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의 바이오 탐구영역]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첫 기술수출 달성한 고바이오랩 “내년 美 임상 2상 2건 결과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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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고바이오랩은 중국 신이에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후보물질 2종을 1253억 원에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으로 기술수출에 성공한 첫 사례입니다. 내년 미국 임상 2상 결과를 확보하면 중국 외 지역에서도 기술이전 체결에 한 단계 더 가까워질 전망입니다. 지난 10월 28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신이와의 계약식 직전에 박철원 고바이오랩 대표를 만나 앞으로의 사업 전략에 대해 들어봤습니다.아직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선진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제약사들과 비슷한 신약 개발 역량을 가졌다고 말하기엔 어렵습니다. 상용화에 성공한 국산 신약은 모두 33종뿐입니다. 100년 이상 업력을 쌓으며 많은 인구를 대상으로 신약 개발에 힘써왔던 유럽, 미국 기업들이 조 단위 매출을 낸 ‘블록버스터 신약’을 만드는 내공을 빠르게 따라가기엔 쉽지 않아 보입니다.마이크로바이옴은 국내 바이오 업계의 신약 개발 속도가 해외 선진 시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분야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에 존재하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 미생물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몸에 이로운 미생물을 투입시키는 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콘셉트입니다. 주로 장에 있는 미생물이 개발 대상이지만 피부나 여성의 생식기 등 다른 장기에 있는 미생물들도 쓰일 수 있습니다.
아직 시장에 상용화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없습니다. 임상 3상을 마친 미국 세레스테라퓨틱스가 선두주자이고, 턱밑에 미국 임상 2상을 진행 중인 고바이오랩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사 중 신약 개발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사실 국내엔 마이크로바이옴을 사업에 활용 중인 기업이 여럿 있습니다. 다만 프로바이오틱스로 알려져 있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생물정보 분석 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신약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내세운 건 고바이오랩이 처음입니다.
美 브로드연구소 연구 경험이 신약 개발로 이어져
마이크로바이옴은 신약 개발 측면에서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안전성이 검증돼 있습니다. 체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만큼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낮죠. 통상 신약 파이프라인 중 25%가량이 안전성 이슈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초된다고 합니다. 반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는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1상에서 실패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장에서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은 만큼 경구제 개발이 가능하다는 매력도 있습니다. 분변을 이식하는 형태로 특정 균주가 아닌 여러 균주를 혼합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전략도 가능합니다.사업 확장이 용이하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항체치료제처럼 특정 단백질 항원을 표적하는 방식이 아닌, 여러 경로를 활용해 약효를 내는 방식이다 보니 다양한 질환으로 적응증을 확장하기가 쉽습니다. 다만 다양한 경로로 약효를 내는 만큼 기전 규명이 쉽지 않다는 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상당수 기업들이 치료제보다는 건강기능식품 형태로 마이크로바이옴 사업에 접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마이크로바이옴이 가져온 파급력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장내 유익균을 뜻하는 프로바이오틱스 산업은 국내에서 홍삼과 건강기능식품 제품군 매출 1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최근엔 어떠한 미생물이 부족한 지를 확인하는 진단이나 화장품 분야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주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럼 고바이오랩은 왜 신약을 주력 사업으로 잡았을까요? 이 회사의 창업 시기는 2014년이지만 시작점은 2011년입니다. 창업자이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있는 고광표 고바이오랩 대표는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장내 바이러스 전문가입니다. 교수로 있던 고 대표는 201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브로드연구소로 파견을 가게 됩니다. 당시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고든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할 기회도 얻었죠. 그런데 그는 동료들이 때아닌 이직을 하는 걸 목격합니다. 임상 3상을 추진 중인 세레스테라퓨틱스로 이직한 것이죠. 아직까진 마이크로바이옴이 신약 사업으로서 주목받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동료들의 이직에 자극을 받은 고 대표는 안식년을 마친 후에도 학기 중엔 강연, 방학 중엔 미국 출장을 반복하면서 2013년까지 브로드연구소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이후 1년간의 숙고 끝에 “신약을 만들겠다”며 바이오벤처를 차렸습니다. 고바이오랩엔 두 명의 대표가 있습니다. 창업자인 고 대표가 물질 연구와 경영지원을 총괄한다면 박철원 대표는 파이프라인의 사업개발(BD)과 마케팅을 책임집니다. 기술이전은 중국 먼저, 다른 지역은 임상 2상 이후
고바이오랩은 “중국 시장은 선제적으로 기술이전을 추진하되 다른 지역에선 임상 2상 결과를 확보해 기술이전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신약 후보물질 도입 경쟁이 치열한 중국 시장에선 함께 상용화에 나설 협력사를 찾는 한편 선진 시장에선 인체 대상 약효를 확인해 계약 규모를 늘리겠다는 겁니다. 임상 3상 등 상용화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복안도 깔려 있습니다.
