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열린 사회를 위한 '악마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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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 더불어민주당 의원 minjoolee2020@gmail.com >‘악마의 대변인’이란 말은 천주교에서 성인을 선정할 때 심사위원 중 한 명에게 의도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도록 강제한 데서 연유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테레사 수녀의 성인 여부를 심사할 때 무신론자 한 명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다른 위원의 의견에 반대하게 한 일은 유명하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미리 점검한 변수엔 비교적 잘 대처할 수 있다. 예측된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에서 금리인상 혹은 인하를 결정하는 회의가 있을 때 투자자들은 미리 그 결과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한 전략을 세워 행동하기 때문에,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조직이 변수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 이에 따른 혼란의 가능성은 커진다.조직이 획일화돼 있을 때 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조직 내부의 구성원들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기 마련이고, 이견이 있더라도 이단아로 취급받을 수 있어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집단적 사고에 의한 확증편향이 생긴다. 집단적 확증편향에 빠진 조직은 사전에 짐작하지 못한 사태에서 예측하지 못한 결과, 즉 블랙스완에 빠지게 된다.
악마의 대변인은 확증편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블랙스완 같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이런 맥락에서 투자의 세계에서는 다수결보다 만장일치에 이르는 의견 조율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떠한 투자 사안에 대해 몇 사람이 반대할 때,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반대의견을 들어보고 그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반대자를 설득하는 것이 더욱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벅셔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과 그의 투자 파트너인 부회장 찰리 멍거의 관계가 그렇다. 투자를 결정할 때, 멍거는 자신의 투자 철학이 모두 들어맞을 때까지 ‘No’라고 이야기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버핏은 멍거를 ‘노맨(No Man)’이라 부른다.
악마의 대변인을 두는 의사결정 방식을 적용한 것이 ‘레드팀’이다. 레드팀의 역할은 거래 혹은 게임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레드팀엔 이견을 듣고 이를 수용하는 열린 자세가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쉬웠다면 많은 사람이 훌륭한 의사결정으로 투자에 성공해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레드팀을 인정하는 정신이 필요한 것 같다. 하나의 집단적 확증편향에 몰입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듣고 그 의견이 내포하는 위험을 발견해 이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이 소요될지 모른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한국에는 악마의 대변인과 레드팀 그리고 이들을 인정하는 열린 문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