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감염병 관리 능력이 국가의 미래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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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글레이저·데이비드 커틀러 《도시의 생존》《도시의 승리》로 유명한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보건경제학자 데이비드 커틀러가 신작 《도시의 생존(Survival of the City)》에서 코로나19 사태를 화두로 머리를 맞댔다.
NATO 같은 감염병 관리기구 창설 필요
아폴로 프로젝트 버금가는 예산 투입을
2만여 년 전 인류가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종전까지 야생이던 동물들과의 동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가축은 감염병의 단초였다. 이후 본격적인 위협은 도시의 발달로부터 나왔다. 도시는 농촌과 달리 기본적으로 밀집된 거주를 기본으로 하며, 생산 자체보다는 이동과 교역 중심지로서 기능이 주를 이룬다. 밀집과 교역이라는 요인은 도시를 번영시키는 선기능을 수행했지만, 한편으로는 감염병 확산을 촉진하는 악역을 맡았다.고대 제국의 중심 도시들은 한결같이 세계화의 허브이자 전초기지였지만 동시에 세균과 바이러스를 나르기도 했다. 기원전 430년께 아테네는 아프리카 북부에서 옮겨온 역병으로 시민들이 죽어 나갔고 끝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했다. 로마제국도 주기적으로 역병 유행에 시달렸는데, 특히 서기 541년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중앙아시아로부터 치명적인 흑사병이 유입되면서 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18세기 노예무역선을 통해 아프리카로부터 유입된 황열병은 영국과 미국 동부 지역을 강타했고, 스페인은 남미에 천연두를 전파시켜 아스테카 문명을 몰락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서구 도시의 하수 처리 시스템이 개선되고, 20세기에 식량 대량생산과 항생제 개발이 이뤄지면서 인류는 이런 문제에서 얼핏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의 주기적인 침입은 그치지 않았다. 21세기에는 사스, 메르스, 에볼라에 연타를 맞았고 급기야 코로나19라는 강펀치 앞에 글로벌 경제가 힘없이 무너졌다.이 달갑지 않은 침입자는 도시의 어두운 그늘, 예컨대 소득 양극화와 교육 격차로 갈라진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언제나 비대칭으로 공격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감염병이 대개 인사이더를 피해서 아웃사이더 계층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이다. 인사이더가 누리는 우월한 주거, 보건, 교육 환경은 감염병 앞에서 강력한 차단 장치 역할을 했지만, 아웃사이더들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도시에서는 부(富)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조차 불평등 확산에 기름을 붓는다. 거리두기 하에서 비대면이 가능한 지식노동자와 공무원은 살아남겠지만 대면으로 살아가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감염병 대응은 단순히 보건 문제를 넘어 도시 기능의 정상화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코로나 이후를 겨냥한 두 가지 특징적인 정책 제안을 내놨다.
첫째, 미국 정부의 의료 예산 편성 및 그 운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져야 하는데, 그동안 암, 비만, 심장병 등 만성병 및 개인 건강에 초점을 둔 기존 의료보험과 정부의 의학 연구개발 예산을 감염병과 공공건강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재편하라는 것이다. 감염병이 닥친 뒤에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피해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경험했듯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그만큼 충분한 예산을 써서 대비할 가치가 있다. 저자는 미국이 1960년대 인류를 달에 착륙시키기 위해 추진한 아폴로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결의로 감염병 정복 프로젝트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둘째, 2차 대전 이후 설립돼 군사방어시스템으로서 성공적으로 작동해 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벤치마킹한 새로운 세계 감염병 관리조약기구를 창설할 것을 건의했다. 이 새로운 국제기구는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는 국가 간 정보 및 정책 공유, 구속력 있는 국가 간 여행 및 이동 통제 정책 수립, 그리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가 간 투자와 협력을 이끌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보다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이 책은 바이러스 확산 통에 혼란과 무능이 드러날 대로 드러난 미국 정부를 염두에 두고 저술됐지만, 정작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에 이를 투영해 보면 코로나 이후 제도 혁신을 구상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기껏 피해구제 지원금 논의 정도로만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