고바이오랩은 지난해부터 중국 시장에 따로 기술이전 하는 안을 추진해왔습니다. 올여름엔 업체 3곳과 계약 조건이 담긴 텀시트를 나누는 단계까지 나갔습니다. 더 많은 계약금을 부르는 기업도 있었지만 협력사로 낙점한 기업은 신이였습니다. 신이는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화권에서 면역질환 치료 소재인 KBL697, KBL693 2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직접 중국 임상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신이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이의 든든한 ‘뒷배’입니다. 신이는 중국에서 지난해 영업이익 3조 원에 약 4만8000명의 인력을 둔 중국 2위 제약사 상하이제약그룹의 핵심 자회사입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대형 제약사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만큼 현지 임상이나 상용화 단계에서 겪게 될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게 회사 측의 판단입니다. 신이 자체가 5만5000개 의료기관을 거래처로 두고 있을 정도로 영업망을 잘 구축해놨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가 됐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신이가 보여준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의지입니다. 신이는 이미 자체적으로 5000L 규모 마이크로바이옴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선정하고 자체 후보물질로 임상을 진행 중입니다. 박 대표는 “계약 체결 전부터 신이가 중국 보건당국과 임상계획을 사전 조율한 덕분에 호주에서 진행한 임상 1상 데이터를 인정받았다”며 “신이가 임상 1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국 임상 2상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내년 말 건선·궤양성 대장염 임상 2상 결과 나올 것”
박 대표는 “2022년이 고바이오랩에게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내년 말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임상 2상 2건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결과가 잘 나오면 본격적으로 기술이전 논의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임상 결과를 확보할 파이프라인 2건은 건선을 대상으로 하는 KBLP-001과 염증성 장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KBLP-007입니다. 모두 여성의 생식기에서 분리해 얻어낸 균주 KBL697을 이용합니다.
KBL697은 전임상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일종인 인터루킨(IL)-4, IL-5, IL-6, IL-13, IL-17과 TNF-α의 분비를 저해하는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염증을 억제하는 사이토카인인 IL-10의 분비를 유도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건선은 면역반응에 의해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분비돼 각질을 과다 형성하는 질환입니다. 고바이오랩은 장내 면역세포를 통해 KBL697을 흡수시키면 장과 피부, 간의 면역체계에 의해 피부에서 일어나는 염증 반응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BLP-001이 상용화에 성공하면 중등도나 중증 건선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 대안이 될 전망입니다. 기존 치료법으로 쓰이는 스테로이드 제제는 부작용 우려가, 광학 치료 요법은 치료 효과가 짧다는 점이, 항체 치료는 주사제형의 불편함과 높은 약가가 부담입니다. KBLP-001은 기존 치료 방식과 병용투약하는 방식도 가능한 만큼 시장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입니다. 같은 균주를 활용하는 KBLP-007은 장 점막의 면역세포에 직접 작용해 궤양성 대장염을 치료하는 방식의 파이프라인입니다.
또 다른 균주인 KBL693에서 나온 파이프라인 KBLP-002도 내년 미국 임상 2상 진입이 유력합니다. 고바이오랩은 KBLP-002의 호주 임상 1상을 진행한 뒤 국내에서 임상 2상을 위한 예비 임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 여름께 예비 임상의 결과를 확보한 뒤 천식, 아토피피부염 중 하나를 대상으로 미국 임상 2상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이 외에 간질환, 암 등 다른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입을 위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업계 전반을 봐도 내년은 마이크로바이옴 개발사에게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레스테라퓨틱스는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증(CDI) 치료제 ‘SER-109’로 지난해 임상 3상에 성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안전성 자료 제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허가 신청을 내면 내년 말 허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입니다.
