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개입 어렵다"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을 위한 '변명'[이호기의 금융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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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범 금융위원장을 향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 위원장이 지난 8월 취임 이후 주도해온 가계대출 총량규제 탓에 대출금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고 위원장은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의 일종이기 때문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해왔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 같은 고 위원장의 발언은 커져만 가는 이자 부담으로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당황한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예정에도 없던 보도참고자료까지 배포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은행들의 우대금리 축소는 (국채·은행채 금리 급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변명을 늘어놓다 되레 '매'만 벌었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건 금융감독원이었습니다. 금감원은 이찬우 수석부원장 주재로 19일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8대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을 불러모아 대출금리 긴급점검회의를 열었는데요.이 수석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각 은행 대출금리 산정 및 운영이 모범규준에 따라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꼼곰하게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고 위원장의 입장을 의식한 듯 "금리가 시장의 자금 수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대원칙"이라며 "금리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점검하고 불합리하면 개선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수석부원장의 말처럼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불투명한 '밀실'에서 불합리한 방식으로 산정하고 있을까요.주택담보대출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주택담보대출(변동금리)의 금리는 기본적으로 자금 시장에서 매일 또는 월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준거금리(은행채·양도성예금증서·코픽스 등)'에다 은행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가산금리를 더한 값으로 결정됩니다.
여기에다 각 은행이 영업 마케팅 목적으로 주거래은행이나 계열 신용카드, 예적금상품 예치 고객 등에게 적용하는 우대금리를 차감해 차주가 향후 부담할 최종 대출금리가 산출되지요.
그럼 최근 대출금리는 왜 오르고 있을까요. 이 부분에서 금융위와 일반 금융소비자들의 인식이 좀 다릅니다.금융위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하반기 들어 시장 금리가 급등했고 자연스럽게 준거금리가 오른 영향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한 효과가 더 크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러한 인식 차는 신규 대출보다 기존 대출을 만기 연장하거나 차환하려는 금융소비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는데요.
왜냐하면 자신의 신용 자체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도 은행들이 최초 대출 당시 적용해줬던 우대금리를 대폭 줄이면서 정책 변경에 따른 불이익을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우대금리가 금감원의 핵심 타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줄줄이 우대금리를 줄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만을 문제삼았지, 우대금리를 축소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은행들이 정부 총량 규제를 지키기 위해선 창구로 밀려드는 대출 수요를 어떻게든 줄여야 했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 가격(금리) 인상이었기 때문이지요.
정부가 총량 규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차피 대출금리 상승이 동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총량이 정해져 있는 한 누군가는 대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자금 사정에 그래도 여유가 있다보니 고금리에는 굳이 돈을 빌리지 않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공정하기 때문입니다.
고 위원장은 최근 한경밀레니엄포럼 초청 강연에서 "2016년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18%로 홍콩(24%)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현재의 가파른 증가 속도를 그대로 방치하긴 곤란한 상황"이라며 총량 규제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인플레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기준금리를 무려 연 20%까지 올리는 '극약 처방'으로 당시 10%대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을 2%대까지 떨어뜨렸고 이후 1990년대 장기 호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긴축 정책으로 당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고 위원장도 올 들어 서울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전년대비 15.2%(9월 기준)에 달하는 등 과열돼 있는 자산시장을 잠재우려면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이에 따른 금리 상승 용인만이 (한은이 아닌) 정부가 시행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 수단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고 위원장이 과연 비난 여론에도 흔들림 없이 현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해 내년 5월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주택 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고 위원장이 지난 8월 취임 이후 주도해온 가계대출 총량규제 탓에 대출금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고 위원장은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의 일종이기 때문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해왔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 같은 고 위원장의 발언은 커져만 가는 이자 부담으로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당황한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예정에도 없던 보도참고자료까지 배포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은행들의 우대금리 축소는 (국채·은행채 금리 급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변명을 늘어놓다 되레 '매'만 벌었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건 금융감독원이었습니다. 금감원은 이찬우 수석부원장 주재로 19일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8대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을 불러모아 대출금리 긴급점검회의를 열었는데요.이 수석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각 은행 대출금리 산정 및 운영이 모범규준에 따라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꼼곰하게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고 위원장의 입장을 의식한 듯 "금리가 시장의 자금 수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대원칙"이라며 "금리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점검하고 불합리하면 개선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수석부원장의 말처럼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불투명한 '밀실'에서 불합리한 방식으로 산정하고 있을까요.주택담보대출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주택담보대출(변동금리)의 금리는 기본적으로 자금 시장에서 매일 또는 월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준거금리(은행채·양도성예금증서·코픽스 등)'에다 은행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가산금리를 더한 값으로 결정됩니다.
여기에다 각 은행이 영업 마케팅 목적으로 주거래은행이나 계열 신용카드, 예적금상품 예치 고객 등에게 적용하는 우대금리를 차감해 차주가 향후 부담할 최종 대출금리가 산출되지요.
그럼 최근 대출금리는 왜 오르고 있을까요. 이 부분에서 금융위와 일반 금융소비자들의 인식이 좀 다릅니다.금융위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하반기 들어 시장 금리가 급등했고 자연스럽게 준거금리가 오른 영향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한 효과가 더 크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러한 인식 차는 신규 대출보다 기존 대출을 만기 연장하거나 차환하려는 금융소비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는데요.
왜냐하면 자신의 신용 자체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도 은행들이 최초 대출 당시 적용해줬던 우대금리를 대폭 줄이면서 정책 변경에 따른 불이익을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우대금리가 금감원의 핵심 타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줄줄이 우대금리를 줄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만을 문제삼았지, 우대금리를 축소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은행들이 정부 총량 규제를 지키기 위해선 창구로 밀려드는 대출 수요를 어떻게든 줄여야 했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 가격(금리) 인상이었기 때문이지요.
정부가 총량 규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차피 대출금리 상승이 동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총량이 정해져 있는 한 누군가는 대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자금 사정에 그래도 여유가 있다보니 고금리에는 굳이 돈을 빌리지 않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공정하기 때문입니다.
고 위원장은 최근 한경밀레니엄포럼 초청 강연에서 "2016년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18%로 홍콩(24%)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현재의 가파른 증가 속도를 그대로 방치하긴 곤란한 상황"이라며 총량 규제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인플레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기준금리를 무려 연 20%까지 올리는 '극약 처방'으로 당시 10%대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을 2%대까지 떨어뜨렸고 이후 1990년대 장기 호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긴축 정책으로 당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고 위원장도 올 들어 서울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전년대비 15.2%(9월 기준)에 달하는 등 과열돼 있는 자산시장을 잠재우려면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이에 따른 금리 상승 용인만이 (한은이 아닌) 정부가 시행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 수단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고 위원장이 과연 비난 여론에도 흔들림 없이 현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해 내년 5월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주택 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