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가 까먹은 '사회 신뢰' 기업들이 되살리는 현실

중국의 수출 통제에 나라 물류망이 휘청거린 요소수 사태는 정부의 무능을 새삼 확인시켰다. “3개월은 거뜬히 견딜 수 있는 물량을 조기확보했다”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나서서 자화자찬했지만 허둥대는 모습은 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넘어 명백한 직무유기로 볼 대목이 넘쳤다.

큰 혼란을 부르고도 언론을 탓하고 정부 대응을 과대포장하는 데 치중하는 모습도 실망스럽다. 공군수송기로 호주에서 요소수를 김해공항으로 들여와 하역 장면까지 공개했지만 ‘쇼’에 가까웠다. ‘사태 이전’ 가격으로 2700만원어치에 불과한 물량을 들여오는 데 왕복 항공유 비용만 1억원 가까이 썼다. 국민의 어려움까지 눈속임 대상으로 보는 듯해 자괴감이 든다.정부 무능과는 정반대로 전 세계에 뻗은 기업들의 네트워크와 순발력이 든든한 버팀목임을 확인한 게 그나마 위안이다. 정부가 생색내듯 자랑한 중국 베트남 호주 등지에서의 요소수 확보에는 전부 기업들의 노력이 배어 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요소 1만8700t에는 LX인터내셔널이 확보한 요소 1100t이 포함돼 있다. 베트남에서는 S사가 요소 5000t을 추가 확보했고, 호주에서 들여온 요소수도 현대글로비스 호주법인이 거래처를 통해 조달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전 세계 여섯 나라에서 차량용 요소수 3개월분 원료를 대량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일본 내 인맥을 동원해 직접 질 좋은 원료확보에 나섰다.

기업들은 앞서 코로나 위기 때도 마스크·백신 확보전의 최일선에서 맹활약했다. 삼성은 전 세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MB필터) 수입기간을 크게 단축시켰고, 백신 조기도입에도 일조했다. 현대자동차는 마스크 자체 생산체제를 구축해 지역사회를 도왔고, LG는 백신예약 시스템이 먹통이 됐을 때 LG CNS를 긴급 투입해 안정화에 기여했다.

정부발 신뢰 추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긴급 수급조정조치’를 발표하고 사태가 진정된 것처럼 호도하지만 현장 혼란은 여전하다. 요소수 유일 판매처로 지정된 주유소에서는 배정물량이 없어 화물차량의 긴 행렬이 그대로다. 수급안정화 조치가 아니라 시장만 통제하는 격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마그네슘 산화텅스텐 수산화리튬 등 ‘제2의 요소수 사태’ 후보가 수두룩하다. 정부는 기업들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관리만 잘해도 중간은 할 수 있다. 필요할 때만 군기잡듯 다그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기업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