신약 발굴 플랫폼으로 생균 유래 물질 치료제도 개발
고바이오랩은 ‘스마티옴’이라는 이름의 신약 발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창업 이전부터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규명해오던 연구를 플랫폼 형태로 만든 겁니다. 이 플랫폼은 백스데이터, 백스뱅크, 백스플로어라는 세 가지 요소기술로 나뉩니다. 각 기술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더 살펴보죠.
백스데이터는 3000명가량의 마이크로바이옴과 각종 임상, 유전체, 다중 오믹스 등의 데이터를 통합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비슷한 나이와 같은 성별을 가진 환자와 정상인 간 대조 연구를 통해 이들 사이의 마이크로바이옴 조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 겁니다. 주목할 점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2000명의 데이터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전, 환경 등의 요인이 변수가 될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 간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한 것이죠.
백스뱅크는 신약으로 쓸 수 있는 후보 미생물 5000종이 담긴 라이브러리입니다. 이들 미생물의 전장유전체를 분석하고 균주별 배양 특성을 파악해 신약 개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은 것이죠. 특히 혐기성을 띠는 등의 이유로 배양이 어려운 신규 균주들도 다수 확보해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 개발사와 차별화를 두려 했습니다. 백스플로어는 앞선 두 요소기술을 적용해 개발할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데이터 분석 평가 시스템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기전 증명이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바이오랩은 백스데이터와 백스플로어를 기반으로 각종 세포실험, 오가노이드 실험, 전임상시험 등을 통해 미생물이 분자 단위에서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고 질환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회사는 10가지 이상의 질환 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마티옴 플랫폼으로 고바이오랩은 기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와 다른, 또 다른 물질로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생균이 아닌, 생균에서 대사 과정 중 나오는 산물들을 약물로 활용하는 것이죠.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을 대상으로 내년 말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는 KBLP-004 이야기입니다. 이 후보물질은 장 속에 있는 균주인 아커만시아 뮤니시필라가 분비하는 P9 단백질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의 분비를 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GLP-1 작용제는 비만과 같은 대사질환 등을 대상으로 신약 개발이 활발한 분야입니다. 다만 생균 유래 물질로는 상용화 사례가 없는 만큼 임상 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사질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려는 제약사들과 협업 관계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균주 유래 물질은 균주에 비해 작용 기전을 규명하기 쉽다”며 “생균과 생균 유래 물질을 두 축으로 삼아 신약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주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아직 시장에 상용화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없습니다. 임상 3상을 마친 미국 세레스테라퓨틱스가 선두주자이고, 턱밑에 미국 임상 2상을 진행 중인 고바이오랩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사 중 신약 개발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사실 국내엔 마이크로바이옴을 사업에 활용 중인 기업이 여럿 있습니다. 다만 프로바이오틱스로 알려져 있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생물정보 분석 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신약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내세운 건 고바이오랩이 처음입니다.
