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조짐…유럽 가스값 또 천정 뚫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재침공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동유럽 전쟁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경제 및 증시에 작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가뜩이나 움츠러든 무역이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도 급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은 또 다시 급등세를 타고 있다.

동유럽 전쟁 가능성 왜 불거졌나


동유럽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투입하고 있다. 이에 맞서 EU(유럽연합)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방어 능력을 강화하면서 무력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이미 내전이 한창이다.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자와 정부군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독일 마셜펀드의 폴란드 바르샤바 사무소를 운영하는 미할 바라노스키 국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충돌 위협이 매우 높은 상태”라며 “전쟁 직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주 EU측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에서 벌어진 난민 사태를 놓고서도 서방과 러시아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벨라루스 측이 폴란드 국경을 통해 난민을 EU 지역으로 대거 보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그 배후에 유럽의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려는 러시아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폴란드 국경에는 이라크 등 중동 출신 난민 5000여 명이 모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런 보도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무역(50%) 및 에너지(가스 99%, 원유 80%)의 러시아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다. 나머지 대외 무역의 30%를 EU에 기대왔지만 지난 5월 EU 국가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킨 뒤 서방의 경제 제재를 당했다. EU가 추가 제재를 경고하자 인접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으로 난민을 유입시키는 간접 보복에 나섰다는 게 서방의 의심이다.
벨라루스와 유럽연합(EU) 일원인 폴란드간 국경 분쟁을 빌미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인 티모시 애쉬 블루베이자산운용 수석전략가는 “러시아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며 “서방 세계는 약하고 분열돼 있는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럴 만한 동기와 기회, 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 해체 직전까지 소비에트연방 일원이었다.


군사 긴장 높아지는 우크라이나 국경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서남부 국경 지역인 브랸스키와 쿠르시키에는 러시아군 제4전차사단이 이동해 있다. 여기에 집결한 병력만 9만여 명이다. 러시아는 지난 4월 군사 훈련을 빌미로 10만여 명을 투입해 긴장을 높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 친러시아 성향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러시아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배치해달라고 요청했다.난민의 월경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폴란드는 1만5000여 명의 병력을 벨라루스와의 국경에 투입했다.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기갑 전력과 대공 무기를 추가 배치했다.

리투아니아는 벨라루스와의 국경 지대 550㎞ 구간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EU 역시 국경경비기관인 프론텍스 인력을 파견했다. 또 또 난민 사태에 책임 있는 벨라루스 내 인물과 단체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

영국은 10여 명의 군인을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에 파견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에 600여 명의 특수군 파견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역시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의 미 공군 기지에서 고공 정찰기 U-2S를 띄워 흑해 북서부 상공과 우크라이나 영공 감시를 하고 있다.

앞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터키, 루마니아 4국의 군함 7척은 우크라이나 인근 흑해 공해상에서 연합 해상 훈련을 벌였다. 우크라이나 외에는 모두 NATO 국가다.

이 훈련 직후 루마니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접하고 있는 흑해 위기 상황에서 NATO군의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한 훈련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군사 활동에 대해 투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분쟁 도화선?…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충돌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국경검문소에선 결국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16일(현지시간) 중동 지역 출신의 난민과 폴란드 보안요원들이 강하게 부딪혔다.

벨라루스 수사당국은 “폴란드 국경수비대와 군인들의 행동은 인류 안전에 대한 범죄, 인종·민족적 특성과 관련해 행해지는 대규모 잔학 행위”라고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원 등이 월경을 시도하는 난민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폭력을 사용했다는 게 벨라루스 당국의 얘기다.

폴란드 보안요원들은 최루가스가 들어간 물대포를 사용해 일부 난민의 눈에 화학적 화상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측 설명은 다르다. 난민들이 이날 하루 동안 160여 회의 불법 월경을 시도하고 일부는 돌과 보도블록을 던지는 등 폭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충돌 과정에서 9명의 국경수비대원이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벨라루스 국경수비대는 난민에게 섬광탄을 제공하며 폭력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폴란드 측의 강력한 저지로 월경이 무산되자 검문소 인근에 머물던 일부 난민은 벨라루스 측이 마련한 수용소와 임시 난민센터로 복귀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검문소 근처에 텐트를 설치한 채 대치 중이다.

이날 현재 약 2000여 명이 충돌이 발생했던 국경 인근에 머물고 있다고 벨라루스 당국은 설명했다.


유럽 에너지 가격, 천정 뚫나


EU와 러시아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유럽 내 에너지 가격이 또 급등했다. 독일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송하기 위한 해저 가스관 사업 ‘노드스트림2’에 대한 승인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독일 에너지 당국은 이날 “노드스트림2의 운영 기관이 독일이 아닌 스위스에 위치하고 있어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기관이 독일 법에 따라 구성됐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승인 절차를 재개할 것이란 게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러시아의 유럽 내 천연가스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면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또 다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제공
노드스트림2는 러시아 북서부에서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 북부로 이어지는 1230㎞ 길이의 해저 가스관이다. 2010년 노스스트림1이 가동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 바로 옆에 노드스트림2 건설 공사를 추진해 지난 9월 완공했다.

러시아는 독일 정부가 가동 승인을 내주는 즉시 유럽 내 가스 공급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이 가스관의 연간 수송량은 550억㎥로,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4분에 1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은 난처한 입장이다. 러시아산 에너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쪽은 오히려 독일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비용을 투입한 노드스트림2의 완공을 고대해온 배경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독일의 노드스트림2 승인 중단을 환영한다”며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독일이 우크라이나 편에 서거나 노드스트림2 사업을 승인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압박했다.

사실 독일만 곤란한 건 아니다. 독일의 노트스트롬2 승인 절차 중단이 발표되자 이날 유럽 내 가스 가격은 17% 급등했다. 난방 수요가 높은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대란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져서다. 공급 부족 속에서 조만간 종전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금도 유럽 내 천연가스 공급량의 40%를 책임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할 경우 유럽뿐만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또 다시 급등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원인 러시아는 세계 6위(6.4%)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확인된 매장량 기준으로 천연가스는 세계 2위, 석탄은 3위 규모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