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미지의 픽션 세계는 도피 공간이자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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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사로잡은 SF 작가…소설집 '행성어 서점' 출간
"평행우주·외계 생명체에 흥미…과학과 예술 공통점 많아" 서로 다른 사람들 간 호흡이 '찰떡'일 때 흔히들 '케미(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 시너지가 있다는 의미다.
창작이 기반인 문학, 실증이 중요한 과학 사이에도 케미가 있을까.
전혀 달라 보이는 두 분야의 접점에서 참신한 결과물을 무섭게 쏟아내는 작가가 있다. 최근 문단에 감각적인 과학소설(SF)로 생기를 불어넣으며 '대세'로 떠오른 김초엽(28)이다.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에게 과학과 예술은 "호기심을 갖고 앎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김초엽은 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뭔가가 텅 빈 백지에서 출현하는 게 아니라 기존 작품, 문헌, 연구 결과를 잘 살피고 제 고유한 해석을 더하는 일이란 점도 비슷해 보여요.
수많은 사람이 쌓아 올린 담장 위에 제 벽돌 하나를 더 올려놓는 셈이죠."
김초엽은 그 벽돌을 지난 3개월간 평균 한 달에 한 번꼴로 쌓았다.
8월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에 이어 지난달에는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사), 이달은 소설집 '행성어 서점'(마음산책)을 잇따라 냈다. 모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직행했다.
특히 MZ세대인 2030과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났다.
'행성어 서점'은 표제작 '행성어 서점'을 포함해 이야기 14편을 엮었다.
지구 밖 제삼지대, 우주의 어느 행성, 현재가 과거가 된 미래 시대 등 배경이 되는 판타지적인 시공간은 마치 지구의 현재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전지적 시점의 공간 같다.
그는 "픽션 세계가 현실을 반영하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지의 세계는)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도피 공간이자 여행지"라고 했다.
"외계 행성과 평행우주, 시공간을 오가는 이야기나 외계 생명체와 지구의 낯선 존재들이 흥미롭죠."
'행성어 서점'에는 인류의 뇌에 통역 모듈을 심어 수만 개 은하 언어가 실시간 통역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모듈 작동을 방해하는 글자로 인쇄된 책을 파는 서점, 뇌에 모듈 시술이 불가능한 손님의 이야기다.
그는 "해외여행 중 서점에 갔던 경험을 반영해 썼다"며 "영미권에서도 서점은 낯선 느낌이었는데 태국, 에티오피아 등 제가 전혀 모르는 언어권 서점은 매우 이질적인 장소였다"고 떠올렸다.
뭔가가 몸에 닿으면 고통스러운 '접촉 증후군' 환자('선인장 끌어안기'), 지구 밖에서 온 초미각을 지닌 식당 주인('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온몸에 버섯이 자라는 라트나 사람들('오염 구역')…. 작가는 탱탱볼처럼 종잡을 수 없이 튀는 '상상 모듈'을 장착한 듯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방식은 차분하고 촘촘하다.
"과학 기사 등에서 인물을 먼저 떠올리기도 하고, 소재나 배경을 먼저 설정하고 어울리는 인물을 찾기도 해요.
평소 게임을 즐겨 게임 퀘스트를 배치하듯 미스터리를 넣는다든지, 게임 시스템 메시지처럼 설명문을 띄우는 식으로 쓰기도 하죠."
이렇게 태어난 이방인들과 낯선 이야기들은 묘하게도 이질감이 없다.
소수자·약자와의 공존, 환경파괴로 인한 폐해, 소통의 단절과 결핍, 디지털 혁명 속 아날로그의 가치…. 동시대를 비틀어보는 듯하다.
비현실적인데도 작품의 정서나 문제의식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가면을 쓴 채 사는 시몬(행성)의 사람들('시몬을 떠나며')에게선 팬데믹으로 마스크로 무장한 우리 모습이 겹친다.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란 텍스트에선 카를 구스타프 융이 얘기한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도 연상된다.
