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성희롱' 위기 블리자드, CEO가 피해 신고 은폐"

"성과 위주 마초 문화가 여성에 대한 폭력 방치"

미국 거대 게임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이하 블리자드)가 오랫동안 지속된 직장 내 성범죄·성차별 등 추문에 휩싸인 가운데,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직장 내 성폭행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리자드 CEO 보비 코틱이 2018년 여직원이 직장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를 이사회 등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회사는 게임 프로젝트에 따라 여러 스튜디오를 나눠 운영하는데, 보도에 따르면 유명 시리즈 '콜 오브 듀티' 등 개발을 담당한 '슬레지해머' 스튜디오의 한 여직원이 2018년 변호인을 통해 코틱 CEO에 이메일을 보내 2016년과 2017년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상사가 사무실에서 술을 억지로 많이 먹여 정신을 잃게 하고선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의 상사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일어나지 않았고, 회사 측은 피해자와 법정 밖에서 합의만 하려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코틱 CEO는 이사회와 다른 임원들에게 자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별일 아닌 것으로 알았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WSJ은 코틱 CEO가 회사 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이사회 등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언과 문건이 있다고 보도했다. 오히려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쫓겨난 직원은 우수한 성과를 낸 것처럼 포장되기도 했고, 남은 직원들은 그에 대해 침묵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블리자드는 최근 수개월 간 직장 내 성폭행과 성추문, 여성 차별 등으로 인해 각종 정부 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정고용주택국(DFEH)은 7월 액티비전이 성차별적인 남성 위주 문화와 사내 성희롱 등을 방치해 주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소송 제기 이후 500건이 넘는 사내 괴롭힘과 성폭행, 성차별 등의 피해 사례가 회사 측에 접수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블리자드가 사내에서 벌어진 성추문 등의 정보를 고의로 숨겼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터져 나온 블리자드의 각종 추문은 오래된 '마초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WSJ은 이를 '프랫 보이'(Frat boy) 직장 문화라고 설명했다.

프랫 보이는 '남성성이 강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남학생'이라는 뜻이다.

회사가 회식에서 노출이 심한 무용수의 폴댄스를 관람하거나 여직원들에게 많은 양의 술을 억지로 먹이거나 패거리로 스트립바에 몰려가기도 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여기에는 성과만 추구하는 회사 문화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회사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등 세계적 흥행작을 내놓으며 지금의 대형 게임사가 됐다. 회사의 시가총액은 10년 전 140억 달러(약 16조5천억원)에서 현재 515억 달러(약 63조8천억원)로 4배가량 부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