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찬의 비욘드 브랜드] 골프공 업계 '1강' 타이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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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로스트 볼'이라도 이 브랜드 로고가 붙으면 가격이 더 비쌉니다. 잘 몰라도 성능은 확실한 것 같은 브랜드. 그러나 막상 사려면 비싼 가격에 지갑 열기 망설이게 만드는 브랜드. 골프공 업계 '1강' 타이틀리스트 이야기입니다.
멋있는 필기체 때문인지 타이틀리스트 제품들은 뭔가 '클래식'한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타이틀리스트의 주력 제품인 'Pro V1'은 2000년생입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셈인데, 어떻게 지금과 같은 '오라(Aura)'를 지니게 됐을까요.사실 골프공은 엄청나게 까다로운 규격 안에서 '룰'을 지키며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골프 규칙을 제정하는 영국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인정하는 공인구 직경은 42.67㎜를 넘으면 안 되고 무게는 45.93g 이하로 제한되고요. 속도도 23.8도 환경에서 초당 250피트 이하(2% 오차범위 허용)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기에 길어서 적지 못한 규격들이 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틀 안에서 대등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공들의 성능 차이를 아마추어가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물론 그 안에서도 기술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아마추어들에겐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만큼이나 어려운 일일테죠.
결국 골프공 관련 특허만 800개가 넘는 타이틀리스트로선 주 고객층이면서도 성능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우리 공이 좋은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맛이 비슷해도 똑같은 블랙 커피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커피라는 것을 강조해야 했던 것이죠.이 때 타이틀리스트가 쓴 마케팅 방법이 '피라미드 영향'이라는 뜻의 'POI'(Pyramid of Influence) 전략입니다.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타이틀리스트 공을 쓰게 만들고 프로 투어에서의 높은 사용률이 아마추어 골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작전이죠. 이를 통해 타이틀리스트는 '잘 치는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이니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인식을 소비자들 머릿 속에 심었습니다.때문에 타이틀리스트는 꼭 광고에서 '시장 점유율'이 아닌 '투어 사용률'을 강조합니다. 타이틀리스트가 항상 대회 중계 중간 광고에 '이번 대회 Pro V1·Pro V1x 사용률'을 꼭 넣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수들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 관여하고요. 타이틀리스트도 선수들의 피드백을 적극 제품 개발에 반영합니다.
2000년에 Pro V1을 데뷔시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이틀리스트는 Pro V1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앞서 2000년 10월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인베시스 클래식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공을 제공했습니다. 당시 47명의 선수가 Pro V1으로 공을 바꾼 뒤 대회에 출전했고요. 시즌 중간에 용품을 바꾼다는 건 사실 '과감'을 넘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데요. 타이틀리스트는 밝히지 않았지만, 선수들을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죠.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프로 골프대회에서 60% 이상의 사용률을 뽐내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먼저 찾아 쓰는 공이 된 것입니다.
잘 알려졌듯 타이틀리스트는 아쿠쉬네트 컴퍼니(Acushnet Company)가 소유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아쿠쉬네트 울타리 안에는 타이틀리스트 외에도 풋조이가 있죠. 약 100년 전인 1910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작은 도시 아쿠쉬네트 시(市)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골프 기업 중 시가총액 1위(40억8400만달러·약 4조8096억원)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2011년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아쿠쉬네트 컴퍼니를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현재 윤 회장은 아쿠쉬네트 컴퍼니 회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아쿠쉬네트는 원래 고무 관련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골프 산업에 발을 담군 건 1932년부터입니다. 창립자인 필 영(Phil Young)은 꽤 수준급의 골퍼였는데 잘 친 공이 홀에 들어가지 않자 공 성능을 의심했다고 합니다. 치과 의사 친구 사무실에 있던 X-레이로 공을 찍어봤는데, 골프공 안에 있는 코어가 일정하지 않고 모두 제각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필 영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동문이자 고무 전문가인 프레드 보머를 초빙해 골프공 개발에 들어갔고 1935년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필 영은 타이틀리스트를 출시한 뒤 프로 선수들에게 공 사용을 적극 권했고요. 필 영이 썼던 마케팅 전략이 오늘날 아쿠쉬네트가 하는 활동들의 근간이 된 셈입니다.
이후 프로 투어와 함께 성장을 거듭한 타이틀리스트는 1990년대 골프계의 살아 있는 장인들을 연달아 영입하면서 방점을 찍습니다. 1994년 '퍼터 명장' 스카티 카메론(Scotty Cameron)을 영입했고요. 1995년 처음 출시된 스카티카메론 퍼터는 이듬해인 1996년 PGA투어 세인트 주드 클래식 대회부터 사용률 1위에 등극합니다. 같은 해 '웨지 명장' 밥 보키(Bob Vokey)까지 타이틀리스트에 합류하면서 '드림팀'이 완성됩니다.
