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공시 기준 나온다…국내 준비위도 출범

국제회계기준재단이 글로벌 통합 지속가능 공시 기준을 만드는 ISSB 설립했다. 새로 만들어질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어떻게 국내 상황에 맞게 적용할지 연구하는 KSSB준비위원회도 만들어졌다. 국내 상황에 맞는 공시 기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에르키 리카넨 IFRS 재단 의장이 COP26에서 ISSB의 설립을 공표하고 있다. 사진=IFRS재단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지난 11월 3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설립을 공식화했다. 재단에 따르면, 2022년 6월까지 ISSB는 통일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지금까지 ESG 관련 정보 공시는 통일된 기준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비교 가능성이나 일관성 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곤 했다. 이번 ISSB 설립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2025년부터 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도 글로벌 통합 공시기준 제정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통합의 깃발 든 ISSB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ESG 공시기준은 3가지 정도가 있다. 처음 만든 것은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다. 1990년대 유엔환경계획(UNEP)와 미국의 환경단체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비영리기구인 GRI는 2016년 최초의 글로벌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인 ‘GRI 표준’을 제시했다. GRI는 경제 분야 6개, 환경 분야 8개, 사회 분야 19개 등 주제별 영향 보고를 위한 세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 관련 재무 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는 기후변화에 특화한 재무 공개 지침이다. 지난 2015년 G20 국가들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협의체인 금융안정위원회(FSB)가 TCFD를 만들었고, 2017년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보공개 권고안을 내놓았다. 권고안은 지배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측정지표와 목표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ESG 분야 중 가장 측정이 용이한 것으로 알려진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 공개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국의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가 2018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하는 기업의 공시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77개 산업별 지속 가능성 보고 표준은 각 산업별 중대 이슈와 관련한 정보공개 지침이다. 재무 정보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기업가치(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 ESG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ISSB에는 그동안 기후공시기준위원회(CDSB), 현재의 IFRS 보고 체계를 만든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TCFD, 세계경제포럼, 그리고 가치보고재단(VRF) 등이 참여했다. 가치보고재단은 SASB와 국제통합보고위원회(IIRS)가 합병해 만들어진 단체이며 내년 6월까지 CDSB와 함께 ISSB에 통합될 예정이다. 국제증권위원회(IOSCO), 국제공공부문회계기준위원회(IPSASB)도 옵저버로 참여했고, 공식 자문위원회에 유엔과 경제협력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이 참여해 대통합의 기회를 열었다. 금융안정위원회(FSB)와 G20 정상회의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IFRS재단은 COP26에서 기후 정보공개 표준과 지속 가능성 정보에 대한 일반 재무 정보 등 2개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통합된 공시기준의 한국 적용을 위한 KSSB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전 위원인 서정우 국민대 명예교수가 준비위원장을, 전규안 숭실대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한국회계기준원에서도 이웅희 지속가능보고센터장이 상근위원으로 참여했다.

기업 혼란 줄어들까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ESG 정보공개 의무화에 앞서 ESG 정보를 담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다만 통일된 원칙이 없기 때문에 GRI, TCFD, SASB 중 하나를 택해 작성하거나 아예 각 보고 기준별로 다르게 작성한 보고서를 세 권씩 내기도 했다. 기준 중 하나를 택해 작성하다 다른 기준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지속 가능성 정보가 통일된 기준으로 공개된다면 기업의 혼란을 막고 보다 구체적인 정보공개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ISSB는 앞으로 TCFD의 기준을 토대로 상대적으로 측정 방법이 정교화된 기후변화 문제에 초점을 맞춘 기준 초안부터 내놓을 예정이다. ISSB에 보낸 TCFD의 제언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더욱 정교화될 가능성이 크다. TCFD는 직접 배출량인 스코프 1(scope 1)은 물론 간접 배출량(스코프 2), 공급망 발생 배출량(스코프 3)까지 모두 공시의무를 부여할 것을 제언했다.

이웅희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보고센터장은 “지속 가능한 공시는 자본시장에서 지속 가능성을 갖춘 기업으로 자금이 흐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ISSB 기준의 국내 도입 시 균형적 시각으로 한국의 산업적 특성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규안 교수. 사진=숭실대 제공
[인터뷰] 전규안 KSSB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숭실대 회계학과 교수)

“각국 실정에 맞게 선택 가능…기업 혼란 줄일 것”

- KSSB 준비위는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 도입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나.

“IFRS 재단 산하 ISSB가 전 세계에서 통용될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ESG 공시기준)을 만들고 있다. 2022년 4월 기후 환경 부문 기준서 초안을 내고 4분기쯤 기준을 공표한다. KSSB 준비위는 KSSB 설립 여부와 법적 근거, 국내 ESG 기준 제정 방향과 기존 지속 가능성 보고의 관계 등을 검토한다. 또 해외 주요국의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 관련 동향을 검토하고 인재풀을 확보할 예정이다.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하자는 취지다.”

- 구체적으로 준비위에서 어떤 이슈가 논의되고 있나.

“지속 가능성 공시기준을 현재 회계기준법이 따르는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대한 법) 산하에 둘지, 자본시장법 산하에 둘지, 상법에 둘지 등에 대한 고민이 있다. 또 현재 금융위 산하의 한국회계기준원에서 논의하고 있는데 환경과 관련해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조율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공시 방법과 공시 범위, 공시 대상도 정해야 할 문제다. 사업보고서상 본문에 넣을 것인지, 첨부서류에 넣을 것인지, 기존 보고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공시 범위도 모회사만 할지 자회사만 할지, 공급망과 관련한 공시는 어디까지 하게 할 것인지 등등 깊이 들어가면 정해야 할 것이 많다.”

-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은 전 세계에 똑같이 적용되는가.

“ISSB는 글로벌 베이스라인을 정하고, 각국이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에 도입한 K-IFRS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데, K-IFRS는 IFRS 기준을 번역해 사실상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영업이익 공시 등에 대한 부분 외에는 99% 이상이 같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은 각국의 실정에 맞게 각 나라에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

- SASB 기반의 보고와는 어떻게 달라질까.

“기본적으로는 SASB에 기초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6월 SASB와 IIRS가 통합돼 VRF이 만들어졌다. SASB는 77개 산업에 대한 기준서이고, IIRS는 통합 보고 프레임워크다. TFCD와도 협력할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회계기준원에서 SASB 원칙을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추가로 번역해 기업의 이해를 높이려고 한다.”

- KSSB 준비위가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준비위는 지속 가능 공시를 빠른 시일 내 의무화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 공시와 관련해 기업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ISSB 기준이 한 번에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기업이 어떻게 기준을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운 과도기가 생긴다. 기업의 부담과 혼란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