美 브로드연구소 연구 경험이 신약 개발로 이어져
마이크로바이옴은 신약 개발 측면에서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안전성이 검증돼 있습니다. 체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만큼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낮죠. 통상 신약 파이프라인 중 25%가량이 안전성 이슈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초된다고 합니다. 반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는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1상에서 실패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장에서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은 만큼 경구제 개발이 가능하다는 매력도 있습니다. 분변을 이식하는 형태로 특정 균주가 아닌 여러 균주를 혼합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전략도 가능합니다.사업 확장이 용이하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항체치료제처럼 특정 단백질 항원을 표적하는 방식이 아닌, 여러 경로를 활용해 약효를 내는 방식이다 보니 다양한 질환으로 적응증을 확장하기가 쉽습니다. 다만 다양한 경로로 약효를 내는 만큼 기전 규명이 쉽지 않다는 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상당수 기업들이 치료제보다는 건강기능식품 형태로 마이크로바이옴 사업에 접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마이크로바이옴이 가져온 파급력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장내 유익균을 뜻하는 프로바이오틱스 산업은 국내에서 홍삼과 건강기능식품 제품군 매출 1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최근엔 어떠한 미생물이 부족한 지를 확인하는 진단이나 화장품 분야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주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럼 고바이오랩은 왜 신약을 주력 사업으로 잡았을까요? 이 회사의 창업 시기는 2014년이지만 시작점은 2011년입니다. 창업자이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있는 고광표 고바이오랩 대표는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장내 바이러스 전문가입니다. 교수로 있던 고 대표는 201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브로드연구소로 파견을 가게 됩니다. 당시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고든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할 기회도 얻었죠. 그런데 그는 동료들이 때아닌 이직을 하는 걸 목격합니다. 임상 3상을 추진 중인 세레스테라퓨틱스로 이직한 것이죠. 아직까진 마이크로바이옴이 신약 사업으로서 주목받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동료들의 이직에 자극을 받은 고 대표는 안식년을 마친 후에도 학기 중엔 강연, 방학 중엔 미국 출장을 반복하면서 2013년까지 브로드연구소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이후 1년간의 숙고 끝에 “신약을 만들겠다”며 바이오벤처를 차렸습니다. 고바이오랩엔 두 명의 대표가 있습니다. 창업자인 고 대표가 물질 연구와 경영지원을 총괄한다면 박철원 대표는 파이프라인의 사업개발(BD)과 마케팅을 책임집니다. 기술이전은 중국 먼저, 다른 지역은 임상 2상 이후
고바이오랩은 “중국 시장은 선제적으로 기술이전을 추진하되 다른 지역에선 임상 2상 결과를 확보해 기술이전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신약 후보물질 도입 경쟁이 치열한 중국 시장에선 함께 상용화에 나설 협력사를 찾는 한편 선진 시장에선 인체 대상 약효를 확인해 계약 규모를 늘리겠다는 겁니다. 임상 3상 등 상용화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복안도 깔려 있습니다.
고바이오랩은 지난해부터 중국 시장에 따로 기술이전 하는 안을 추진해왔습니다. 올여름엔 업체 3곳과 계약 조건이 담긴 텀시트를 나누는 단계까지 나갔습니다. 더 많은 계약금을 부르는 기업도 있었지만 협력사로 낙점한 기업은 신이였습니다. 신이는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화권에서 면역질환 치료 소재인 KBL697, KBL693 2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직접 중국 임상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신이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이의 든든한 ‘뒷배’입니다. 신이는 중국에서 지난해 영업이익 3조 원에 약 4만8000명의 인력을 둔 중국 2위 제약사 상하이제약그룹의 핵심 자회사입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대형 제약사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만큼 현지 임상이나 상용화 단계에서 겪게 될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게 회사 측의 판단입니다. 신이 자체가 5만5000개 의료기관을 거래처로 두고 있을 정도로 영업망을 잘 구축해놨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가 됐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신이가 보여준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의지입니다. 신이는 이미 자체적으로 5000L 규모 마이크로바이옴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선정하고 자체 후보물질로 임상을 진행 중입니다. 박 대표는 “계약 체결 전부터 신이가 중국 보건당국과 임상계획을 사전 조율한 덕분에 호주에서 진행한 임상 1상 데이터를 인정받았다”며 “신이가 임상 1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국 임상 2상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내년 말 건선·궤양성 대장염 임상 2상 결과 나올 것”
박 대표는 “2022년이 고바이오랩에게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내년 말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임상 2상 2건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결과가 잘 나오면 본격적으로 기술이전 논의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임상 결과를 확보할 파이프라인 2건은 건선을 대상으로 하는 KBLP-001과 염증성 장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KBLP-007입니다. 모두 여성의 생식기에서 분리해 얻어낸 균주 KBL697을 이용합니다.