참고로 타이틀리스트의 로고는 필 영의 비서가 만들었습니다. 그의 비서 헬렌 로빈슨이 필기체를 잘 썼다고 하네요. 회사 설립 당시 필 영이 부른대로 브랜드 명을 로빈슨이 종이에 받아 적었는데, 이를 그대로 로고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타이틀리스트(Titleist)는 영문으로 우승 등을 뜻하는 'Title'에 사람을 의미하는 '~ist'를 붙여 만들었습니다. '타이틀을 거머쥔 자'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멋있는 필기체 때문인지 타이틀리스트 제품들은 뭔가 '클래식'한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타이틀리스트의 주력 제품인 'Pro V1'은 2000년생입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셈인데, 어떻게 지금과 같은 '오라(Aura)'를 지니게 됐을까요.사실 골프공은 엄청나게 까다로운 규격 안에서 '룰'을 지키며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골프 규칙을 제정하는 영국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인정하는 공인구 직경은 42.67㎜를 넘으면 안 되고 무게는 45.93g 이하로 제한되고요. 속도도 23.8도 환경에서 초당 250피트 이하(2% 오차범위 허용)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기에 길어서 적지 못한 규격들이 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틀 안에서 대등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공들의 성능 차이를 아마추어가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물론 그 안에서도 기술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아마추어들에겐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만큼이나 어려운 일일테죠.
결국 골프공 관련 특허만 800개가 넘는 타이틀리스트로선 주 고객층이면서도 성능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우리 공이 좋은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맛이 비슷해도 똑같은 블랙 커피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커피라는 것을 강조해야 했던 것이죠.이 때 타이틀리스트가 쓴 마케팅 방법이 '피라미드 영향'이라는 뜻의 'POI'(Pyramid of Influence) 전략입니다.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타이틀리스트 공을 쓰게 만들고 프로 투어에서의 높은 사용률이 아마추어 골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작전이죠. 이를 통해 타이틀리스트는 '잘 치는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이니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인식을 소비자들 머릿 속에 심었습니다.때문에 타이틀리스트는 꼭 광고에서 '시장 점유율'이 아닌 '투어 사용률'을 강조합니다. 타이틀리스트가 항상 대회 중계 중간 광고에 '이번 대회 Pro V1·Pro V1x 사용률'을 꼭 넣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수들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 관여하고요. 타이틀리스트도 선수들의 피드백을 적극 제품 개발에 반영합니다.
2000년에 Pro V1을 데뷔시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이틀리스트는 Pro V1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앞서 2000년 10월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인베시스 클래식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공을 제공했습니다. 당시 47명의 선수가 Pro V1으로 공을 바꾼 뒤 대회에 출전했고요. 시즌 중간에 용품을 바꾼다는 건 사실 '과감'을 넘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데요. 타이틀리스트는 밝히지 않았지만, 선수들을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죠.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프로 골프대회에서 60% 이상의 사용률을 뽐내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먼저 찾아 쓰는 공이 된 것입니다.
잘 알려졌듯 타이틀리스트는 아쿠쉬네트 컴퍼니(Acushnet Company)가 소유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아쿠쉬네트 울타리 안에는 타이틀리스트 외에도 풋조이가 있죠. 약 100년 전인 1910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작은 도시 아쿠쉬네트 시(市)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골프 기업 중 시가총액 1위(40억8400만달러·약 4조8096억원)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2011년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아쿠쉬네트 컴퍼니를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현재 윤 회장은 아쿠쉬네트 컴퍼니 회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아쿠쉬네트는 원래 고무 관련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골프 산업에 발을 담군 건 1932년부터입니다. 창립자인 필 영(Phil Young)은 꽤 수준급의 골퍼였는데 잘 친 공이 홀에 들어가지 않자 공 성능을 의심했다고 합니다. 치과 의사 친구 사무실에 있던 X-레이로 공을 찍어봤는데, 골프공 안에 있는 코어가 일정하지 않고 모두 제각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필 영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동문이자 고무 전문가인 프레드 보머를 초빙해 골프공 개발에 들어갔고 1935년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필 영은 타이틀리스트를 출시한 뒤 프로 선수들에게 공 사용을 적극 권했고요. 필 영이 썼던 마케팅 전략이 오늘날 아쿠쉬네트가 하는 활동들의 근간이 된 셈입니다.
이후 프로 투어와 함께 성장을 거듭한 타이틀리스트는 1990년대 골프계의 살아 있는 장인들을 연달아 영입하면서 방점을 찍습니다. 1994년 '퍼터 명장' 스카티 카메론(Scotty Cameron)을 영입했고요. 1995년 처음 출시된 스카티카메론 퍼터는 이듬해인 1996년 PGA투어 세인트 주드 클래식 대회부터 사용률 1위에 등극합니다. 같은 해 '웨지 명장' 밥 보키(Bob Vokey)까지 타이틀리스트에 합류하면서 '드림팀'이 완성됩니다.
참고로 타이틀리스트의 로고는 필 영의 비서가 만들었습니다. 그의 비서 헬렌 로빈슨이 필기체를 잘 썼다고 하네요. 회사 설립 당시 필 영이 부른대로 브랜드 명을 로빈슨이 종이에 받아 적었는데, 이를 그대로 로고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타이틀리스트(Titleist)는 영문으로 우승 등을 뜻하는 'Title'에 사람을 의미하는 '~ist'를 붙여 만들었습니다. '타이틀을 거머쥔 자'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