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발목잡힌 車산업…생산·내수 모두 '흐림'

10월 자동차 생산량 26만대
지난해보다 21.6%나 감소

내수는 '없어서 못파는' 상황
車산업 뿌리 부품업계 고사 직전
사진=연합뉴스
한국 자동차산업이 ‘반도체발(發) 위기’를 겪고 있다. 반도체가 없어서 차량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평가가 많지만, 업계는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분기까지는 반도체 공급난을 잘 넘겨왔지만, 3분기에는 꽤 큰 타격을 입었다”며 “연말에 반도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언제 다시 해외 반도체 공장이 멈추는 일이 발생할지 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3분기부터 생산량 뚝 떨어져

15일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26만3723대다. 지난해 10월(33만6283대)과 비교하면 21.6%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10월(35만1409대)에 비하면 25.0% 감소했다.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올 상반기에 3월 빼고는 매월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하지만 3분기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8월(0.7% 증가)을 제외하면 매월 지난해 같은 달보다 생산량이 줄었다. 9월 감소폭은 33.0%에 달했다. 그 결과 올 1~10월 누적 생산량도 284만245대로 전년 동기(288만5392대) 대비 1.6% 떨어졌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마지노선’인 연간 400만 대 생산은 올해도 달성하기 힘들 전망이다. 연간 400만 대 생산은 2018년을 마지막으로 3년 연속 실패했다. 올해는 300만 대 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체별로는 한국GM과 쌍용자동차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GM의 생산은 31.3%, 쌍용차는 23.9% 감소했다. 다행히 현대자동차(0.3% 증가)와 기아(5.7% 증가)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10월 누적 기준이다. 르노삼성도 전년 동기 대비 생산량이 3.2% 주는 데 그쳤다.

국내 판매 1위 모델은 그랜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자동차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한 내수도 휘청이고 있다. 차량 수요는 많지만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계속되면서다. 10월 한국 자동차업체들의 국내 판매량은 10만710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3만5809대) 대비 21.1% 줄었다. 올 1~10월 누적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0% 감소했다. 10월엔 전 업체의 내수 판매가 지난해 10월보다 감소했다. 그나마 선방했다는 현대차와 기아도 각각 12.0%, 21.2% 줄었다. 한국GM(-64.7%)과 쌍용차(-56.9%), 르노삼성(-30.0%) 등의 감소폭은 더 컸다.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현대차 그랜저다. 지난달 9448대가 팔렸다. 1~10월 누적 판매량은 7만4426대로, 올해 최다 판매 모델에 오를 것이 유력하다. 다만 ‘빅 히트 모델’의 기준이 되는 연 10만 대 판매를 달성할지는 불투명하다.

판매 2위는 현대차 쏘나타(6136대), 3위는 제네시스의 G80(6119대)였다. 쏘렌토(5363대)와 스포티지(4258대), K8(4181대) 등 기아 모델이 4~6위를 차지했다. 현대차의 첫 전용 플랫폼 전기차 아이오닉 5는 지난달 3783대 팔렸고,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생산하는 현대차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는 2506대 판매됐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부 모델은 1년 가까이 기다려야 차량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생산이 지연된 상황”이라며 “당분간 자동차업계의 가장 큰 변수는 반도체 수급 문제”라고 말했다.

1차 협력사 수십 곳 문 닫아

자동차산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부품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지난 몇 년간 경영 사정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반도체 공급난 등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올 들어 이미 수십 개의 완성차 1차 협력사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1차 협력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2, 3차 협력사의 폐업 현황은 파악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 7개 자동차산업 관련 단체 대표들이 지난 12일 김부겸 국무총리를 찾아가 “부품업계가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에 내몰렸다”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신차 개발 일정에 맞춰 대규모 투자를 해놨는데 완성차 생산이 지연되는 바람에 많은 부품업체들이 자금난에 빠졌다”며 “금융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