KBL697은 전임상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일종인 인터루킨(IL)-4, IL-5, IL-6, IL-13, IL-17과 TNF-α의 분비를 저해하는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염증을 억제하는 사이토카인인 IL-10의 분비를 유도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건선은 면역반응에 의해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분비돼 각질을 과다 형성하는 질환입니다. 고바이오랩은 장내 면역세포를 통해 KBL697을 흡수시키면 장과 피부, 간의 면역체계에 의해 피부에서 일어나는 염증 반응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BLP-001이 상용화에 성공하면 중등도나 중증 건선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 대안이 될 전망입니다. 기존 치료법으로 쓰이는 스테로이드 제제는 부작용 우려가, 광학 치료 요법은 치료 효과가 짧다는 점이, 항체 치료는 주사제형의 불편함과 높은 약가가 부담입니다. KBLP-001은 기존 치료 방식과 병용투약하는 방식도 가능한 만큼 시장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입니다. 같은 균주를 활용하는 KBLP-007은 장 점막의 면역세포에 직접 작용해 궤양성 대장염을 치료하는 방식의 파이프라인입니다.
또 다른 균주인 KBL693에서 나온 파이프라인 KBLP-002도 내년 미국 임상 2상 진입이 유력합니다. 고바이오랩은 KBLP-002의 호주 임상 1상을 진행한 뒤 국내에서 임상 2상을 위한 예비 임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 여름께 예비 임상의 결과를 확보한 뒤 천식, 아토피피부염 중 하나를 대상으로 미국 임상 2상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이 외에 간질환, 암 등 다른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입을 위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업계 전반을 봐도 내년은 마이크로바이옴 개발사에게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레스테라퓨틱스는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증(CDI) 치료제 ‘SER-109’로 지난해 임상 3상에 성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안전성 자료 제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허가 신청을 내면 내년 말 허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입니다.
신약 발굴 플랫폼으로 생균 유래 물질 치료제도 개발
고바이오랩은 ‘스마티옴’이라는 이름의 신약 발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창업 이전부터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규명해오던 연구를 플랫폼 형태로 만든 겁니다. 이 플랫폼은 백스데이터, 백스뱅크, 백스플로어라는 세 가지 요소기술로 나뉩니다. 각 기술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더 살펴보죠.
백스데이터는 3000명가량의 마이크로바이옴과 각종 임상, 유전체, 다중 오믹스 등의 데이터를 통합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비슷한 나이와 같은 성별을 가진 환자와 정상인 간 대조 연구를 통해 이들 사이의 마이크로바이옴 조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 겁니다. 주목할 점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2000명의 데이터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전, 환경 등의 요인이 변수가 될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 간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한 것이죠.
백스뱅크는 신약으로 쓸 수 있는 후보 미생물 5000종이 담긴 라이브러리입니다. 이들 미생물의 전장유전체를 분석하고 균주별 배양 특성을 파악해 신약 개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은 것이죠. 특히 혐기성을 띠는 등의 이유로 배양이 어려운 신규 균주들도 다수 확보해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 개발사와 차별화를 두려 했습니다. 백스플로어는 앞선 두 요소기술을 적용해 개발할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데이터 분석 평가 시스템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기전 증명이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바이오랩은 백스데이터와 백스플로어를 기반으로 각종 세포실험, 오가노이드 실험, 전임상시험 등을 통해 미생물이 분자 단위에서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고 질환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회사는 10가지 이상의 질환 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마티옴 플랫폼으로 고바이오랩은 기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와 다른, 또 다른 물질로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생균이 아닌, 생균에서 대사 과정 중 나오는 산물들을 약물로 활용하는 것이죠.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을 대상으로 내년 말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는 KBLP-004 이야기입니다. 이 후보물질은 장 속에 있는 균주인 아커만시아 뮤니시필라가 분비하는 P9 단백질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의 분비를 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GLP-1 작용제는 비만과 같은 대사질환 등을 대상으로 신약 개발이 활발한 분야입니다. 다만 생균 유래 물질로는 상용화 사례가 없는 만큼 임상 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사질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려는 제약사들과 협업 관계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균주 유래 물질은 균주에 비해 작용 기전을 규명하기 쉽다”며 “생균과 생균 유래 물질을 두 축으로 삼아 신약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주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