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빚' 文 정부, 인플레이션 잡을 마음 있나? [김익환의 BOK워치]

"물가 치솟으면, 정부 실질 빚부담 줄어"
빚덩이 정부, 인플레이션 되레 반겨
"금리 속도조절론 배후도 정부" 음모론도

韓 국가부채비율 낮아 그럴 이유 없다?
"기축통화국과 비교 가치 없어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더 낮아야"
국가채무(정부부채)가 세계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데다 국고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정부의 부채 상환 부담도 불어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유인이 약화된다는 분석이 많다. 물가가 치솟을수록 국가채무의 실질 부담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 산하 기관이 연일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을 내놓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는 '음모론'이 나온다.


금리 속조조절론 배후는 빚덩이 정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1일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면 오히려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KDI는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소속 기관이며 예산 등은 기획재정부이 좌우한다. KDI는 속도조절론의 근거로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반면 한은은 치솟는 물가와 불어나는 가계부채를 억제하려면 금리인상이 절실하다고 맞선다. KDI가 한은에 견제구를 날린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따라붙고 있다. 정부가 산하기관인 KDI를 움직여 관련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장재정을 이어가는 데다 국가채무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정부로서는 금리인상이 달갑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66.7%를 기록해 올해 말보다 15%포인트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주요 선진국 35개국 가운데 가장 증가폭이 컸다.

기준금리가 뛰면 그만큼 국채 금리가 오르고 정부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진다. 금리인상으로 경기나 자산시장이 흔들리면 세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이 약화되는 것도 정부로서는 반기지 않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어야 물가를 반영한 실질 빚 부담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신흥국 일부, 재정 인플레이션 현실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내심 반긴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계 이론으로 서서히 굳어져가고 있다. 찰스 굿하트 영국 런던 정경대 명예교수와 올리비에 블랑샤르 올리비에 블랑샤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작년 발간한 논문에서 비슷한 이유로 정부가 물가 상승을 반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경제학자는 논문에서 "공공부채 비율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고, 국채공급 증가로 국채금리가 상승한 상황에서 부채의 실질가치 하락을 위해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선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심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위와 비슷한 이유로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분석을 체계화해 '재정 인플레이션'을 이론을 설계했다.

재정 인플레이션은 일부 신흥국에서는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에 따르면 일부 신흥국 기대재정수지(정부가 거둬들인 재정의 수입과 지출 향후 기대치)와 소비자물가와의 음(-)의 관계가 뚜렷했다. 기대재정 수지 마이너스폭이 클수록 소비자물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도 이같은 신흥국식 재정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정부가 인플레를 반긴다는 논리는 너무 나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 부채 낮다고? 기축통화국과 비교 무의미

일각에서는 국가채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만큼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반길 이유는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2021년 말 국가채무 비율은 51.3%로 추정돼 IMF 기준 선진국 35개국 평균(83.2%)을 밑돌고 하위권인 25위를 나타냈다. 여당과 친정부 언론·단체에서는 아직 부채비율 수준이 낮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반박한다.하지만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상식을 바탕으로 수치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본지 기고문(미래 재정, 진지한 논의 필요한 때)을 통해 "미국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유로화 등 국제 단위 결제나 금융거래에 통용되는 기축통화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고 국제적인 수요도 뒷받침된다"며 "기축통화국은 국가부채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할 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같은)비기축통화국의 경우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면 국가신용도가 하락하거나 환율이 상승하며 금융시장 불안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대체로 기축통화국에 비해 국가 부채비율이 낮다"고 썼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