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놀자] 미래를 바꿀 양자컴퓨터…'포논'에 달렸다

과학 이야기
(72) 포논, 넌 누구니?
"열이 소리라고? 말이 돼?"

최근 기후변화로 한국에서 가을 날씨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보도가 있다. 다른 나라에선 이상기후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반도체 성능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총칼 없는 5㎚(1㎚=10억분의 1m) 이하 선폭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기후변화와 반도체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열과 온도에 의해 생기는 문제로 귀결된다.
IBM의 양자컴퓨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열과 온도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막상 사람들에게 열과 온도를 정의하거나 설명해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당황하며 대답하지 못한다. 물리학적으로 온도에 대한 정의는 ‘입자의 운동 에너지’를 엔트로피 통계치로 미분해 얻는 값이다. 그럼 소리의 정의는 어떤가. 소리는 음원으로부터 방사되는 압력파가 매질 내에서 전달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매질의 ‘입자들이 진동하는 과정’에서 주변 밀도보다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달된다. 그럼 아래와 같은 식이 성립한다.

온도 = 입자의 운동 에너지 = 입자의 진동 에너지 = 소리

어? 그럼 열이 소리와 같아지네. 말이 되나?

열과 소리의 최소 단위 포논

‘포논(phonon)’을 알려면 양자역학을 이해해야 한다. 양자역학의 태동은 빛을 이해하면서 생겼으며, 고전역학에서 현대역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양자역학은 빛의 가장 작은 단위인 ‘포톤(photon)’을 설명하기 위해 태동했는데, 이와 상보적인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포논’의 개념이 생겼다. 1905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의 실험으로 최소의 ‘빛 알갱이(quanta of light)’가 설명됐다. 1920년 길버트 N 루이스에 의해서 포톤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포논은 1930년 소련의 과학자 이고르 탐에 의해 처음으로 설명됐다. 이어 그의 동료 자콥 프랜켈에 의해 1932년 처음으로 명명됐다.

포논은 물체의 결정 격자에서 진동을 양자화한 최소의 준입자로 정의된다. 즉, 열과 소리의 가장 작은 알갱이를 나타낸다. 이 같은 포논은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다. 대표적으로 포톤처럼 정수배로 존재할 수 있는 ‘보존(boson)’ 입자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입자는 ‘페르미온(fermion)’과 ‘보존(boson)’으로 나눌 수 있다. 페르미온은 각 입자의 스핀 상태가 1/2의 정수배 (1/2, 3/2, …)인 입자로, 같은 스핀을 가진 입자는 같은 에너지 상태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따른다. 대표적으로 양성자, 중성자, 전자와 같은 입자가 페르미온 입자들이다. 이는 물질의 모양과 상호작용, 유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각 물체를 만질 수 있게 해준다. 반면, ‘보존(boson)’은 스핀이 0, 1, 2, …의 정수배를 가지는 입자로, 대체로 물리적 힘이나 에너지의 매개체다. 가장 대표적인 보존 입자가 포톤으로, 같은 에너지 상태에 여러 포톤이 존재할 수 있어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레이저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포논도 보존 입자로, 힘이나 에너지의 상호작용을 매개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자 두 개에서 포논이 매개로 초전도 현상을 발생시킨다.

미세 공진기를 통한 포논 측정

가장 작은 단위의 진동인 포논을 측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포논을 측정하는 데 아주 예민한 센서가 필요하다. 온도와 열을 차단할 수 있으며 극저온의 환경을 유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 크기의 구조물을 정교하게 제작할 수 있는 반도체 가공 기술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센서를 진공으로 고립시키고 극저온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실제로 포논을 측정하고 더불어 포논을 통한 다양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장치들이 개발됐다.미국 UC샌타바버라의 J 마티니스·A 클래랜드 교수 연구팀은 2010년 처음으로 미세 공진기를 제작하고 희석냉동기를 통해 극저온인 25mK의 상태에서 가장 작은 진동을 가지는 포논을 측정했다. 이는 사이언스지에서 ‘2010 Breakthrough of the Year’로 소개됐고, 21세기를 바꿀 ‘Insights of the Decade’로도 선정됐다. 이후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활용, 다양한 초미세 공진기를 제작해 포논의 다양한 성질을 밝혀냈다. 광학공명기(optomechanical resonator)를 통해 포논과 포톤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원리를 이용, 레이저를 통해 초미세 공진기를 극저온으로 냉동할 수 있는 실험 결과가 2011년 네이처지에 발표됐다. 포논이 보존 입자라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이는 논문이 2015년 네이처지에 발표됐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연구자가 포논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구할 포논

이처럼 많은 과학자가 포논에 관심을 보이고 연구하는 건 포논이 미래를 바꿀 양자 컴퓨터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면 기존 컴퓨터가 해결하지 못하는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반도체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열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를 이해하고 이를 조절하는 트랜지스터의 개발을 통해 컴퓨터가 발명됐듯이, 포논을 이해하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소자를 통해 개발될 양자 컴퓨터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많은 기대가 된다.

√ 기억해주세요

이병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포논은 포톤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적 현상을 가지는 입자다. 포톤과 마찬가지로 포논은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며, 양자역학에서 보이는 포톤과 성질이 비슷하다. 그중 포논도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 성질을 활용해 양자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양자얽힘이란 상호작용하는 양자 상태의 물체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의 상태가 변하면 즉시 다른 한쪽도 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유령과 같이 으스스한 원거리 작용”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양자얽힘이 거시적인 세계에서도 증명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