"표정이 정말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스크를 써서 서로 웃어줄 수 없는 우리 모습 같다'는 독자 리뷰를 읽고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 같아 재미있었죠."
그는 "다른 세계에서 현실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다수와 융화하지 못하는 존재, 장애나 '다름'을 포용하는 작가의 일관된 태도는 동정, 연민과는 결이 달라 신선하다.
"주류에만 속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요.
때론 내가 중심에 있고, 다음 순간엔 변두리로 밀려나기도 하는, 복잡한 결을 깊이 들여다봤으면 해요.
또 자신에게 내재한 '외계성', 삶에서 문득 느꼈던 소외의 감각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
불과 몇 년 사이 김초엽은 행성, 우주, 식물 등 몇 단어만으로도 떠올려질 만큼 자신의 문법을 각인시켰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에 당선돼 '딱 1년만 작가로 살아보자'고 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
2018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오늘의작가상, 젊은작가상도 받았다.
학창 시절 과학책을 다독하며 접한 지식이나 과학철학, 과학기술학(STS) 분야 기초적인 이야기들이 밑거름이 됐다.
김초엽은 "과학 공부는 즐거웠지만 대학원에서 연구하며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는 없겠구나' 생각했다"며 "연구에 필요한 끈기나 인내심 같은 자질이 제겐 부족했다"며 웃었다.
그는 다음 달에도 중편소설 '므레모사'를 출간한다.
내년 출간 계획까지 이미 잡혔다.
"스스로를 과신한 나머지 집필 의뢰를 많이 받아들였다"면서 당분간은 채우는 일에 집중할 것 같다고 했다.
'SF 궤도를 이탈한 김초엽'이 궁금하다고 하자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과학소설을 쓰는 일이 매우 즐겁고 제게 가장 잘 맞는 도구라고 느껴요.
하지만 어느 날 떠오른 이야기가 다른 장르이고 그것을 너무 쓰고 싶다면, 당연히 시도할 수 있죠. 실패를 겁내지 않고, 낯설고 과감한 시도와 잘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고 싶어요. "
/연합뉴스
"평행우주·외계 생명체에 흥미…과학과 예술 공통점 많아" 서로 다른 사람들 간 호흡이 '찰떡'일 때 흔히들 '케미(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 시너지가 있다는 의미다.
창작이 기반인 문학, 실증이 중요한 과학 사이에도 케미가 있을까.
전혀 달라 보이는 두 분야의 접점에서 참신한 결과물을 무섭게 쏟아내는 작가가 있다. 최근 문단에 감각적인 과학소설(SF)로 생기를 불어넣으며 '대세'로 떠오른 김초엽(28)이다.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에게 과학과 예술은 "호기심을 갖고 앎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김초엽은 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뭔가가 텅 빈 백지에서 출현하는 게 아니라 기존 작품, 문헌, 연구 결과를 잘 살피고 제 고유한 해석을 더하는 일이란 점도 비슷해 보여요.
수많은 사람이 쌓아 올린 담장 위에 제 벽돌 하나를 더 올려놓는 셈이죠."
김초엽은 그 벽돌을 지난 3개월간 평균 한 달에 한 번꼴로 쌓았다.
8월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에 이어 지난달에는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사), 이달은 소설집 '행성어 서점'(마음산책)을 잇따라 냈다. 모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직행했다.
특히 MZ세대인 2030과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났다.
'행성어 서점'은 표제작 '행성어 서점'을 포함해 이야기 14편을 엮었다.
지구 밖 제삼지대, 우주의 어느 행성, 현재가 과거가 된 미래 시대 등 배경이 되는 판타지적인 시공간은 마치 지구의 현재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전지적 시점의 공간 같다.
그는 "픽션 세계가 현실을 반영하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지의 세계는)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도피 공간이자 여행지"라고 했다.
"외계 행성과 평행우주, 시공간을 오가는 이야기나 외계 생명체와 지구의 낯선 존재들이 흥미롭죠."
