‘AOC(Antibody Oligonucleotide Conjugates)’가 새로 나타났다. 2019년 4월, 일라이릴리는 어비디티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AOC 글로벌 판권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당시까지 ‘올리고뉴클레오티드 필드(oligonucleotide field)’의 문제점으로 여겨졌던 약물 전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어비디티바이오사이언스의 CEO인 트로이 윌슨은 인상적인 인물이다. 존슨앤드존슨에서 Ras를 억제하기 위해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FTI) 합성연구를 하다가 법학전문석사(J.D) 학위를 갖고 쿠라온콜로지 CEO로 변신한 것. 쿠라온콜로지에서는 자신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존슨앤드존슨의 FTI 판권을 소유하고, 약물재창출로 만든 두경부암(Head and neck squamouscell carcinoma) 약으로 FDA의 허가를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윌슨은 여러 회사의 CEO 직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어비디티바이 오사이언스다. 어비디티바이오사이언스는 2019년 11월에 시리즈C로 1억 달러를 받았다. 이제는 나스닥 상장사가 된 것이다. 이런 성공 스토리를 보면 어비디티바이오사이언스는 많은 스타트업의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프로탁에서 라이탁으로… ADC의 진화는 계속된다
놀랍게도 ADC의 D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올리고 필드가 항체와 결합한 것처럼 프로탁 (PROTAC·Proteolysis Targeting Chimera)이 항체와 결합하는 것이다. 2015년 프로탁 개발이 본격화된 이후 프로탁은 단백질 키나아제 억제제와 단클론 항체에 비견되는 주류 약물군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로탁은 신약 개발의 폭은 넓혔지만 저분자 화합물질이 약으로서 가지는 다른 문제점은 약점으로 보인다. 프로탁이 항체와 결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적단백질 분해 저분자 약물 (TPD·Targeted Protein Degrader)’인 프로탁은 ADC와 마찬가지로 세 부분이 연결된 소분자 약물이다.
즉 ‘질병 관련 표적단백질’에 붙는 저해제(inhibitor)와 ‘단백질 분해 유도효소(E3-ligase)’에 붙는 바인더(binder)와 두 물질을 연결하는 링커(linker)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표적단백질과 분해 유도효소를 가깝게 붙여 특정 질병 단백질을 분해하는 새로운 약물작용 원리다. 프로탁에 대한 첫 콘셉트는 미국 예일대 크루즈 교수팀의 2001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논문에 발표됐다.

프로탁은 구강 복용 가능한가. 프로탁 분야의 선두주자 아비나스가 2개 제품의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12월 14일 금요일 종가 29.93달러에서 58.38달러로 2배 올랐다. 아비나스의 2개 제품은 구강 복용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의약화학자들은 구강 복용 가능한 약물을 만들기 위해 ‘Rule of five’로도 불리는 ‘리핀스키 법칙’을 따른다. 이 법칙은 수소결합 공여자(donor)가 최대 5개, 수소결합 수용자 (acceptor)가 10개 미만, 분자량이 500달톤 보다 적고, CLogP, 즉 분배계수 값이 5 이하가 안 되는 것이 바로 리핀스키 법칙이다.

그러나 프로탁의 분자가 보통 800달톤 이상이기 때문에 용해도(solubility)와 흡수도 (permeability)가 상대적으로 나쁘다. 따라서 새로 만들어지는 프로탁이 구강 복용이 가능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현실적으로 항체에 연결해 E3 리가아제 바인더를 붙이는 시도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약물은 주사제 타입이 되지만 타깃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큰 장점을 지니게 되므로 용해도와 흡수도가 낮은 단점은 무시할 수 있다.

놀랍게도 국내의 오름테라퓨틱은 항체를 기반으로 종양세포에 단백질 분해약물을 전달하는 ‘항체 신규분해약물 접합체(AnDC·Antibody neo Degrader Conjugate)’로 이름을 지어 표적단백질 분해 약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항체와 단백질 분해의 새로운 만남은 ‘라이탁(LYTACs·Lysosome Targeting Chimeras)’이란 새로운 기술이 발동을 걸고 있다. 라이탁은 스탠퍼드 교수인 카롤린 베르토치의 연구실에서 시작돼 2019년 창업한 라이시아테라퓨틱스가 주도하고 있다.

어느 항체든 항체에다가 글리코펩타이드 리간드(glycopeptide ligands)가 붙여져 그 리간드가 ‘양이온 독립적인 만노오스6-인산 수용체(CI-M6PR·Cationic-independent mannose-6-phosphate receptor)’의 작용제(agonist)로 작용해 항체의 타깃을 분해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세포질에 주로 존재하는 E3-리가아제 바인더를 이용해서는 항체의 수용체로 작용하는 ‘세포막 수용체(membrane-bound receptor)’를 제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라이탁을 고안한 것이다. 이런 세포 밖과 세포막에 있는 단백질이 단백질 유전자의 40%를 차지하고, 그 단백질들이 암이나 노화, 자가면역질환에 관련된 단백질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라이탁이 필요하다.

ADC 플랫폼의 진화에서도 특히 약물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MMAE, DM1에서 DXd와 SN-38이 ‘토포아이소머레이즈 I 저해제’로, 다시 올리고뉴클레오티드로 모습을 바꾸고 E3 바인더로도 변한다. 더 나아가 C 없이 달달한 당(糖)으로 C, D 역할을 넘기며 체질을 바꾼다. 이렇게 ADC의 약물(drug)은 계속 변화 중이다. 다음 ‘neo drug’은 무엇이 될까.

<저자 소개>
배진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8년 JW중외제약에서 연구총괄 전무를 지냈고 C&C신약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아브노바 연구소장과 한독 상임고문을 거쳐 현재 이노큐어테라퓨틱스 부사장(Science intelligence advisor)이자 우정바이오 신약 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신약 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Back to BASIC)>이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