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유학과 서학의 다리가 된 '茶山'

세계사 속의 다산학

김영호·미야지마 히로시 외 지음
임경택 옮김
지식산업사
796쪽│4만7000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험준한 ‘거봉(巨峯)’이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큰 산과 같다. 다양한 분야에서 남다른 학문적 성취를 이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역량으론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던 다산의 학문 세계를 한·중·일의 학자들이 힘을 모아 입체적으로 분석한 결과물이 나왔다.

《세계사 속의 다산학》은 유학자와 정치학자, 개혁론자, 철학자로서 다산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본 책이다.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국내 학자들과 노지현 프랑스 리옹3대학 교수,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 같은 재외 한국인 학자뿐 아니라 미야지마 히로시 도쿄대 명예교수, 나카 스미오 교토부립대 교수, 리민 중국 정저우대 교수, 차이쩐펑 국립대만대 교수 등 동아시아 각국의 다산 연구자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각 학자가 저마다의 시선에서 주목한 다산의 모습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김영호 교수는 “다산은 공자·맹자와 주자에 이어 제3기 유학을 확립한 인물”이라며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인 서학(西學)을 접한 다산이 주자학과 서학을 아우르며 사상적으로 큰 성과를 냈다”고 평했다.

미야지마 교수는 다산의 저작인 《경세유표(經世遺表)》 속 전제(田制)개혁론을 분석한 글에서 “기존의 다산 전제개혁론들은 서구나 일본의 역사발전 경로를 의식한 ‘근대 지향성’을 지나치게 의식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다산의 개혁론이 토지를 둘러싼 조선의 특수한 상황과 분리될 수는 없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시대의 방향과 일치했으며 선구적인 측면이 많았다고 높게 평가했다.

차이쩐펑 교수는 “다산이 살았던 시대에는 모든 국민이 법률상 권리와 의무를 지닌 ‘공민권’ 개념이 없었지만 다산은 목(牧)과 민(民)을 평등한 개체로 본 것이 분명하다”며 ‘공민권’의 이상을 품었던 인물로 다산을 바라봤다. 반면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는 “다산은 자주지권(自主之權: 선과 악의 상황에 도덕적 주도권을 지니는 것)과 같은 유학 전통에 비춰볼 때 매우 독특한 용어를 사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산은 어디까지나 서학의 내용을 유학 안에 도입했고 근대적 이념 또는 가치를 전통적 가치 체계 속에서 자기 언어로 새롭게 구성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다만 국제 공동연구 성과를 담은 의미는 크지만,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전문 분야를 다룬 난해한 글이 많은 것은 단점이다. 필자별로 논문의 수준이 고르지 않은 점도 눈에 걸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