'행성어 서점'에는 인류의 뇌에 통역 모듈을 심어 수만 개 은하 언어가 실시간 통역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모듈 작동을 방해하는 글자로 인쇄된 책을 파는 서점, 뇌에 모듈 시술이 불가능한 손님의 이야기다.
그는 "해외여행 중 서점에 갔던 경험을 반영해 썼다"며 "영미권에서도 서점은 낯선 느낌이었는데 태국, 에티오피아 등 제가 전혀 모르는 언어권 서점은 매우 이질적인 장소였다"고 떠올렸다.
뭔가가 몸에 닿으면 고통스러운 '접촉 증후군' 환자('선인장 끌어안기'), 지구 밖에서 온 초미각을 지닌 식당 주인('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온몸에 버섯이 자라는 라트나 사람들('오염 구역')…. 작가는 탱탱볼처럼 종잡을 수 없이 튀는 '상상 모듈'을 장착한 듯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방식은 차분하고 촘촘하다.
"과학 기사 등에서 인물을 먼저 떠올리기도 하고, 소재나 배경을 먼저 설정하고 어울리는 인물을 찾기도 해요.
평소 게임을 즐겨 게임 퀘스트를 배치하듯 미스터리를 넣는다든지, 게임 시스템 메시지처럼 설명문을 띄우는 식으로 쓰기도 하죠."
이렇게 태어난 이방인들과 낯선 이야기들은 묘하게도 이질감이 없다.
소수자·약자와의 공존, 환경파괴로 인한 폐해, 소통의 단절과 결핍, 디지털 혁명 속 아날로그의 가치…. 동시대를 비틀어보는 듯하다.
비현실적인데도 작품의 정서나 문제의식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가면을 쓴 채 사는 시몬(행성)의 사람들('시몬을 떠나며')에게선 팬데믹으로 마스크로 무장한 우리 모습이 겹친다.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란 텍스트에선 카를 구스타프 융이 얘기한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도 연상된다.
"표정이 정말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스크를 써서 서로 웃어줄 수 없는 우리 모습 같다'는 독자 리뷰를 읽고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 같아 재미있었죠."
그는 "다른 세계에서 현실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다수와 융화하지 못하는 존재, 장애나 '다름'을 포용하는 작가의 일관된 태도는 동정, 연민과는 결이 달라 신선하다.
"주류에만 속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요.
때론 내가 중심에 있고, 다음 순간엔 변두리로 밀려나기도 하는, 복잡한 결을 깊이 들여다봤으면 해요.
또 자신에게 내재한 '외계성', 삶에서 문득 느꼈던 소외의 감각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
불과 몇 년 사이 김초엽은 행성, 우주, 식물 등 몇 단어만으로도 떠올려질 만큼 자신의 문법을 각인시켰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에 당선돼 '딱 1년만 작가로 살아보자'고 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
2018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오늘의작가상, 젊은작가상도 받았다.
학창 시절 과학책을 다독하며 접한 지식이나 과학철학, 과학기술학(STS) 분야 기초적인 이야기들이 밑거름이 됐다.
김초엽은 "과학 공부는 즐거웠지만 대학원에서 연구하며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는 없겠구나' 생각했다"며 "연구에 필요한 끈기나 인내심 같은 자질이 제겐 부족했다"며 웃었다.
그는 다음 달에도 중편소설 '므레모사'를 출간한다.
내년 출간 계획까지 이미 잡혔다.
"스스로를 과신한 나머지 집필 의뢰를 많이 받아들였다"면서 당분간은 채우는 일에 집중할 것 같다고 했다.
'SF 궤도를 이탈한 김초엽'이 궁금하다고 하자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과학소설을 쓰는 일이 매우 즐겁고 제게 가장 잘 맞는 도구라고 느껴요.
하지만 어느 날 떠오른 이야기가 다른 장르이고 그것을 너무 쓰고 싶다면, 당연히 시도할 수 있죠. 실패를 겁내지 않고, 낯설고 과감한 시도와 잘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고 싶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